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산책

Cur Linguam Latinam?

        간혹 영어로 적힌 글들을 읽다 보면, 같은 알파벳이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의 Carpe Diem.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Status Quo.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Homo Sapiens. 모 대학교의 로고에 조그마하게 박힌 Veritas Lux Mea도 있군요.

 

        교과서를 살펴보면 이런 생소한 말들이 더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를 의미하는 e.g.exempli gratia의 줄임말이며, "다시 말하면"을 의미하는 i.e.id est의 약자입니다. "잘 알아두어라"를 의미하는 n.b. 도 "기타 등등"을 의미하는 etc. 도 모두 nota beneet cetera의 줄임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어떤 언어이며, 어쩌다 영어에 이렇게 깊게 뿌리 박혀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영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콜로세움에서 발견된 라틴어 비석. 지금 널리 사용되는 알파벳은
사실 영어 문자 체계가 아니라 라틴어 문자 체계, 즉 로마자다.

   

        이 언어의 정체는 바로 라틴어. 이제는 역사의 발자취로 사라진 고대 로마의 모국어입니다. 안타깝게도 라틴어를 공식적인 국어로 삼는 국가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바티칸 시국에서는 중요한 가톨릭 의례에서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만, 다른 나라의 일상어처럼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젠 사용하는 나라도 없는 언어를 왜 배워야 하나요?

 

        어리석게도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답을 붙잡고, 덜컥 라틴어 공부를 시작해버렸습니다. 예전에 Sogno di volare라는 곡을 접하고 가사가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이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열망이 막연하게 생겨났습니다. 마침 그 가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글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접하고, '르네상스 시대라면 라틴어겠지, 다빈치도 라틴어를 했었다잖아'라는 매우 빈약하고 어설픈 역사관으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곡이 이탈리아어였음을 알게 된 것은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고 3일이 지났을 무렵. 하지만 라틴어 교재도 구매한 뒤라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라면 로마의 직계 후손과 같은 존재니까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가슴 속에 품은 채로요.

 

        물론 저처럼 충동적으로 언어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적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바보가 세상에 여럿이 있으면 큰 일 날거에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언제 꽃을 틔울지 모르는 나무를 키우는 것 같아 오랜 시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풋에 비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아웃풋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나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처럼 큰 시장을 가진 언어도 아닌,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는 노력 대비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아 보입니다.

 

        사실 누구나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스피킹을 더듬는 분들이라면, 조금 더 유창하게 영어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피킹에 문제가 없으신 이들은, 이젠 작문도 독해도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붙더라도,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해서 피어납니다. 왠지 지금 자신의 수준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는 것 같고, 그 경지로 온 몸을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친구부터, 미국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들까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고 계시다면, 언젠가 부딪쳐야 할 관문은 라틴어라고 저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원어민 수준으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탄합니다.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어. 신문이나 뉴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러면 저는 조언합니다. 저는 그러면 한국어를 넘어서 한자를 공부해야 할 때라고. 영어, 더 나아가서 서구 언어에 라틴어의 위치가 그렇습니다. 정말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언젠가는 라틴어를 배워야한다는 것이, 라틴어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답변입니다.

 

        언어를 논하는데 문화를 배제할 수 없겠지요. 특히나 문화교류가 활발한 국가들일수록, 언어도 서로를 닮아갑니다. 중국과 오랜 시간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과 일본도, 한자는 더 이상 필수 불가분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한자가 불편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문화라는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오늘부터 이전 문화로부터 독립이야! 이제 한자는 폐지하고 순우리말만 쓸 거야!"라고 할 수 없듯, 문화는 연속체이며 언어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라틴어 역시 이제는 200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화를 축적해 각기 다른 언어로 변모했지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양한 서구 언어들이 여전히 눈에 띄게 공통점이 많은 이유는, 결국 이 언어를 쓰는 국가들이 로마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라틴어를 알아두면 유럽의 다양한 언어들을 배우는데 용이합니다.

 

ㄹㅇ
카이사르의 마지막 단말마, "Et tu, Brute?"
여기서 Brutus가 아니라 Brute인 이유는 문장 안에서 호칭으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라틴어를 배워야 되는 이유는, 라틴어는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구하고 찬란했던 역사를 품었던 로마제국은 동과 서로 분열되었고,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동로마, 이른바 비잔티움은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실: 비잔티움 몰락 당시에는 라틴어를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대 라틴어는, 서로마제국의 몰락 이후에 평민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로망스어로 분화되었으나, 여전히 가톨릭 문화에는 라틴어의 입지가 굳건했었습니다. 중세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문학과 인본주의로 회귀하는 문화가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이 때 라틴어는 다시 한번 크게 각광을 받았으며, 그렇게 명맥을 이어 내려오며 발전된 라틴어는 이제는 수학, 과학, 신학, 법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전반에 걸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미적분을 소개하는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역시 라틴어로 적혔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기원이 되는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Principle of Philosophy)또한 마찬가집니다. 생물 분류법을 창시한 칼 폰 린네는 라틴어를 사용해 분류했고, 지금까지도 생물 분류법에 사용되는 역, 계, 문, 강, 목, 과, 속, 종은 대개 라틴어를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해부학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명칭들도 라틴어에서 기반했고, 법조계에서도 라틴어로 된 표현들은 여전히 즐비합니다. 이렇게 라틴어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충분했나요? 그래 라틴어가 참 흥미가 가는 언어야, 근데 영 배울 자신은 안나. 굳이 배워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시나요?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역시 이제 겨우 라틴어를 배우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배우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복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저는 지금까지 배운 걸 포스팅으로 정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제 복습을 보시면서 공부하시고, 저는 여러분들께 더 정확한 설명을 드리고자 복습하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만하면 개관으로 충분할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여러분에게 건네는 라틴어로의 초대장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상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5.6번 명제

 

p.s. 앞으로 포스팅에서 라틴어 단어/문장은 Latin 글씨체로 표기합니다.

p.s.2 라틴어에선 모음 글자 위에 작은 막대기를 달아 (e.g. ā, ē, ī, ō, ū)로 종종 액센트 표기를 합니다. 이에 대한 일관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액센트 표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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