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10

제르바 섬은 바르바로사가 북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자리잡은 곳이었다. 이곳은 야자수로 주변이 둘러싸여 해적들의 은신처로 삼기 적당했다. 발레트는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것을 알아챘다. 해적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고 쿵 하는 쇳덩어리 소리가 들렸다. 노는 배안으로 들여졌다. 발레트는 족쇄를 찬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목이 쿡쿡 쑤시고 시큰거렸다.
"하다보면 요령이 생길 거요."
'이 생활도 적응이 된다니 끔찍하군.'
허리는 끊어질 듯 했고 목은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저녁을 갖다 줄 거요."
옆에 앉은 남자는 발레트의 생각을 읽은 듯 다시 한번 말했다.
"갤리선을 탄지 얼마나 됐소?"
"5년."
남자는 얼굴의 반이 수염으로 덮여 있었고 머리는 마구 자라 생김새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가슴과 등은 상처로 가득해 온전한 살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볼품없이 야위어 있었으나 초록빛의 두 눈은 어떤 기운을 뿜어내는 듯 했다. 발레트는 그 눈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며칠간 머무를테니 쉬어 두시오."
발레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로메가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이 지나면 몇 구의 시체가 바다로 던져질지 모를 일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얼굴의 해적은 웬일인지 아무 말 없이 빵과 물을 주고 올라가 버렸다. 발레트는 숨도 쉬지 않고 물부터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차디찬 감각은 그의 몸속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트리폴리에서 잡힌 사람들이 어디로 간지 아시오?"
발레트는 천천히 빵을 씹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다른 갤리선에 타고 있을 거요, 라골레타로 가기 전에 잠시 들른거니까."
"라골레타? 튀니스로?"
"며칠 후면 튀니스도 트리폴리와 같은 신세가 될 지 모르오."
바르바리 해적들은 오스만으로부터 병력과 화승총을 지원받아 쉽게 북아프리카의 요새를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악랄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바르바로사에게 그 누구도 대항하기는 어려웠다. 튀니스까지 함락된다면 몰타와 남부 지중해가 오스만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발레트는 손을 꽉 움켜 쥐었다. 살아난 세포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족쇄를 끌어 당겼다.
"이럴 때 힘을 비축해 놓아야 해요. 여기서 버티려면.."
남자는 돌덩어리같은 딱딱한 빵을 물에 적셔 입으로 가져갔다.
"버텨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요. 꼭."
발레트의 질문에 남자는 발레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5년간 갤리선 노예 생활을 한,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남자의 초록 눈이 한순간 빛나는 것을 발레트는 보았다.
"어디 출신이오?"
"몰타, 고조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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