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여름밤 #1

Y는 무거운 무엇인가가 자신을 옭아 매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이 찾아왔다. 새벽 3시였다. 일주일 가까이 이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고 새벽에도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였다. 방 안은 갑갑한 공기로 가득차 있었다. 휴대폰으로 현재 기온을 확인하니 32도였다. 32도! Y는 지금까지 살면서 새벽 3시에 32도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은 매년 여름 기온이 상승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한 낮 기온이 39.6도를 찍었다. 체감온도는 40도를 넘어섰다.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서울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거라고 말이다. 몇 년 후에는 열대 기후의 나라에 여행 갈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Y는 미친 날씨야라고 혼잣말을 내뱉고는 베개 위에 머리를 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머리카락이 말썽이었다. 긴 머리카락이 문어 다리처럼 목을 휘감아 숨이 막히는데 한몫을 했다. Y는 늘 여름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가을이 되면 후회할 것이 분명하기에 충동을 다스리는 쪽을 택했다. 머리를 틀어 올려 머리끈으로 고정하고 부엌으로 갔다. 물을 컵에 가득 채워 단숨에 들이키자 쩍쩍 갈라진 논밭에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따끔거렸던 목구멍이 촉촉해졌다. Y는 침대에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밖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지금 깨어있는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은 고요하고 말라버린 감수성이 터질만큼 감상에 젖기 좋은 시간이지만 지금은 그저 더위에 지쳐 잠 못 이루는 밤일 뿐이었다. Y는 이쪽 저쪽으로 자세를 바꾸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다시금 잠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Y는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간밤의 더위에 몇 번이나 잠을 설쳐서 바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눈을 감은 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5분만 더 자고 싶었지만 다리를 들었다 내리며 반동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햇살은 창을 통과하기 전이었다. Y는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로 향했다. 룸메이트가 욕실문을 열고 나오며 변기에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변비에 시달리고 있는 룸메이트는 1년에 두 번은 연례행사처럼 변기를 막히게 했다. 본인은 화장실 배관이 너무 낡아서라고 주장했지만 Y는 변비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삐져나오는 짜증을 간신히 누르며 저녁까지 해결해 놓으라고 말하고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화장을 하는 도중에도 코 밑으로 땀이 송송 배었다. 선풍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을 나와 바깥 공기를 빨리 마셔야 했다. 그래야 답답함이 조금 해소될 것 같았다.

 

지하철은 그나마 북새통은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노선이 아니어서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대신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Y의 옆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섰다. 남자에게서 마른 걸레에서 나는 쉰내가 풍겼다. Y는 가급적이면 숨을 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Y의 폐활량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얼마 못가서 콧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냄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자리를 옮기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옆과 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Y는 어쩔 수 없이 오래 숨 참고 있기를 몇 번 더 했다. 드디어 환승역에 다다랐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Y도 환승 통로를 빠르게 걸었다. 여기서 4 정거장을 더 가야 회사가 있는 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역에서 회사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Y는 회사 옆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샀다. 몇 개월째 매일 아침에 보는 편의점 직원은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Y가 인사를 해도 그녀가 입을 여는 법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계산을 하며 Y가 말했다. 직원은 역시나 묵묵무답이었다. 거리는 햇볕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회사 건물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앞은 이미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사람들을 싣고 쉴새 없이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차례를 기다려 Y도 사람들에 섞여 엘리베이터에 탔다. 사람들은 모두 올라가는 숫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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