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3-5

발레트는 모래색 돌로 차곡차곡 올려진 건물 벽을 손끝으로 만지며 걷고 있었다. 처음 몰타에 발을 내딛던 날이 떠올랐다. 지중해 한가운데 솟은 작은 도시는 로도스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발레트는 걸음을 멈추고 손바닥을 벽에 댔다. 차가운 기운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타로 들어왔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스쳐가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이 벽은 계속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발레트는 모래색의 돌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뜻밖의 목소리에 시간은 현재로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자 영롱한 초록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디아의 짙은 갈색 머리카락은 빛을 받아 본래보다 밝게 보였다. 나디아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로 발레트에게 걸어왔다.
"나디아!"
발레트는 벽에 올렸던 손을 내려 허리춤에 찬 칼을 잡는 시늉을 했다.
"아침 일찍 어딜 가는 거에요?"
"성당에요."
나디아는 눈을 크게 뜨며 발레트를 보았다. 그녀는 발레트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나도 성당에 가는 길이에요."
발레트는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손을 내밀어 나디아에게 길을 내주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아침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하는 신비로움을 갖고 있었다. 골목은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려 퍼졌고 소리는 리듬이 되었다. 리듬에 따라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이따금씩 마추치는 시선은 미소를 불러왔다. 모퉁이를 돌자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은 빛에 의해 제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건하고도 평화로웠다. 발레트는 알 수 없는 힘을 느끼며 광장으로 한걸음씩 내딛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아름다웠다.
"아침의 광장은 늘 황홀해요."
나디아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광장을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 성당으로 향하는 똑같은 길이지만 그녀에게는 매순간이 특별했다. 발레트도 나디아의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 저 편으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숨이 멎을 만큼 경이로웠다. 두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 주위에 감탄하며 성 바울 성당으로 이끌려갔다.


성당 앞에는 며칠 전과 같이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발레트는 마차를 힐끗 보고는 나디아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성당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군가와 얘기 중이던 피오르 신부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부 옆에는 검은 베일을 머리 위로 올린 여인이 있었다.
"오, 나디아."
피오르 신부는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베일을 쓴 여인은 발레트와 나디아를 보자 얼른 베일을 내려 얼굴을 감추더니 신부에게 인사한 후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방금 지나간 여인은 보키아경의 부인이 아닙니까?"
발레트의 물음에 신부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발레트는 빠른 속도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만!"
여인의 등 뒤로 발레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베일을 쓴 여인은 뒤를 돌아보더니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보키아경에 관해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시겠습니까?"
보키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여인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발레트도 걸음을 늦췄다. 여인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녀는 얼굴을 가렸던 베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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