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5

릴라당은 시종에게서 서신을 전달받고 빠르게 읽어나갔다. 발신처는 트리폴리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무엇인가를 써 내려갔다. 그런 다음 인장이 봉해진 두 개의 편지를 시종에게 건넸다.
"하나는 에스퍄냐로, 다른 하나는 트리폴리로."
트리폴리의 사정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발레트는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할 테지만 낯선 땅에서 해적을 상대로 요새를 방어하는 것은 필시 외로운 싸움일 것이었다.
릴라당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빌구와 생리아의 요새 보수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발레트를 트리폴리 요새로 보내자 보키아는 그 일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보키아는 에스파냐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서 에스파냐로 활동 무대를 넓히길 바랬다. 릴라당은 비밀히 비토 발티를 감시하게 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기사단 숙소에 잠입했던 투르크인은 갤리선 노잡이로 보내졌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으나 미심쩍은 부분은 남아있었다. 투르크인이 찾으러 온 칼 그리고 새겨진 이름, 살람 메메드.
'살람 메메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인가?'
썩은 싹을 뿌리 채 뽑지 못한다면 몰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오스만이 훤히 알게 될 것이 뻔했다. 정찰병은 또 보내져 몰타에 숨어들 것이었다.
'말이 모이는 곳이 어딘가?'
동.서양을 오가는 상선의 중간 기착지로서 몰타의 항구는 온갖 소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들의 말은 서로 뒤엉켜 한곳에 모였다가 어딘가로 다시 흩어졌다. 말이 모이는 곳.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을 알아내야만 했다.

 


성당을 향해 걸어가던 안드레아는 검은 베일을 쓴 여인과 피오르 삼촌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에게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낀 여인이 신부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 여인의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안드레아, 어딜 다녀오는 거냐?"
피오르 신부는 앞으로 걸어나오며 안드레아를 맞았다.
"항구 주변을 산책하고 오는 길이에요."
"아름다운 곳이지?"
피오르 신부는 광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드레아는 대답없이 삼촌과 같은 곳을 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아침 햇살에 비친 임디나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평온했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현실과 상관없이 따로 떨어진 공간 같았다. 모래색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했다. 안드레아는 낯설면서도 신비한 임디나의 정취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이방인을 붙잡아 두는 어떠한 힘이 있었다.

 

 

안드레아를 지나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오른 여인은 얼굴을 덮고 있던 베일을 걷어 올렸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자 잠자던 말의 눈이 떠지며 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는 임디나에서 가장 높은 성채의 성문을 지나 뜰에 멈춰섰다. 어린 하인이 문을 열자 검은색 소매자락과 함께 새하얀 손이 보였다.
"보키아 경께서 찾으십니다."
앞에 서 있던 비토가 보키아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보키아 부인은 어린 시녀에게 아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물어볼 뿐이었다. 그녀는 가브리엘을 방으로 데려오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가브리엘?"
방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리자 베일을 벗고 머리를 다듬고 있던 보키아 부인이 밝은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나요, 부인."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문앞에 보키아가 서 있자 아무 말 없이 다시 거울로 시선을 주었다.
"성당에 다녀오는 길이오?"
보키아는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신부님을 뵙고 왔어요."
그녀는 다소 차가운 말투로 여전히 보키아를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피오르 신부가 나보다 당신의 얼굴을 자주 보겠군."
보키아는 창 쪽으로 걸어가며 밖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죠?"
더 이상의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듯 짜증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며칠 후 에스파냐에서 손님이 오는 건 알고 있겠지.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바라오."
보키아는 할 말을 마치자 방을 나가 버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머리빗을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거울 속에는 생기잃은 표정의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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