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8

계단을 내려갈수록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어두컴컴한 그곳은 지옥의 입구 같았다. 먼저 잡힌 사람들은 거의 헐벗은 채로 나무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허벅지 위에는 노가 눕혀져 있었고 그들의 몸은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족쇄를 찬 손과 발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검은 얼굴의 해적이 발레트의 등을 떠밀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앉아."
밑은 온통 오물 투성이었다. 갤리선 노예들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노를 젓고 먹고 자며 심지어 배설까지 앉은 자리에서 해결했다. 하루에 한 덩이의 빵이 그들이 먹는 음식의 전부였으며 등에 내리꽂는 채찍질은 노예들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켰다. 매일 한 명씩 죽어나갔고 시체는 바다로 던져졌다. 해적은 손에 채찍을 들고 발레트에게 눈을 부라리더니 위로 올라가 버렸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닫혔다. 발레트는 어둠과 함께 남겨졌다.

"출발이다! 노를 잡아!"
갑작스런 큰 소리에 발레트는 놀라 눈을 떴다. 검은 얼굴의 해적이 다리를 벌리고 서서 무언가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손과 발에 채워진 족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발레트는 현실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노를 잡아요, 어서!"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발레트는 고개를 들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덩치가 산만한 사내의 검은 얼굴이 보였다.
"어서요!"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맡아졌고 다급한 소리가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발레트는 족쇄를 찬 손을 들어 올려 노를 잡았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는 위로 올려지더니 아래로 다시 위로, 아래로를 반복했다. 해적은 통로를 걸어다니며 채찍을 휘둘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빨리, 더 빨리!"
발레트는 자신도 모르게 힘껏 노를 쥐었다. 수십 개의 노들이 구령에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노를 저으면 저을수록 간밤의 기억이 또렷이 살아났다. 불 타던 마을과 눈을 부릅뜨고 죽은 동료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발레트는 이를 꽉 물고 노를 밀어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가 항구의 오래된 주점에 들어섰다. 그는 구석의 빈 자리에 앉아 고개를 살짝 들어 주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선원들은 술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잡다한 농담을 하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꼬마 하나가 얼굴을 삐죽 내밀고 안을 들여다 보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탁자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남자는 주변을 살피며 쪽지를 펼쳤다. 짧은 단어를 읽자마자 남자는 모자를 푹 누르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쪽지를 전해 준 꼬마가 주점 앞에서 그를 향해 손짓했다. 꼬마 아이는 미로같은 골목길을 다람쥐처럼 뛰어갔다. 막다른 골목길이 보이자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남자의 눈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아 섰다.
"사데트."
"사데트."
허름한 복장의 비토 발티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시가 심해 이렇게 만날 수 밖에 없었소, 이스탄불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오?"
비토는 남자에게 둘둘 말린 종이를 건네며 물었다.
"새로운 함대를 조직하고 있는 중이요."
남자는 모자를 고쳐 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70척은 될거요."
"곧 지중해 원정이 시작되겠군.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만나야 할거요."
발티는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 인사를 한 후 곧 사라졌다. 모자를 눌러 쓴 남자도 미로속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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