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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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대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건 언제나 감정에 휘말려서 그르치기 마련. 영혼이 있기에 그런 부작용이 있지만, 감정에 휘말려도 좋은 점은 있긴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빈 껍데기를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발언하는 리제로트. 그릇이 비어있을 때야 말로 무엇이든지 채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리제로트가 하는 건 그릇을 비워놔도 그 안에 있는 공기조차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 바보였다. 그 안에 채워져 있는 공기만큼은 절대로 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 아닐까?

 

인간의 영혼이 공기 같은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절대로 오해하지는 말자.

 

“뭐. 알겠어요.”

 

눈싸움에서 진 리제로트는 고개를 획 돌리며 월터와 같이 등을 돌렸다.

 

“그래도 의뢰는 의뢰죠? 선금은 얼마로 해드리는 게 좋을까요?”

 

“선금?”

 

“네. 느닷없이 “아. 저는 의뢰 못해요.”라는 바보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족쇄를 좀 채워놓을 생각이랍니다.”

 

“선금이라...”

 

솔직히 선금을 받고 일해본 적이 오랜만이라, 지금 이 일에 대뇌는 목숨을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뇌의 경우에는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한쪽 다리를 못 떨게 만들었고, 중뇌의 경우에는 제어하지 못하는 왼쪽 다리가 스스로 떠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아니. 독백의 표현 방법이 왜 이래?

엉망이잖아.

 

“선금으로 얼마를 받을지 모르시나요?”

 

“솔직히 나는 돈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는 타입이 아니거든.”

 

“위선자네요.”

 

“위선자고 나발이고 내가 사건에 휘말려서 억지로 해결하는 바람에 돈이고 뭐고 못 버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의뢰를 받으면 그에 맞는 의뢰비를 받아야 하지만, 몬스터들은 화폐가 아니라 물물교환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품들을 나에게 줬다. 이빨부터 뜯는 녀석도 있고, 왠 이상한 돌덩이를 메테오로 날려버리는 녀석들. 실제로 죽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지만, 실제로 기록에 쓰여져 있지 않았던 일중에는 해결해줘서 고맙다며, 영원한 죽음을 선물해주려는 기괴한 녀석도 있었다.

 

“그런 에피소드는 없는데요오?”

 

“그냥 어물쩍하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어째서 제 생각을 읽고 없다는 진실까지 말하는 겁니까?”

 

맞다. 그런 적 없다.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은혜를 입은 은인에게 영원한 죽음을 선물로 줄 생각을 할까?

 

“아무튼 빨리 백장미 찍게 이리오세요오.”

 

“뭘 더 찍을 게 있다고!”

 

“삑삑!”

 

......

 

어디선가 익숙한 새소리. 옆을 바라보니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는 웨이터 얼굴에 하얀 뱁새얼굴을 한 생명체를 보고야 말았다.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삑삑!”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언밸런스한 그 모습. 여기서 알바를 하고 있는 건지 종업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이곳 카페의 주인은 백곰이었나? 아무리 백곰이라도 저런 기괴한 생명체는...

 

“삑삑!”

 

“그만해! 그리고 그 앞치마는 또 뭐냐! 나더러 입으라고? 웃기지마! 네 놈 정상이냐!”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나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비는 꿈쩍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째서 저런 녀석이 신수라고 할 수 있지?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촬영할까요오?”

 

“안 해요!”

 

사람의 눈이 많이 띄는 장소에서 이런 옷을 입고 일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혹은 자살방지를 위해서 “너 자살하기 전에 분홍색 앞치마에 여장을 하고 고양이 귀를 달아서 아르바이트를 뛰어라.”라고 말하면, 그 순간 자살하는 사람은 어이가 없어서 자살을 그만두게 되고, 밝고 활기찬 미래만이 반겨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진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 대신 저 위에 있는 말을 꺼내진 말자.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본인부터 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저는 이 옷의 저주를 빨리 풀어야 하기 때문에, 백장미고 뭐고 찍을 마음도 없어요.”

 

“카일이 많이 아픈가봐요오...”

 

“진짜로 절 환자 취급하지 말아달라니까요?”

 

이 정도면 날 정신병으로 몰고 갈 생각인가?

 

“저는 갈길 갈 겁니다.”

 

기괴한 뱁새 이비를 지나치고 앞으로 나아갈 무렵. 저 멀리서 앉아있는 릴리스가 다가왔다. 결국 환영에 불과하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착각을 일으키는 기괴한 환영마법. 강인한 정신방어능력이 아니면 분별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내 정신방어능력은 남들이 다 알아줄 정도로 강력하나 보다.

 

아무래도 이 정신방어능력의 존재의의는 내가 맨정신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인가?

 

“여전히 떠들썩해서 좋네.”

 

“떠들썩해서 좋은 이유는 없다. 그런데 릴리스 이비가 왜 저기서 알바를 하는 거야? 아리엘은 알고 있어?”

 

“아니. 나도 처음 알았는데. 나중에 아리엘에게 알려줘야겠당~”

 

“당은 또 뭐야?”

 

“포도당~”

 

“하지마!”

 

이 개그 하나로 더운 낮이 영하 10도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팔짱을 끼는 감촉마저 사실인 것 같지만, 결국 환영인 릴리스는 실제로 내 옆에 없는 존재다.

 

“꿈의 미로에서 지켜보니 재미있나?”

 

“재미있지. 정말 재미있어. 꿀잼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쓰이는 걸까나?”

 

제기랄...

빨간 티셔츠만 입는 곰돌이가 사용할 법한 단어는 또 뭐냐? 이곳에 와서 이상한 것들만 배운다니까?

 

“그런데 한가지. 리제로트에게 당한 건 많은데, 의뢰인으로 받아준 자기의 생각을 듣고 싶어. 혹시 또 하나의 컬렉션 추가야? 고독하고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평생 각인될 황홀한 경험을...”

 

“일단 멈춰. 그리고 입 닫아. 2분간 입 닫고 있으면 내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네가 잡화점으로 찾아왔을 때 아이언 클로를 출격해야 하는지 생각을 좀 해야 되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꿈의 미로로 찾아가서 난동부릴 테니 각오해둬.”

 

그래도 말은 잘 듣는지 정말 2분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하게 2분이 지났을 때.

 

“이 로리콘!”

 

“정말 죽어볼래!”

 

어째서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걸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던 릴리스에게 화낼 기력도 없다. 결과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나는 모든걸 내팽개치고 잡화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나마 돌아갈 장소라는 곳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했지만, 힘들고 지칠 때는 그냥 쉬고 싶은 장소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건 마찬가지겠지.

 

“사람은 영혼이 없는 상태가 순수하다라...”

 

리제로트의 말을 내 입에서 곱씹었다. 영혼이 있기에 타락을 하기도 하고, 신앙으로 깨끗해진다고 하지만, 사실상 성향이 바뀐다는 말을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하다.

 

“자기는 그 소녀가 했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거야?”

 

“어느 정도라면 어디까지인지 설명해줄래?”

 

“대략 15%정도?”

 

15%라.

 

대체 얼마나 동의를 해야 15%라는 수치가 나오는 걸까?

 

“사람은 영혼의 유무에 따라 순수함이 달라지는 게 아냐. 순수하다는 기준도 멋대로 만든 거지. 다이아몬드를 가공해서 그 완성품이 순수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원석 그대로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순수하다는 평가도 내릴 수 있어. 영혼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순수함을 따지는 건 넌센스야.”

 

말 같지도 않는 걸 그대로 지워버리고, 릴리스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거리를 맴돌았다. 드디어 도착한 장소는 평범한 구두점. 아니, 300년 뒤의 발전된 세계에 비하면 대략 60년정도 뒤떨어진 건물이었다.

 

“이런 곳에서 누가 사는 거지? 혹시 저 건물도 풍선 달고 날아다니는 거 아냐?”

 

“지금 잡화점은 300년이나 낡았다고, 상대적으로 보면 저 건물이 최신식인데?”

 

릴리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뭐가 기쁜지 먼저 앞서나가는 릴리스를 뒤따라가며, 문 앞까지 도달하자 신사다운 노크를 2번 정도 했다.

 

“그 다음은 눈사람 만들러 갈 거냐고 물어보는 거지?”

 

“그거 리듬에 맞춰서 5번 두드린 다음 하는 거거든?”

 

릴리스는 작년 겨울에 눈사람을 만들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혔나? 아니면 또 다른 기괴한 문화가 오염되어 무의식적으로 입밖에 퍼트리는 상황인가? 릴리스는 옆머리를 귓가 뒤로 쓸어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 장소는 이전에 아리엘과 같이 왔던 장소 중 하나야.”

 

“그래?”

 

“이곳에서 Yee.T 보드게임도 했지.”

 

“그건 듣고 싶지 않아.”

 

그 보드게임은 언제부터 이 세계를 침공하기 시작한 걸까? 만약 멋대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보드게임부터 제거하는 걸 시작으로 타임라인을 정리할 것이다. 과거로 가는 장치를 가진 미치광이가 자신의 흑역사를 제거하는 것처럼.

 

그 뭐냐...슈트는 절대로 초록색으로 하지 말아달라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마블에서 일하고 있잖아?”

 

“왜 내 독백을 읽고 마블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냐. X교수님이 네 머리 속에 직접 텔레파시라도 걸어온 거냐.”

 

“아무튼 난 녹색 슈트가 싫어서 안 한다고 했어.”

 

“완전히 다른 곳에서 부르고 있잖아!”

 

녹색반지는 고향이 따로 있다고.

울트라 맨처럼 따로 고향이 존재한단 말이다.

 

그보다 벨리알은 잘 살아 있으려나?

 

“악당 생각이나 하는 건 좀 아닌데.”

 

“그래도 울트라 맨 악당 중에서 가장 멋졌다고.”

 

만일 악당이 된다면 차라리 그런 악당이 되어 우주적으로 놀아보고 싶긴 했다만, 나의 또 다른 이면은 그렇게 되면 매우 귀찮아지기에, 그저 안전한 장소에서 가만히 놀고 있는 게 좋겠지. 선악의 개념이 매우 불투명한 이런 순간엔, 내가 좋은 일로 움직여도 남들이 보기엔 악당이 될 수 있다.

 

“잡화점에서 악당 노릇이나 하면 무슨 일부터 할 거야?”

 

반 농담 삼아 릴리스가 물어봤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니 또 다시 반문을 하는 나.

 

“악당 노릇? 그건 왜?”

 

“자기가 악당이 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볼만할 거 같아서.”

 

악당이라고 한들...

 

“난 3류악당이 될 마음은 없다. 그러니까 이제 좀 들어가자고.”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문고리를 붙잡고 들어갔는데, 문이 열리면서 낮임에도 불구하고 빛은 이제서야 그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밝아지는 장소.

 

“이번엔 어떤 손님인지 기대되는데? 저주를 잔뜩 가지고 오다니. 마왕이라도 잘못 건들인 건가?”

 

어떤 마왕을 건드려야 여장을 당한 상태로 평생을 사는 저주를 받는 거지?

 

“뭐. 어떤 이야기든 심각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이리로 들어오게.”

 

울려 퍼지는 여성의 목소리.

그보다 이 가게는 구두점 아니었던가?

 

“구두점에서 저주를 풀 수 있다고? 나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누구길래?”

 

“그거야 당연히.”

 

밝은 빛이 계속해서 자리를 채운다.

 

“덤디덤...”

 

“여기서 나올 대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샌즈에게 해주를 요청하겠다.”

 

“그거 참 ‘골’때리는 해주가 되겠구나.”

 

이 녀석 너무 잘 알잖아.

뭐 하는 녀석이야?

 

“꼭 표정이 내가 뭘 하는 인간인지 궁금해 하는 거로군.”

 

“아닌데.”

 

일단 거짓말이라도 하자.

 

“뭐. 거짓말이라도 부정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네.”

 

대체 어떻게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거냐고.

 

“그래도 그 모습으로 나만의 고양이가 되어준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과거 때부터 겪어온 게 많으니까 좀 그렇지?”

 

“좀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이 그렇지. 그보다. 과거에서 이곳까지 날아온 걸 어떻게 안 거지? 릴리스와 아리엘이 한번 찾아와서 그런가?”

 

방안이 비추고 모습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 정신에는 충격이 돌아 뇌가 정지할 뻔했는데...

 

“오랜만이야. 잡화점의 주인.”

 

“켈모리아...”

 

켈모리아 마그누스.

생각을 해보니 그녀도 시공간술사의 길을 걸었던 최고의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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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일찍 자러 간다고 퇴근했습니다.

앞으로 11시간은 자겠군요.

 

그래도 피곤하다면 이 몸은 답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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