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타

발레타 1-10

"그렇게 걸어도 정말 괜찮으세요?
동이 틀 무렵, 크레누가 잠에서 깨기 전에 두 사람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괜찮다니까, 조금 쉬면 될거야."
"나디아한테 칼은 왜 안 보여 주셨어요?
로메가스는 곁눈질로 발레트를 슬쩍 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괴로워하는 나디아의 얼굴이 발레트의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또... 라고 했어.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 정찰병을 잡지 못했으니 시종과 연결짓는 건 어렵게 됐어요."
로메가스는 발레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며 그를 부축했다.
"당분간은 오스만과 접선하지 못할 거야. 다행인건 우리는 시종의 정체를 알지만 시종은 기사단 중 누구에게 들켰는지 몰라. 시종이 첩자일까? 아니면 중간 하수인일까? 보키아와는 관련이 없는 걸까? 그 증거를 찾아내야 해!"
발레트는 걸음을 멈추고 작은 숨을 내뱉었다. 꿰맨 부위가 걸을 때마다 아파왔다.
"며칠 후에 임디나에서 큰 연회가 있잖아요. 기사단도 초대를 받았어요. 그때가 기회일지 몰라요."
"오늘은 쉬면서 생각을 해보자. 지금은 좀 누워야겠어."
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사단 숙소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미로같은 임디나의 좁은 골목에 서서히 아침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발레트와 로메가스가 집을 떠난 후 나디아는 가슴에 숨겨둔 작은 칼을 꺼냈다. 그녀의 시간은 고조 섬에서 멈춰있었다.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죄책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지난 5년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칼에 찔린 발레트를 보았을 때 그녀안에 멈춰있던 시간이 깨어났다. 불타는 고향 마을의 한복판에 나디아는 서 있었다. 죽음은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고막을 찌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디아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죽음의 그늘에 드리워진 채 남겨진 자의 삶은 빈 껍데기 뿐이었다. 길게 뻗쳐진 손아귀는 그녀의 목을 짓눌렀다. 나디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형체없는 실체와 마주했다.
나디아는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15살의 어린 소녀가 혼자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소녀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나디아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꼭 안아주었다.
나디아는 오빠가 준 칼에 소중히 입을 맞췄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