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12

릴라당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리폴리 요새의 방어를 맡아달라는 카를 5세의 조건이 처음부터 탐탁치 않았던 그였다. 그곳은 남부 이탈리아 해안 마을을 습격하는 해적들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변변치않은 병력과 지원으로 타국의 요새를 지킨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기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마을은 불태워졌고 요새는 해적들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북아프리카 해안은 해적이 군림하는 땅으로 점차 바뀌고 있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마르삼세트 항구는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오가는 상선들로 늘 분주했다. 이곳은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온갖 소식이 넘쳐났다. 나디아는 거친 바다 사람들 사이를 부단히 뛰어다녔다. 사내들은 젊은 아가씨가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이 이상한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상선은 트리폴리에 관해 더 이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요새를 지키던 대다수가 죽었고 살아있다고 해도 노예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성벽 공사를 감독하는 기사를 통해서도 다른 소식은 얻지 못했다. 나디아는 발레트와 헤어지던 날을 떠올렸다. 등을 돌려 걸어가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나디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디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말끔한 옷차림의 안드레아가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놀라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나디아에게 다가왔다. 안드레아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나디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안드레아는 나디아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 후 몸을 돌리려 했다. 안드레아는 나디아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항구를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요. 무슨 일이에요, 나디아!"
안드레아는 나디아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트리폴리.. 혹시 트리폴리 소식을 알고 있나요? 누가 살았는지.."
나디아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두려워졌다. 발레트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디아는 잘 알고 있었다. 안드레아의 어깨 너머로 스케베라스산이 보였다. 언젠가는 진실을 마주할 때가 올 것이었다. 나디아는 몸을 떨었다.
안드레아는 흔들리는 눈빛의 나디아를 보며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했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방법이 있을 거에요. 누구를 찾는 겁니까?"
"발레트.. 성 요한 기사단의 발레트"
나디아는 토해 내듯 발레트의 이름을 가까스로 말했다. 기사단이라는 나디아의 말에 안드레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힘겨운 얼굴로 간신히 눈물을 참는 나디아를 보며 안드레아는 가슴이 멎는 것 같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나디아에게 말했다.
"나디아, 난 오늘 제노바로 돌아가요. 트리폴리 소식을 알게 되면 꼭 전할게요."
안드레아는 잡고 있던 나디아의 팔을 천천히 놓았다. 나디아는 안드레아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녀의 푸른색 로브는 점점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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