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14

튀니스는 해안에서 이어지는 내륙 호수 기슭에 위치한 도시였다. 마그레브 끝단에 형성된 이곳은 옛 카르타고 시절부터 북아프리카의 무역 중심지로서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수많은 민족이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힘을 겨뤘고 무수한 통치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좁은 해협을 따라 반나절이면 몰타에 다다를 정도로 유럽과 가까웠기에 오스만은 바르바로사를 지원해 주었고 바르바로사는 오스만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해 나갔다. 카를 5세는 북아프리카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트리폴리에 이어 튀니스가 함락되자 그들의 만행을 더 이상 못 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지중해의 패권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튀니스는 철옹성같은 성채였다. 성벽 앞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호수가 있어 해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해적들은 포로로 잡은 노예들을 성벽 지하 깊숙한 감옥에 던져 두었다. 그들은 우리에 갇힌 짐승을 대하듯 하루에 한 번 철창 문을 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가축처럼 노예 시장에 세워 큰 돈을 받고 노예 상인에게 팔아 버렸다. 철창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은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날마다 꾸는 악몽으로 사람들은 서로에게도 적대감을 품었다.
지하 감옥은 어둡고 축축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먹은 거라고는 빵 한 조각이 다였다. 발레트는 다리를 끌어당겨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소름끼치는 차가운 공기가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족쇄를 찬 손과 발은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발레트는 맞은편에 앉은 지아니를 보았다. 지아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초록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5년간의 갤리선 생활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지아니의 몸은 젊은 성인 남자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그는 다른 노예들과는 달랐다. 그에게 절망이나 원망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지아니에게는 어떤 압력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발레트는 나디아에게도 오빠와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쾅! 저 멀리서 어렴풋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레트는 벽에 귀를 갖다대었다. 로메가스가 다가오려하자 발레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소리는 전보다 더 크고 가깝게 들려왔다. 쾅! 발레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로메가스와 지아니도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대포 소리는 분명하고 선명하게 튀니스를 뒤흔들었다.
"함대가 왔어! 에스파냐에서 함대가 왔어. 로메가스!"
발레트는 로메가스에게 소리치며 그를 얼싸안았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눈물을 흘렸고 신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발레트는 지아니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힘껏 서로의 어깨를 잡았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말소리가 감옥 밖으로 빠져나갔다. 발레트는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그들은 성벽 아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족쇄 찬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스파냐군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해적들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에스파냐 함선은 항구의 요새에 무차별적으로 포를 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벽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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