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1-4

지각 변동으로 인해 시칠리아 섬에서 떨어져 나온 몰타는 지중해의 점이라 불릴 만큼 작은 섬이었다. 강도 없고 나무도 자라지 않는 이 삭막하고 척박한 땅에서 섬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먹거리는 풍족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한 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 몸이 타버릴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고 식수도 구하기 어려워 동절기에 내린 비를 저장해서 사용했다.
또 마그레브 해안에 근거지를 둔 북아프리카 해적은 불시에 섬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았고 섬 주민들을 잡아 갤리선 노예로 팔아버렸다. 주민들은 늘 불안에 시달렸지만 섬은 방비에 취약했다. 옛 수도인 임디나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 성채 도시였으나 방어벽이 견고하지 않았고 섬 주민들 모두 그곳에 대피하기에는 공간적 여유도 없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며 요새를 건설할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발레트였다.
"로메가스, 저 산을 봐. 섬을 방어하기에 저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서쪽 해안은 가파른 절벽이라 배를 정박할 수 없고 남쪽 만은 중심과 멀어서 오스만은 분명히 동쪽 항구를 노릴거야. 저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요새를 만든다면 동쪽 연안은 우리 손에 있을 거고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그들은 마르삼세트항에서 스케베라스산을 올려다보았다. 들쭉날쭉한 해안선 사이로 바다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 스케베라스산은 요새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장소였다. 오스만투르크가 몰타로 향할 때, 소아시아에서 서쪽으로, 곧 몰타의 동쪽편으로 방향을 잡을 테니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한다면 그들은 항구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오스만 함대가 애를 먹을 게 분명했다. 또한 본국에서 수송되는 공급선을 차단할 수 있어 공방전이 길어진다면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섬은 동쪽 항구를 방어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로메가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장님을 뵈어야겠어."
발레트는 임디나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가 기사단의 임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릴라당은 자금 담당인 페르디와 함께 있었다. 페르디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릴라당의 미간이 좁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골치 아픈 보고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발레트는 새로운 요새에 관해 좀 더 알아본 후에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숙소를 나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일순간 멈춰졌다. 항구의 오래된 주점에서는 술과 땀냄새가 가득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발레트와 로메가스를 따라왔다. 두 사람이 구석진 자리에 앉자 주점은 다시 말소리로 뒤덮였다. 여주인이 다가와 발레트와 로메가스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두 잔에 럼을 따랐다.
"이곳에 축성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발레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주인에게 물었다.
" 축.. 뭐라구요?"
여주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성벽을 쌓는 것 말입니다."
"아, 알지요 그럼."
여주인은 몰타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보에몬 크레누라고 괴팍한 성격의 양반이 있는데 임디나 외곽에 산다우.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찾으시우?"
여주인이 눈을 깜빡거리며 발레트 앞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발레트는 대답 대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 양반 성질머리는... 어휴... 아내 먼저 하늘로 보내고 양딸을 데리고 사는데...... "
여주인이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풀기 시작하자 발레트는 탁자에 술값을 올려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뱃사람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크레누는 왜 찾는거요?"
의심 가득한 눈길로 사내는 발레트를 노려보았다. 발레트는 이곳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려는 로메가스를 제지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성벽 공사로 상의할게 있소."
술에 약간 취한 듯한 사내는 발레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번에 들어온다던 기사단이군. 쳇!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붉은 얼굴의 사내는 발레트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발레트와 로메가스는 텁텁한 공기의 주점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보았다. 항구는 이미 어스름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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