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여름밤 #2

Y는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커피가 목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이 몇 분이 Y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마에 맺힌 땀이 조금 마르자 Y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9시 5분 전이었다. 대표와 이사는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근을 했다. 동료인 P도 오늘은 늦는 모양이었다.

"Y씨, 커피 마실래?"

맞은편 자리의 F팀장이 Y에게 말을 걸었다.

"전 들어오면서 사왔어요."

Y는 커피를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F팀장은 절대 자신이 커피를 사오는 법이 없었다. 커피를 사러 가는 사람이 보이면 꼭 카드를 주며 자기 커피도 사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기 카드로 다 계산하라는 얄미운 그 말을 마지막에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Y는 몇 번 F팀장의 커피 심부름을 한 후로는 커피를 사서 회사에 들어갔다. F팀장은 삼십대 후반으로 오지랖이 넓었고 자신의 성격이 좋다고 착각하는 부류였다. 그녀는 한 번씩 나서서 농담을 할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웃어주자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이 꽤 좋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인사도 받지 않을 만큼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갔다. 또 자기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와서는 자기 입으로 자기 모습이 웃긴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러면 팀원들은 팀장님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정해진 답을 말했고 F팀장은 눈을 흘기며 좋아했다. Y는 단 한번도 F팀장에게 옷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F팀장은 Y에게 그 말을 듣고 싶어 Y의 옷차림에 대해 칭찬하고는 했는데 Y는 입가에 미소만 한번 지을 뿐이었다. F팀장이 자신에게 왜 그 말을 하는지 알았지만 Y는 F팀장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Y가 보기에 그 옷은 F팀장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F팀장이 빵을 한가득 사와서 팀원들에게 먹으라며 평소 그녀에게서 볼 수 없었던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팀원들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몇 개는 먹고 몇 개는 남겼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F팀장이 남은 빵을 자신의 자리에 가져가더니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둥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다는 둥하며 신경질을 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감사하다는 말을 얼마나 해야 F팀장의 마음에 충족되는 걸까하고 Y는 고개를 숙이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었다.

F팀장은 결국 나이가 가장 어린 신입 직원에게 카드를 주며 자신의 커피와 신입 직원의 커피를 사오라고 얘기했다. Y는 카드를 받아들고 나가는 신입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동료인 P가 9시를 조금 넘겨서 들어왔다. 그녀는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Y는 P가 지각을 자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아침 시간의 대부분을 썼다. P는 점심에 먹을 음식과 간식을 잔뜩 챙겨 회사에 왔는데 먹을 것을 자신의 옆에 두고 흐뭇해했다. P는 퇴근 후에 회사 근처의 마트에 함께 가자고 Y에게 자주 말했는데 Y는 주말에 장을 봤다고 거절하고는 했다. P는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꺼내어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러고는 Y에게 점심 시간에 마트에 가자고 말했다.

 

Y는 파일을 열어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Y의 팀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늘 그렇듯이 기획 단계부터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기획자는 새로울 것 없는 기획서를 주면서 디자인은 새롭게 하기를 원했다. 마감 시간까지 겨우 맞춰 디자인을 끝내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며 디자인적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정할 거리들을 잔뜩 던져 주었다. 기획자는 디자인이 방망이를 몇 번 두드리면 뚝딱하고 나오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Y는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이쪽 업계에서는 기획자의 목소리가 더 컸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으나 현실은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 외에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F팀장이 D를 찾았다. 옆자리에 앉는 D는 아직도 출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8년간 사회 생활을 한 Y도 D와 같은 사람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D는 경력이 Y와 비슷했지만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용어도 잘 몰랐다. 회의 시간에는 멍하니 있거나 노트에 낙서를 하다가 이사에게 한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간단한 일도 며칠을 붙들고 있었고 그마저도 실수가 많아 수시로 이사에게 불려가 설교를 들었다. F팀장은 D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휴대폰 전원은 당연하게도 꺼져 있었다. D는 이렇게 연락이 안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오후에 가까스로 연락이 되면 그제서야 회사에 나왔다. 동료들이 전원을 왜 꺼놨냐고 물으면 전화 할 거 아니까 꺼놨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좀처럼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멍해 보이는 인상 뒤에 어떻게 그와같은 뻔뻔함이 숨겨져 있는지 볼수록 신기했다. F팀장은 한숨을 쉬며 궁시렁거렸다. F팀장은 궁시렁대기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일 정도로 누가 듣건 말건 자기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Y는 한 달 정도 F팀장의 뒷담화 대상이 된 적이 있었는데 신입 시절 이후로 회사 생활하며 울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F팀장의 공격은 Y 다음 타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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