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9

릴라당은 벽난로 옆의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고 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 사이에 릴라당의 이마 주름은 더욱 깊게 패였다. 그가 성 요한 기사단장으로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쉴레이만은 대군을 이끌고 로도스를 공격했다. 패기 가득한 젊은 술탄은 해외 원정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야 했고 릴라당은 200년간 기독교계의 보루였던 로도스를 지켜내야 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세력의 힘 겨루기에서 성 요한 기사단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하는 배와 같았다. 그들은 뜯겨진 나무 조각을 간신히 붙잡고 파도가 이끄는 대로 떠밀려 갔다. 몰타는 그들이 표류끝에 만난 섬이었다. 릴라당은 기사단장이 된 직후부터 기사단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릴라당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짧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망토를 두른 기사 한 명이 벽난로 앞으로 걸어왔다.
"어떻게 되었나?"
"말씀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부하 기사는 릴라당에게 둘둘 말린 종이를 건넸다.
"투르크인은?
"지하에 데려다 놨습니다."
"수고했네."
발티가 얻어낸 정보는 보키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었다. 에스파냐는 오스만의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보키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그가 가진 카드를 사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릴라당은 의자에 다시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무거운 두 눈을 감았다.

 


은촛대 위로 흔들리는 불빛, 온갖 산해진미로 차려진 풍성한 식탁, 붉은 포도주와 호탕한 웃음소리.
보키아 부인은 이 모든 것과 상관이 없는 듯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잘 가꾼 콧수염과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의 보키아는 돈 후안의 끝나지 않는 자기 자랑에도 참을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돈 후안은 마드리드에서 온 중요한 손님이었다. 그는 카를 5세와 대면할 수 있는 지체 높은 귀족이기에 그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인생에 찾아온 기회를 잡는 것과 같았다. 보키아의 배려 속에 돈 후안은 자신의 모험담을 더 길고 장황하게 얘기하는 만족감을 누렸다.
보키아 부인은 시칠리아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다. 이 결혼으로 인해 보키아는 남부 이탈리아의 상권을 얻을 수 있었고 이제 에스파냐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했다. 하인이 다가와 보키아의 귀에 무엇인가 속삭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해를 구했다. 보키아 부인은 그제서야 남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인, 마그레브에서는..."
돈 후안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허름한 복장의 발티가 보였다. 유럽은 오스만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의 진짜 속내를 알아내기는 무척 어려웠다.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는 유럽 첩자들은 본국으로 많은 정보를 보냈지만 그중에는 거짓 정보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 정보가 판을 쳤기에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갖는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보키아는 발티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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