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16

허기가 진 인부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나디아는 한 명 한 명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스케베라스산이 펼쳐진 빌구의 성벽에서 인부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작업에 열중했고 나디아는 빵과 포도주를 챙겨 왔다. 지중해는 늘 그렇듯이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했고 하늘에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햇빛은 수면을 간지럽혔고 물결은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인부들은 포도주를 들이켰다.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양젖으로 만든 치즈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그들은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함선이다! 성 요한 기사단의 함선이 돌아왔다!"
인부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디아는 포도주 따르기를 멈추고 성벽 앞으로 걸어갔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성 안나호의 붉은 십자가 깃발이 위풍당당하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나디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머리속은 오로지 마르삼세트 항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디아는 포도주 항아리를 내려놓고 성벽 아래로 뛰었다. 해안을 따라 달리며 그녀는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 십자가 깃발은 그녀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나디아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항구로 들어섰다. 십자가가 새겨진 기사단 망토를 본 순간 나디아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세차게 떨렸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었다. 마중을 나온 기사단원들과 부둥켜 안으며 기뻐하는 발레트를 보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나디아는 가슴을 움켜잡고 가까스로 눈물을 삼켰다.
지아니는 천천히 땅을 밟았다. 그토록 꿈꿔온 순간이었는데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몰타의 색, 공기, 소리... 그리웠던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지난 5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그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레트, 수고했네.."
"단장님.."
릴라당은 발레트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아꼈다. 주름진 릴라당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발레트는 스케베라스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처음 몰타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이제 몰타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나디아!"
익숙한 그 이름에 발레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아니는 벌써 저만치 앞서 뛰어가고 있었다. 부두가 시작하는 곳에서 나디아는 몰타를 떠났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발레트는 나디아의 얼굴을 보자 세상을 다 담을 만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뛰었다. 기사단원들은 발레트의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다. 마르삼세트 항은 만남과 헤어짐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처음의 설레임과 마지막의 서글픔은 항구에 늘 존재했다. 그러나 기다림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끝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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