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2-4

트리폴리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암벽 돌출부에 자리하고 있는 해안 도시였다. 에스파냐 수비대와 성 요한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성채는 에스파냐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이곳의 음울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밝고 평온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작고 소박한 자신의 방에서 발레트는 릴라당에게 보내는 서신을 쓰는 중이었다. 짧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로메가스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야?"
"밖에 나와 보셔야 겠어요. 에스퍄냐 병사 한 명이 도망치려다 잡혔어요."
발레트는 쓰기를 멈추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연병장에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사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수비대장 멘데스가 단상 위에서 고함을 치고 있었다.
"군인에게 병영을 무단 이탈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나가서 무엇을 하려고 한거지? 바르바리 해적이라도 되려고 했나?"
멘데스는 숨도 쉬지 않고 병사를 몰아부쳤다.
"아닙니다.. 고.. 고향으로 가려고 했던 것 뿐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요."
병사는 벌벌 떨며 울먹거렸다.
"함께하는 전우들은 보이지 않나? 이들도 고향에 처와 자식을 두고 왔다. 도망치는 것은 조국을 버리는 일이다!"
"살... 살려주십시요.."
병사는 얼굴이 땅에 닿을 때까지 연신 몸을 굽혔다. 탈영하는 병사는 즉각 처분되는 것이 규율이었다. 발레트는 단상으로 올라가 멘데스 옆에 섰다.
"병사들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엄중하게 경고하고 매로 다스리는 것이 어떻겠..."
멘데스는 손을 들어 발레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발레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어떤 말도 통할 것 같지 않은 무쇠같은 얼굴이었다.
"저 자는 탈영병이요. 군에서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오. 예외란 없소."
"본국에서 보급품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식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타국의 요새를 지키는 것이 쉽겠습니까?
군대의 규율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발레트는 이 버려진 곳에서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를 알았다.
"에스파냐 수비대의 일이요. 기사단이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끌고 가라!"
멘데스는 굳은 표정으로 지시를 내리고는 단상을 내려갔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요.. 자비를!!"
병사는 끌려 나가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연병장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가네요. 이곳은 허울뿐인 요새에요."
로메가스는 멘데스의 차가운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에스파냐에게 이곳은 잊혀진 곳이야. 여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없어. 요새를 지어 해적을 막는 시늉만 할 뿐이야."
발레트 자신도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볼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바르바리 해적들이 불시에 요새를 습격할 수도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병사들을 격려하며 함께 요새를 지키는 것 밖에는 없었다. 발레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가 내리겠군."
두 사람은 탈영병의 절규만 남은 연병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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