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3 - 1

584

 

언제나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라면 매우 간단하다.

내가 나를 챙겨야 하는데 남을 생각할 시간이 있을까?

언제나 나 자신에 대한 여유를 찾아야, 오지랖 넓게 남을 생각해주는 척을 할 수 있지.

-맹렬한 추격전을 끝마치고 결국 붙잡힌 카일의 생각.

----------------------------------------------------------------------------------

 

리제로트 처리 여부는 레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우려한 것은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 보통 고위급의 간부나 귀족, 대상인 등.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을 고용하여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다만, 레인의 경우에는 일반상식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분명 개인방송국을 열어서 “저! 오늘! 살인합니다!”라고 경찰서 앞에서 신나게 떠벌릴게 분명하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언제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부류에, 켈모리아 마그누스가 있었고 레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려버렸다. 레인의 성격을 고찰하면 고찰할수록, 이 녀석은 자극적이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생 살아가는 동안 자극적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내가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태클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

 

레인은 1분 1초라도 지루할 틈이 없다.

 

위험천만한 것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초능력도 레인의 성격과 매우 흡사한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 따라서 지금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이른 아침에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눈을 떴는데, 거기에는 백장미를 못 찍게 하는 나에게 반기를 들어버린 루니아 누나를 필두로, 모든 잡화점 멤버가 기습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모든 도로와 모든 건물들을 통해서 달리고, 뛰고, 부수고, 날리고를 반복. 그 일대에 피해는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20분 뒤에 치열하고 처절했던 아침운동은 막을 내렸다. 루비아의 글레이프니르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아무런 힘도 못쓰고 그대로 붙잡혀야만 하는 사기적인 아이템.

 

매번 나를 죽이라는 말을 해도, 되돌아오는 것은 자비가 아닌 비웃음과 더불어 빌어먹게도...

 

“카일 씨는 보면 볼수록 여장이 진화하네요?”

 

“닥쳐.”

 

레인이 내 신경을 긁다 못해 삽으로 파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는 분노를 천천히 조절하면서 제거하고 있는 나의 모습. 마음속에서 심호흡을 1시간 전부터 120번 내쉬고, 한번의 한숨으로 내 입밖에 튀어나왔다.

 

심호흡을 마음속으로 내쉬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현 상황이 더 이상하니까 빨리 여장을 풀기 위해 노력을 하자. 어처구니 없게도 옷 하나하나가 모두 기괴한 저주덩어리들이라, 물품을 이용하여 해주를 하거나 고위 프리스트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 레인에게 찾아간 이유는 레인의 능력을 이용해서, 저주를 해제하려고 했으나 위험한 건 하나같이 다 들어가있는 잡화점 물품의 특정상, 지금 해주 할 수 있는 물품을 찾으러 떠나고 있다.

 

지금은 천계가 모조리 비어있는 상황에서 대주교를 찾아가던 성녀를 찾아가던 권능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물품을 빨리 찾고 이 바보 같은 옷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그래서 이번엔 검은 고양이인가요?”

 

“닥치라고 했지.”

 

“마왕님과 커플룩이네. 아니, 커플 종족인가?”

 

“분자단위로 해체해버리기 전에 닥쳐.”

 

“닭을 때리라뇨. 카일 씨는 잔인한 사람...아! 아파! 알았어요! 잘못했다니까요!”

 

커플 종족이라는 어감이 굉장히 이상해서, 본래 때리려는 힘보다 1.2배정도 강하게 때렸다. 내가 여장을 함에 따라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기는커녕, 잡화점 멤버들은 좋아하고 있고, 히드라는 계속해서 “풋!”하고 짧은 웃음을 스타카토로 연주했다. 조만간 불러내서 중모리장단으로 때려야지.

 

“이걸 도와주면 리제로트를 제거하는 것에 동참하겠다는 소리죠?”

 

“애석하게도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지, 하지만 내가 죽이라고 하면 죽여도 상관 없어. 대신 멋대로 먼저 죽이지는 마라. 물어볼 건 물어보고 죽일지 살릴지 결정해야 하니까.”

 

“역시 어린애를 좋아해서 그런가?”

 

“은팔찌를 찰만한 발언은 그만둬라. 그리고 나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어린애를 좋아하는 건 너잖아. 이 범죄자야.”

 

“범죄자라뇨. 고성능 싸이코라고 해주세요.”

 

“어째서 너는 그런 대답이 나오는 거냐?”

 

사람들이 자신에게 싸이코라고 하는 경우는 친한 친구들의 대화 중에선 나올 수 있지만, 정상인과 비정상인들의 대화에서 비정상인이 싸이코라고 한다면, 그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당장 피하자.

 

“그런데 리제로트를 끌어 내려면...”

 

“무슨 소리하려는지 알고 있으니 제발 좀 조용히 해.”

 

“정말요?”

 

“아니. 사실 모르는데 짜증나니까 조용히 하라고.”

 

레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너무 과민반응을 한 터라 혹시나 마음이 상했을까? 그나마 미안함이라는 감각이 내 이성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 폐가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카메라들이 사방팔방에 있는 거야.”

 

기존에 찍었던 백장미와는 다르게 생동감을 주기 위함이라고, 내 주변에 카메라처럼 생긴 물체들이 이곳 저곳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뭐, 어디에 묶여서 강제로 촬영을 당하는 것도 나쁜 거지만, 이건 뭐...대놓고 도찰하겠다는 거잖아?

 

“조만간 가지 말아야 할 폐가에 찾아가서 기이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는 건가요?”

 

“이 세상에 폐가에 찾아갈 생각을 왜 하는 거야?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면 안 되지.”

 

무엇이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가장 큰 목적은 유랑극단도 아니고, 리제로트를 찾는 것도 아니고, 옷에 걸려있는 저주를 풀어서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위함이니, 오늘 하루는 이 일에 집중을 하도록 하자.

 

“카일 씨는 여장을 가장 싫어하네요?”

 

“그야 하기 싫은데 억지로 입히니까 그렇지. 잡화점 멤버는 기본적으로 내 의견은 묵살하고 입히거든. 카메라에 녹화가 되니까 그 이상 말은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보여도 나는 꽤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

 

그 어떤 인간도 성별이 바뀌는 경험을 체험하는 건 쉽지 않는 일이지만, 잡화점 안에 있으면 방심하는 순간 바뀌는 터라, 전생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갑갑한 내 상황에 한숨을 내쉬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이 되었는데, 제길 한숨을 쉬는 것조차 반응하도록 내 존재감을 높여버렸나?

 

“뜬금없이 말하는 거지만 시선이 너무 많이 쏠리는데요?”

 

“아까와도 말했듯이 이 옷들은 저주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레시아와 시나가 같이 다니지 않는 게 가장 크겠지만, 지금 내 존재는 일이 너무 바빠 죽을듯한 사람도 나를 무시 못하게 되어있어. 이래선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일부러 차가 적은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건데, 여기도 사람이 너무 밀집된 구역이라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네.”

 

주변에서 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내 몸에서 타고 흐르는 싸늘한 소름은 내 생각을 거부하기 마련. 보고도 못 본척하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부터, 그냥 대놓고 보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까지 가지각색이다. 또 다른 경우라고 한다면...

 

“헤? 고양이 꼬리는 진짜 같구나.”

 

뒤에서 뜬금없이 목소리를 낸 릴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겨울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 추위는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니기에, 꽃샘추위를 견디기 위한 흰색의 시스루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스커트와 연분홍색의 연분홍 빛이 스며든 세미 자켓을 입고 있었다.

 

“대체 고양이가 뭐길래 계속해서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다는지 그 이유부터 묻고 싶지만, 지금은 매우 바쁘니 그 일에 대해 나중에 말하도록 하지.”

 

사실상 여장을 당하는 와중에도, 릴리스가 “그럼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다는 건 어떨까?”라는 말 한마디에 고양이 귀와 꼬리가 최적화된 코디로 바뀌어버렸다. 불 나는 집에 기름을 더 부어버린 릴리스는 옷을 입고 있어도, 감각적인 몸과 다른 이들을 홀려서 녹일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라면 내 환각에만 보이기 때문.

 

아무리 환각을 이용하더라도 적절하게 쓰면 그거야 말로 좋은 정보원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의 경우에는 릴리스가 길잡이를 해주고 있는 역할이다. 여태까지 나는 목적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니까, 릴리스에게 책임을 묻고 저주를 풀기 전까지 길잡이를 하라고 했다.

 

“아무튼 지금 거의 다 온 거야?”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

 

아직 한참 남았으면 지금 빨리 가야 할 텐데, 매번 미소를 짓고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이트 했으면 좋겠다~ 이런 봄 날에~”

 

“그거 협박이지?”

 

“글쎄? 나는 협박 같은 거 모르는데?”

 

천진난만하게 나를 보고 있는 릴리스의 말과 의도를 번역하자면, “데이트 해주기 전까지 그 옷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장소를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라고 들리게 되었다. 기이하게도 분명 피해 받은 사람은 나고, 이런 꼴로 만든 공범은 릴리스인데도, 갑과 을의 관계는 릴리스가 더 높았다.

 

“하아...지금은 레인도 동참하고 있으니까 데이트는 나중에...”

 

“응?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해주를 할 수 있는 물품을 파는 곳이 떠오르지가 않네?”

 

“아! 진짜! 알았어! 하면 되잖아!”

 

이 모습을 입고 데이트를 한다고? 나를 죽이다 못해 무덤에서 꺼낸 뒤에, 5개로 분해하고 5대륙에 파묻는 것과 같다. 소리질러서 이곳으로 다시 시선집중이 되었는데, 주변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자기가 데이트를 해준다니 따라갈 수 밖에 없잖아?”

 

“내가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환각과 같이 데이트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환각이라고는 해도, 나와 적절하게 링크가 되어있으니 잘 대해줘야 해?”

 

그리고는 나와 레인의 사이를 뛰어들어 내 팔을 붙잡았다. 그 사람에게만 보이는 환각은 그 감각까지 혼란을 일으키지만, 레인의 경우에는 릴리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접촉자체를 할 수 없으니 아무일 없는 듯이 걸어갔다.

 

“릴리스라는 분은 어디에 있는 거에요?”

 

“지금은 꿈의 미로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겠지.”

 

“몽마들의 여왕이기 때문인가요?”

 

“기이하게도 꿈은 모든 차원과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공간이니까. 꿈에 한정을 짓자면 릴리스가 잡화점에서 최강자에 속해. 레시아도 릴리스가 꿈에서 추방시키면 꿈의 미로로 들어가지 못하거든.”

 

세계를 창조하고 강력한 마왕이 되고 최고의 여기사로 명성을 떨쳐도,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규칙에 대해 얽매이기 마련. 그 시공간의 규칙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릴리스야 말로, 어찌 생각을 해보면 최강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하...

일하기 싫ㅇ...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