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될 줄 알았지

3월 12일 댈러스, 미국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결국 떠나기 직전 아침에서야 마무리된 짐싸기. 그런데 필요한 짐을 다 담고 나니 캐리어가 닫히질 않았다. 결국 짐을 하나씩 빼고 또 빼고. 그래도 결국 22킬로그램이나 되는 캐리어와 어깨가 빠질 것 같은 백팩을 짊어지고 아슬아슬하게 동대구 복합환승센터에 도착해서 예약해둔 리무진에 탑승했다. 2시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해 위비뱅크와 써니뱅크로 신청해둔 달러를 찾고 커피앳홈에 갔더니 무료 음료는 커피만 된다고 해서 오랜만에 라떼를 마셨는데 마시자마자 위가 아파와서 반만 마셨다. 그 좋아하는 라떼도 마음껏 못 마시다니, 쳇. 지난 오년 반의 회사 생활이 내게 남긴 것은 고작 이런 것뿐이다. 슬슬 체크인을 하러 갔더니 아직 카운터가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이라 복도석에 앉고 싶었는데 사전에 좌석 지정을 하려니 10만원 가까이 추가로 줘야 가능해서 일찍 체크인하는 걸 노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그치만 내 뒤로도 어마어마하게 줄이 서기 시작해 나는 무사히 복도석을 잡을 수 있었다.

 

명가의 뜰에서 제육볶음이랑 늦은 점심을 먹는데 왜 이렇게 서글픈지 모르겠다. 오랜만의 혼자 출국이라 영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사실 이번엔 준비하면서 너무 힘든 나머지 진심으로 내가 왜 여행을 가겠다고 했는지 후회를 했다. 누가 가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가기 싫어서 죽겠는 마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항공권 예약들. 간다, 그래! 동생 넷북을 빌려가려고 했는데 넷북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포기하고 동생 몰래 동생 외장하드를 챙긴 터였다. 그런데 공항으로 오는 길에 메모리 카드 리더기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선글라스를 두고 왔다는 사실도 덤으로 깨달았다. 면세점에서 직원의 추천으로 선글라스 하나를 충동적으로 샀고 가까스로 리더기도 구입했다. 언제나처럼 바쁘게 아시아나 라운지에 들러 면세품 정리를 하고 양치하고 비행기에 타니, 아, 엄마한테 전화를 안 했네? 일단은 가자.

 

얼마 전 칸쿤에 다녀온 친구의 후기도 그렇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악평이 자자해서 걱정했는데, 새로 도입한 기종이라더니 시설은 굉장히 좋았다. 자리도 화장실이 보이는 중간 복도석이고 옆엔 한국인 남자 둘이 일행이라 자리를 비켜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참, 나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고 VOD도 한국어로 설정해두고 있었는데 내 옆의 남자는 굳이 내게 "sorry" 라고 영어로 말을 했다. 무슨 심리일까? 웰컴 음악은 굉장히 신나는 팝이었고 기내 안전 영상은 상당히 트렌디했으며 승무원들은 난동을 부렸다간 그대로 등짝을 때릴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서비스는 실로 쿨-했다. 나는 주로 아시아와 중동 항공사를 이용했기 때문에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약 열두 시간의 비행은 아무리 시설이 좋고 자리가 좋아도 힘들다. 비즈니스나 퍼스트를 타면 얘기가 좀 달라질까? 간식으로 제공된 라면을 포함해 세 번의 기내식을 받았고 모두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만 먹었다. 그럼에도 배가 빵빵해서 힘들었다. 잠은 거의 자질 못했는데 다리가 짧은건지 의자가 높은건지는 모르겠으나 발이 바닥에 딱 붙지 못해 내내 다리가 불편했다. (후에 유독 AA항공의 좌석이 높다는 걸 알았다, 나의 짧은 다리 탓만은 아니었던 걸로.)

 

12일 저녁 6시 30분에 출국을 했는데, 댈러스에 도착하니 12일 저녁 5시였다. 과거로 왔네? 우와, 신기해! 시차가 이렇게 많이 나는 나라는 처음이라서 괜히 신기했다, 촌스럽게. 댈러스에 도착해서는 미리 미국 입국 과정 공부를 좀 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사람들을 따라서 움직이면 되지만, 이게 입국 심사인지 세관 심사인지 알 수 없어 어리버리하게 굴었다. 키오스크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고 세관 심사를 받는데, 뭐라고 묻는데 못 알아들어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과일?" 하고 한국어로 물어봤다. 하하. 미국 입국 과정은 그야말로 줄 서기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과정은 (아마도) 입국 심사였는데, 하루만 머물고 볼리비아에 간다니 "오, 볼리비아. 좋은 여행되렴." 하고 쿨하게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어리버리하게 굴었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수월하게 입국했다. 휴.

 

공항 근처 지역인 어빙의 호텔을 예약해뒀는데 무료 공항 셔틀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 출국 직전까지 애를 태웠다. 결국 부킹닷컴 측에 문의해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전화를 하라는 답을 얻었다. 전화? 전화라고? 원래 전화를 싫어하는데, 거기다 영어로 전화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입국장은 완전 심플해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공중전화도 없었다. 와이파이 신호도 안 잡혀서, 결국 휴대폰 국제 전화로 숙소에 전화를 걸었었다. 대강 말을 하고 대강 알아듣고 끊은 후 내키는 대로 가다보니 호텔 셔틀 타는 곳이 보이길래 무작정 기다렸더니 셔틀이 왔다. 하, 언제나처럼 눈치와 운빨로 살아 남았다.

 

숙소 체크인을 하면서 저녁 식사할 곳을 물어보니 오 분 정도 걸어가면 식당이 있고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가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배가 별로 안 고픈데 배달은 최소 금액이 있는데다 전화 하기 것도 싫어서 그냥 호텔 로비에서 파는 냉동 마카로니앤치즈를 간단히 먹기로 했다. 미국에 왔으면 쇼파에 누워 맥앤치즈 정도는 먹어줘야지? 숙소는 꽤 좋았다. 침실과 거실이 따로 있는 스위트룸이 기본 객실이었는데 꽤 깨끗하고 아늑했다.

 

8시가 조금 넘자 미친듯이 졸리기 시작했는데 출국하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엄마랑 통화 가능한 시간이 될 때까지 버티다, 결국 10시 반에 엄마랑 페이스톡을 하고 잠들었다. 침대는 너무 푹신했는데, 너무 피곤하다 보니 자꾸 깼다. 깨서 더 잘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행복을 만끽했다. 단, 층간소음이 좀 있어서 위층의 쿵쿵 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고 도로 쪽에 위치해 차가 쌩쌩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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