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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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는 검과 방패 등. 여러 장비를 부딪치면서 싸워나간다. 그 안에선 수많은 힘겨루기와 심리전이 오고 간다면, 빠르게 휘두르고 길이가 짧은 단검들의 싸움은 힘을 쳐내고 흘리기보단 차라리 피하는 게 속 편하다고 보면 된다. 그 이유라면 단검을 쳐내서 경직을 주는 것보다, 다음 공격이 더 빠르게 들어오기 때문이니까. 차라리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경로를 가로막는 게 더 좋다.

 

손끝이 아려오는 칼부림에도 꿋꿋하게 들어오는 공격은 당황을 넘어서 질리게 만들었다. 바람의 정령왕의 가호를 받은 단검인데도 불구하고, 어릿광대가 들고 있는 검은 단검에 뭔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힘을 계속해서 상쇄하기 시작할 무렵. 거대한 돌풍처럼 내 단검을 감싸고 있던 바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음. 그렇군.]

 

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혼자만 알고 있는 히드라에게 질문했다.

 

[혼자만 알지 말고 정보는 공유하면서 좀 살도록 하지?]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다. 혼자서 골똘히 잘 생각해보도록.]

 

매정하게 걷어차버리듯이 거절하는 말에 지금 당장이라도 몸통을 붙잡아 비틀어버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대화로 해결하자.

 

[지금은 손과 발. 그리고 머리가 한참 바쁠 시기에 그것까지 생각하려고 하면, 5G여도 불가능하니까 제발 좀 알려줘라.]

 

[흐음. 자비로운 내가 알려주도록 하마.]

 

자비는 개밥그릇에 같이 던져서 준건가? 그 단어는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저 어릿광대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정확하게 저 객체는 월식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라 보면 된다.]

 

[너희들도 돌연변이가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나중에 눈에서 레이저도 나가는 거냐?]

 

[그랬으면 꽤나 재미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돌연변이가 아니다. 월식이라는 존재들은 본래 하나였으나, 다른 객체에게 붙어서 힘을 빼앗기면 다른 객체가 월식이 되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니 저 어릿광대도 본래의 형태를 잃고 뱀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 무언가가 인간의 형태로 붙잡아 놨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뱀의 형태가 아닌 인간형의 월식으로 인지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그걸 공유할 수 있는 너희들은 이제 뱀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거잖아?]

 

검은 실루엣의 인간들이 사방팔방에 돌아다녀서 세상을 포식하는 상상을 해보니, 악몽으로 나타나면 꽤 무서운 이미지가 되었다. 지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

 

“지금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는 거람?”

 

“이런!”

 

언제 파고들었는지 서늘한 감촉이 내 상의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웠다면 오른쪽 옆구리부터 왼쪽 어깨까지 베일 뻔했다는 사실이, 내 몸을 조금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신경이 곤두설 때쯤 옆에서 다가오는 검은 칼날을 왼손을 움직여 차단하려고 했으나, 내가 예상하지도 못한 힘 때문에 휘청거릴 뿐이었다. 계속해서 빈틈을 내주면 크게 당하기 마련인데, 그나마 윈디의 바람장막이 어릿광대가 단검을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옆으로 빗겨나가 겨우겨우 살 수 있었다.

 

“춤을 잘 추지 못하면 앞에 있는 숙녀에게 실례라고?”

 

“이게 무슨 춤이냐? 살려고 발버둥치는 거지!”

 

단검에 대한 숙련도도 그렇고 아슬아슬하게 따라붙고 있지만, 미세한 차이로 어릿광대가 내 실력을 앞서고 있다. 결국 다시 시공의 눈을 개안하기 위해 지금까지 신체강화로 사용하던 에너지들을 다량으로 소비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느려지는 어릿광대의 공격을 옆으로 쳐낸 다음, 회전력을 이용하여 왼발로 어릿광대의 가면과 같이 차버렸다.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은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려서 결정타를 먹이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내 경우에는 어릿광대에게 뜯어낼 정보가 많아서 그렇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순간 잊고 있었는데 후회가 막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느릿느릿하게 일어서는 어릿광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금이 간 가면 속에 붉은 눈을 한 소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선생님. 많이 아프네요. 쿠쿠쿡.”

 

과거에 만났던 어린 시절의 레프리시아 그대로 모습을 바꿔버린 어릿광대. 정말 그 머나먼 과거 속에서도 어릿광대는 도플갱어로서 존재했다.

 

“도발의 의미라면 소용없어.”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번엔 다른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어릿광대. 이번엔 내가 선생으로 변장했을 때의 그 모습. 머리카락은 가발을 써서 긴 장발이었으나, 옷은 광대복장에서 제발 제외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군. 그래도 지금 이 모습이 꽤 좋았는데. 그때는 순한 성격이 아니라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었지?”

 

“사람은 각오를 하면 변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지금 그 모습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나의 모습으로 어릿광대는 피식하고 비웃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어. 그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우쳤으면 좋겠다는 거? 아니, 지금은 그 신적인 에너지를 이용해서 인간의 규격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으니, 깨우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몰라?”

 

“이브센티아의 학살자였던 나를 깨우치라는 거냐?”

 

어릿광대의 질문에 답을 내리자. 피투성이인 내가 그 자리 앞에 서 있었다.

 

“당연하지! 아직도 자기가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혹은 죄를 뉘우쳤으니 그 사건에 대해 멀리 떨어져도 좋다는 건가? 아니! 절대로 아니지! 그 잔혹한 학살자는 어디 가지 않고 300년 뒤의 미래에 버젓이 나타나, 모든 평행차원에 대 재앙을 이끌고 있으니까! 이거야 말로 진정한 대학살이 아닐까?”

 

“진정한 대학살을 하기 전에 너부터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

 

급격하게 떠오르는 분위기를 급격하게 식혀버렸다. 당연히 내 말 때문에 짜증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하던 찰나에, 다시 하얀 가면을 써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 전에 저 가면은 또 어디서 꺼낸 거야?

방금 전에 발차기로 가면을 박살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월식 안에서 작은 난쟁이들이 가면을 만들고 있지롱~”

 

“웃기지마! 그 안에 들어가면 다 죽는 건 용병인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 마치 H2O가 산소인 것처럼 말이지!

아니...저건 물이잖아?

누가 저런 말을 당당하게 내뱉은 거야?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자기는 유머감각이 너무 없다~”

 

“애석하게도 나는 태클을 거는 사람이거든. 그게 나의 숙명이고 말이야.”

 

다시 날아드는 단검을 오른팔로 휘둘러서 튕겨냈다. 불꽃이 내 눈 앞을 그리고 지나가는데 느닷없이 날아드는 어릿광대의 오른팔은 검은색 뱀이 입을 열고 뻗어 나아갔다. 유연하고 신속함마저 내 눈 앞에서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고, 대놓고 붙잡아서 멈출 수 있어도 경솔한 판단은 오히려 독이 되니, 거리를 먼저 떨어뜨린 다음 지켜보기만 했다.

 

“응? 더 이상 두고 볼 것이 또 있는 거야?”

 

“당연하지. 미지의 적을 두고 전력을 사용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선, 어릿광대. 네가 무슨 꿍꿍이로 그런 무의미한 일을 벌였는지 잘 모르겠어.”

 

과거에 자신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리를 흔드는 건 나에게 불필요하지만, 아마 어릿광대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보여줬다. 물론 과거에도 어릿광대는 존재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크게 보면 지금 이 녀석의 정체는...

 

[월식에서 돌연변이라? 그러면 내 앞에 있는 어릿광대는 다른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거잖아?]

 

[사례가 있다면 지금 딱 모습을 보아하니 니알라토텝이 되겠군.]

 

[왜 크툴루 신화에나 나오던 녀석이 여기서 돌연변이 일으킨다고? 왜 여기서 난동을 부리는 거야? 은가이숲으로 떠나라고 해!]

 

이곳에서 다른 세계의 설정들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아니, 다른 세계의 설정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라면 다른 평행차원들이 융합되기 때문일지도 몰라. 모든 평행차원이 이곳으로 밀집되려고 하니까, 그 차원에 다른 에너지들이 이곳으로 점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괴상한 크툴루 신화라던가 예전부터 있었던 가지각색의 패러디 같은 것들이 나타난 걸지도 모르지.

 

“이 세계는 너무 난장판이네.”

 

“응? 갑자기 왜 신세한탄을 하는 거야? 자기는 지금 나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

 

“이게 그러면 연인싸움이 되는 거냐? 태클을 걸 게 여러 곳 존재하지만, 내가 직접 이야기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이 나올지는 다 알 테니 말을 아끼도록 하지. 레이베리아는 이 일까지 꿰뚫어보고 각본을 쓴 건가?”

 

어릿광대는 키득키득하고 웃었다. 하얀 가면 뒤에 어떤 얼굴로 하며 웃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3초간 웃고는 어릿광대의 가면에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 깨달은 거 같네? 이번 일로 인해 우리가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으면 둘 중 하나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나는 모든 평행차원을 다 멸망시키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를 그만 놔주고 과거로 가는 거야. 이런 싸움 더 안 해도 된다고?”

 

싸울 의지를 꺾는 걸 넘어서 이곳에 존재할 이유도 제거했다.

 

그래도 뭐...

그건 다른 일이고...

 

“뭐 먼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내 이유는 굉장히 사소하다는 소리인가?”

 

“이런 싸움을 하면서 모든 차원을 멸망시킬 이유가 없다는 거지. 어차피 자기는 본래 시간대로 돌아갈 거고, 오히려 미래가 이렇게 되도록 정해진 삶밖에 못 사는 거 아닐까? 그래도 미래를 알았다고 과거를 급하게 바꾸려고 하지는 마. 더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패러독스인가.

 

“미래에 모순이 생기는 것만큼 인생이 꼬여버리는 일이 적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던가?”

 

나도 돌아가면 레인과 같이 정해진 흐름대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건 또 골치 아픈 소리였다. 누가 예정된 일을 생각 없이 살아가면서 죽기까지 기다릴까? 사람은 죽는 걸 알면서도 잘 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존재다. 영원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된 생명이니까.

 

좀 더 편하고 부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계를 지워서 다시 만든다고 해보자.

열심히 살아온 모든 게 없어지는 셈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만 생각해봐야겠어. 우주가 어찌되든 뭐가 걱정이냐?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데?”

 

“흐응?”

 

방금 발언에 의아해하는 어릿광대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아무래도 쓰레기 같은 발언을 한 모양인데...

 

“뭐 어쨌든...내가 이곳에 있는 건 내 맘대로니까. 멋대로 가라 마라 하지마.”

 

“그러면 뭐 어쩔 수 없고.”

 

시공의 눈이 개안된 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이 느리지만, 어느 순간 어릿광대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튀는 불꽃이 내 시야에 흩날렸고, 머지않아 거대한 실선이 내 몸을 그어버렸다.

 

“큿!”

 

붉은 액체가 내 상체부터 쏟아져 내렸다. 따끔한 고통마저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박혀있는 검은 단검은 내 몸을 그대로 침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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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은 정말...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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