여름밤

여름밤 #3

점심 시간을 한 시간 남겨두고 이사가 출근을 했다. 이사는 사십대 초반의 청순한 외모의 소유자로 나이보다 몇 살은 어려보였다. 그러나 Y는 이사가 의학의 도움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인상과는 달리 굉장히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갑자기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막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사는 Y 뒷자리에 앉았는데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방귀와 트림을 번갈아 가며 했다. 또 결코 책상을 정리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책상에는 먹다 남은 샌드위치, 일회용 커피컵, 코 푼 휴지가 굴러다녔다. 목소리는 어찌나 큰 지 누구를 부를 때나 업무 지시를 할 때에는 귀가 먹먹하다 못해 아플 정도였다. 일을 마음에 들게 하면 대우해줬고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즉시 눈 밖에 났다. 애연가였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향수를 뿌렸는데 오히려 더 역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사는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항상 L을 데리고 다녔는데 L은 이사의 오른팔로서 아부로 살아남는 종족이었다. L의 아부는 독보적이었는데 이사 앞에서 허리를 펴는 날이 없었다. 이사의 말이라면 모두 맞장구쳤고 자신의 생각은 집에 놔두고 온 듯 했다. L은 소위 월급 도둑이었다. 중요한 업무는 요리조리 피하고 간단한 일만 맡아서 하는데도 어찌나 생색을 내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회사 일은 L이 다 하는 줄로 생각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듣도록 자신이 일을 한다는 티를 팍팍 냈다. 업무가 많아 야근하는 동료들과 달리 L이 근무 시간 이후에 회사에 남아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사를 등에 업은 L에게 F팀장도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L이 회사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이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입발린 말을 할 수 있는지 타고난 재능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시곗바늘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Y와 P 그리고 J는 도시락을 들고 휴게실로 갔다. J는 입사한지 몇 개월 밖에 안된 이십대 후반의 신입 직원이었는데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다. Y는 처음 얼마간은 그의 불평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신입 직원의 고충이라고 이해하며 듣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그의 불평은 점심 시간 내내 지속되었고 Y와 P는 꼼짝 않고 그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하나 더 참을 수 없는게 있었는데 그것은 J의 입냄새였다. J는 양치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J가 옆에 앉아 얘기할 때면 Y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날도 J의 불평이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포착한 Y가 P에게 먼저 말을 던졌다.

“우리 점심 먹고 마트나 갈까?"

"좋아, 좋아. 내가 봐놓은게 있거든."

P는 신이나서 사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먹거리에 관한 정보는 줄줄 꿰고 있었다. P는 어디에서 무엇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지 Y에게 알려주고는 했다. 그 정보는 유용할 때도 있었지만 Y는 P만큼 물건을 많이 사서 쟁여 놓는 경우는 없었기에 이용할 일이 없었다. J는 웬일인지 P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오늘은 J의 불평을 듣지 않고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D대리님 말이에요, 어떻게 된 걸까요?"

J가 못참겠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글쎄, 오후에 출근하겠지."

Y가 짧게 대답했다.

“대표님이 이사님한테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출근할 때 역 근처에서 D대리가 돌아다니는 걸 몇 번 봤대요."

J가 계속 말하자 Y와 P는 동시에 몸을 뒤로 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Y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D는 자리를 한참동안 비울 때가 많았다. 언젠가 어떤 직원이 D가 비상구 계단에 앉아 자고 있는 걸 봤다고도 했었다.

"진짜? 대표님 점심 시간 다 되서 출근하시잖아. 그 시간에 거기서 뭘 하는 거지?"

P가 바나나를 Y와 J에게 주며 말했다. 그녀는 항상 넘치게 먹을 것을 갖고 왔기에 사람들에게 잘 나눠줬다. Y는 바나나 껍질을 벗기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P와 J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Y를 바라보았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역 주변을 배회하는 D와 그녀를 목격한 대표님을 상상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D에 대해서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항상 얘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점심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오후 시간은 고되었다. 눈알은 빠질 듯 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귀의 통증이 며칠간 계속되고 있었다. 어지럼증은 사회 생활을 하며 얻은 단짝 친구였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고질적인 직업병이었다. Y는 서랍에서 파스를 꺼내 손목에 붙이고 모니터에 다시 눈을 고정했다. 이사는 K차장을 불러다 한참이나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Y의 귀가 더욱 욱씬거렸다. K차장은 사십대 초반으로 이사와 비슷한 나이대였다. 그는 중간 관리자로서의 업무 조율 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책임을 지기 싫어했으며 이사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같은 팀인 Y와 P에게 풀었고 Y와 P의 업무량은 갈수록 늘어났다. K차창은 이사에게 잔소리를 듣기 싫어 자주 야근을 강요했다. 그러나 야근을 한다고 해서 이사가 K차장을 좋게 볼 일은 만무했다. K차장은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자신을 모르는 것 같았다.

 

Y는 업무 얘기를 하기 위해 H과장을 찾았다. H과장은 100kg가 넘는 육중한 몸의 소유자였는데 대표와 이사의 눈을 피해 맨 뒤 자신의 자리에서 자주 낮잠을 잤다. 그는 자다가 일어나 당이 떨어진다며 편의점에서 초코 과자들을 잔뜩 사와 순식간에 해치웠고 휴게실에서 몰래 잠을 자기도 했다. 지각을 밥먹듯이 하면서 집에서 회사까지 멀다며 항상 우는 소리를 했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4월에도 덥다고 선풍기를 틀었다. 여름이 돌아오면 헬스장을 다닌다며 입으로만 유난을 떨었고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예전 사진을 보여주며 조만간 근육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Y는 H과장을 불렀다. 그는 낮게 코를 골며 세상 편하게 잘도 잠을 잤다. 정말 혼자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Y가 다시 한번 부르자 H과장은 그때서야 가늘게 눈을 떴다. 그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Y는 반영되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설명했다. H과장은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다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기가 막혔으나 Y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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