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습작들

공허

나는 눈을 뜬다.
 
공허하다.
사방은 아무것도 없다.
위도 아래도 분간하기 어렵고,
높이와 깊이도 알아내기 힘들다.
 
언제나 차갑다.
살갗에 닿는 것은 애초에 차가웠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것은 똑같은 칠흑과 같은 어둠뿐.
과연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나는 이곳에 혼자.
 
외롭고 쓸쓸하다.
 
얼마나 지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지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나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나는 원했다.
 
‘이곳에 빛이 있으라.’
 
나는 읊조린다.
나는 빛에게 있으라고 하기에, 빛은 존재했다.
드디어 공간에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빛은 이윽고 다시 사라진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을 관찰하여, ‘시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시간’은 늘 나와 함께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빛이 계속 존재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며, 자신을 유지해줘야 할 뭔가가 더 필요했다.
가능한 영겁의 시간 동안 밝힐 수 있는 빛.
 
나는 만든다.
따라서 나는 다시 빛을 모아서,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 작은 공으로 뭉쳤다.
빛은 모이면 모일수록 눈이 부셨다. 나도 눈이 부셔서 눈이 머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빛을 모은 뭉치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알 수 없이 서서히 꺼져나가기에, 
다시 이 곳은 어둠밖에 없는 공허의 공간으로 가득 채워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빛은 나의 부름을 받고 왔으니, 다른 것도 나의 부름을 받고 오는 것이 아닐까?
나의 부름에 응답하며, 불러온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물질들’.
애초에 나도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따라서 나는 이 물질로 빛을 만드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만들었다.
작은 공은 항상 빛났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밝게 빛이 났다.
처음으로 내 가슴에 무언가가 가득 찼다. 이것이 성취감인가?
게다가 그 공은 따듯했다. 하지만 그 공의 주변에만 따듯할 뿐.
나에게 조금만 더 온기를
나에게 조금만 더 밝기를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에는 벌써 여러 가지 빛으로 이루어진 공들이 존재했다.
나는 이 곳에서 ‘탄생’을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공허한 공간을 밝히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나는 퍼트린다.
나는 이제 충분하니까. 내가 만든 이 아이들 중 대부분을 모든 공간에 멀리 퍼트렸다.
멀리서 보이는 작고 반짝이는 빛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생각해보니 전에 있던 나처럼 혼자다.
따라서 나는 빛이 나오지 않지만, 내가 빛의 구체를 만들기 전에, 실패했던 다른 돌덩이들까지, 붙여주기로 했다.
 
그러자 그 돌덩이와 빛의 구체가 서로 끌어당겨, 빛의 구체에게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나는 ‘죽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문제는 또 다시 생겼다.
 
나는 추측한다.
내 아이들에게는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러다 우연히 발견했다.
실패작들 중에는 그 일부가 내 아이와 함께 지내며 돌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생각 끝에 궤도를 만들었다.
일정 범위를 돌면서도 끌려가지 않고, 또한 벗어나지 말도록.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그 것들은
오히려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줬다.
고마운 마음에 실패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듬는다.
과연 이 아이들은 어느 것에 쓸모가 있을까?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답을 생각해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과연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혼자 있어서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빛의 구슬을 만들고, 그 와중에 수 백배의 실패작이 나왔다.
 
모두 혼자 있기에 쓸쓸하다.
따라서 그 실패작들에게 모두 ‘물질’이란 것을 선물했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 일어날까? 만약에 이상해지면 어쩌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경악한다.
대부분은 다시 말라버리거나, 얼어버렸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색상을 지니기 시작했다.
빛이 있기에 색상을 알아볼 수 있고, 미세한 차이라고 할 지라도 오래 기다리면 변화한다.
‘시간’은 나와 늘 함께 있다.
 
시간은 흐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나타났다.
내가 만든 빛의 구체 중에 일부가, 색이 점점 변하더니, 이윽고 공허한 공간에 구멍을 뚫은 듯.
거대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나는 ‘변화’를 발견했다.
 
알 수 없는 일에 나는 빛을 보냈다.
빛은 빠르게 검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빛의 구체를 만들어서 보냈다.
하지만 빛의 구체가 산산조각 나서, 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구멍은 크기가 더욱 커져나갔다.
 
나는 지켜본다.
그러자 내 아이들이 그 구멍을 중심으로,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천천히 빨아들이는 것 같으나, 멀리서 봤을 때는 내 아이들이 타원형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며,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감정이 벅차 올랐다.
아름답기 때문에...
 
그 구멍을 막을 수 있으나, 나는 막지 않았다.
이윽고 여러 장소에서 타원형으로 옹기종기 모인 나의 아이들을 보고,

스스로 탄생하는 새로운 아이들과 다시 사라지는 죽음.

수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보았다.
내가 만든 아이들이 아닌, 나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생명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불빛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그것을 조종하는 생명들.
 
나는 안도한다.
비록 내가 엉망진창으로 이 공간을 채우려고 했으나,
나의 아이들과 내가 아직까지도 모르는 것들이 얽혀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했다.
나는 여기서 ‘기적’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든다.
아직 모든 공간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잠들 수 있었다.
수 많은 시간과 변화에는
수 많은 탄생과 죽음이 따르지만
수 많은 물질 속에서는 항상
수 많은 기적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곳이 다시 공허로 가득 차면, 나는 다시 추워서 깨어나겠지.
하지만 내 아이들이 쓸쓸하지 않고, 공허한 이 공간을 밝히고 있는 지금은 잠들 시간이다.
 
===========================================================================
 
어...그러니까...

나도 이게 왜 써졌는지 모르겠네요.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
봄날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봄날 2017. 03/10

다른 장르의 글을 쓰셨군요^^ 환상계주님의 또 다른 매력을 본 것 같습니다.

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어! 소설말고 다른 글 올리셨네요! 이렇게 보니 새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