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1-11

임디나 성은 곧 열릴 연회 준비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성 바울 축일 전날은 보키아 가문에서 연회를 여는 것이 관례였다. 온갖 종류의 싱싱한 식재료가 성안으로 들어와 하인들의 손에 맡겨졌다.
하인들을 감독하던 시종의 얼굴이 일그러진건 항구 일꾼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후였다. 그는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기사단 중 누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갖고 있는 정보라고는 기사 한 명이 칼에 찔렸다는 것뿐이었다. 요새 작업이 한창인 이런 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동안의 행적을 되돌려봐도 기사단이 알아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건지 도무지 종 잡을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으며 초조한 마음으로 뜰에 서 있는 그의 귀에 보키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비토,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겠지? 이번 연회에는 에스파냐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시니 준비에 더욱 만전을 기하도록 해. 올해는 기사단도 있으니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쓰고."
말끔히 정리된 보키아의 콧수염 아래로 얇은 입술이 움직였다. 보키아는 발티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하인의 손에 발을 딛고 말에 올라탔다.
"네, 보키아님.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사단이란 말에 불안감에 휩싸였던 시종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기사단 누구에게 탄로가 났는지 알아낼 수 있는 기회는 한번 뿐이었다. 창상을 입었으니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발티의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는 이틀 후에 있을 연회에서 기사단 누구에게 정체가 탄로났는지 꼭 알아내야 했다.

 


연회는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넓은 연회장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찼고 유럽과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요리법의 음식들은 지체 높은 귀족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자란 당도 높은 포도로 만든 포도주은 최상급이었다. 모두 기분에 취했고 오랜만에 열린 연회를 즐겼다.
귀부인들은 소매를 인공적으로 부풀리고 코르셋으로 허리는 가늘게, 스커트는 파딩게일을 넣어 A라인으로 퍼지게 한 로브를 입었다. 한껏 부풀린 블루버즈형의 바지를 입은 보키아는 이리저리 사람들을 오가며 주최자 역할에 여념이 없었다. 기사단 예복을 차려입은 발레트는 릴라당 옆에 서서 한쪽 귀퉁이에서 하인들을 관리하고 있는 시종을 주시하고 있었다.
"릴라당 기사단장님, 이쪽은 돈 후안 경입니다. 서로 인사하시지요."
러프를 빳빳하게 세운 화려한 복장의 돈 후안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에 당도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몰타의 방어력은 문제가 없겠군요."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에스파냐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릴라당은 꼿꼿한 자세로 돈 후안의 손을 잡았다.
"황제 폐하를 뵈면 꼭 말씀드리지요. 황제께서도 기사단의 노고를 알고 계실겁니다."
돈 후안은 불룩한 자신의 배 앞으로 릴라당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
"오늘은 심각한 얘기는 하지 맙시다. 좋은 날 아닙니까."
보키아가 적당한 때에 말을 자르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그는 릴라당의 꼿꼿한 성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돈 후안은 카를 5세를 접견할 수 있는 높은 위치의 에스파냐 귀족이었다. 보키아는 이 연회에서 돈 후안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했다.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돈 후안의 웃음을 사고 있을 때 시종이 다가와 보키아의 귀에 입을 대고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했다. 보키아의 얼굴빛이 살짝 흐려지는가 싶더니 나즈막히 알았다고 말하고는 이내 특유의 웃음을 띠며 대화에 다시 참여했다.
발레트는 시종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종은 보키아의 뒤로 물러서면서 고개를 들어 발레트를 바라보았다. 단 몇 초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눈과 눈을 부딪혔다. 시종의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홀은 사람들의 말소리로 뒤덮였고 발레트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발레트는 상체에 묵직한 충격을 받고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어린 여자 하인이 벌떡 일어나 바닥에 쏟아진 음식을 주워 담으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보키아가 소리치자 발레트는 괜찮다고 말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로메가스가 빠르게 그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난 괜찮으니 가보도록 해요."
상처 부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발레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매무새를 수습했다. 그리고 릴라당의 옆에 다시 자리를 잡고 시종을 찾기 시작했다. 시종은 연회장 모퉁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발레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어린 하녀와 부딪히는 발레트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시종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발레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갔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새어나온 피가 그의 겉옷에 작게 물들었다.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