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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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꽃은 이곳 저곳에서 튀어 오른다. 윈디와 동화하여 바람의 힘을 빌리고 있는 동안에도, 어릿광대의 단검은 매섭게 그지 없었고, 하나하나가 죽음으로 가는 편도여행이 되기 전에 쳐내고 회피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까지 시공의 눈은 개안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주변에 차량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의미라면, 나와 어릿광대의 싸움이 눈에 보였으니 그 자리에서 피한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나의 존재감을 극한으로 낮춰도, 어릿광대는 존재감을 낮추거나 그러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나까지 사람들의 눈으로 들어왔겠지. 허공을 돌아도 날아오는 검은 단검을 쳐내는 것도 일이지만, 바람장벽 하나가 날아드는 단검을 무력화 시키고, 뱀 조종자가 내 의지를 받들며 내 왼팔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촤라라라라락!

 

[야. 히드라. 너는 왜 안 나가냐?]

 

정확하게 8개의 사슬단검만 튀어나가고 가운데에 장식처럼 가만히 서있는 검은 사슬단검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움직이기 귀찮다. 봄이니 말이다. 언제나 봄은 편하게 쉬기 위한...]

 

[어째서 월식이 춘곤증에 힘들어하는 거냐! 그러고도 잘도 세상을 포식하고 다녔다?]

 

[먹는 것과 춘곤증은 별개의 문제니 나는 자고 있겠다. 끝나면 다시 깨우도록...하암~]

 

협력관계라서 뭐라 할 수도 없고 어릿광대에게 콩트를 보여줄 만큼 여유로운 상대도 아니니까. 결국 8개의 사슬만으로 내 홈 그라운드를 만들어야겠구나.

 

“자기는 매번 아군과 티격태격하나 봐?”

 

“너는 춘곤증에 힘들지 않냐?”

 

“응?”

 

“아냐. 아무것도.”

 

어릿광대도 커다란 분류로 따지면 월식이니까. 혹시나 월식의 종족특성상 춘곤증에 약하다라는 약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춘곤증을 앓고 있는 건 히드라뿐인 것 같다. 이건 대체 무슨 난장판인지...

 

어릿광대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싸울 마음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는지, 살기를 거두고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매번 생각해오는 거지만 자기는 우리를 너무 좋아해서, 300년전에 있어야 할지라도 우리를 방해하러 온단 말이지? 어디 정의의 사도처럼 “너희들의 사악한 계획을 막으러 왔다!”라는 패기도 없고, 고작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그저 방해하려고 할 뿐이니까.”

 

“너희들의 하는 일이 사악한 계획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이 세계를 지우고 다시 재구축한다는 그 자체가 다른 이들 입장에선 사악한 계획이 아닐까?”

 

“흐음? 성경에서도 인간들이 하도 최악을 저지르고 다니니까, 홍수로 모든 생명체의 암컷과 수컷만 남긴 체 한꺼번에 갈아엎어버렸잖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신의 대행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마치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은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구나.

 

“각본가. 레이베리아는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이 세계를 지우려는 거야? 오로지 나 때문이라던가, 잡화점의 존재 때문은 아닐 거고? 살아생전에 레이베리아는 대체 얼마나 더 앞을 내다보고 이런 일을 꾸며왔던 거냐고?”

 

어릿광대는 무너져 내린 의자에 올라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 그야 안정적인 세계를 가지기 위함이지. 시공간에 대한 제약도 걸어놓고, 천계나 마계, 명계 등. 다양한 차원도 막아놓을 것이고, 어디까지나 인간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함일까? 그 편이 더 안전하다고 하지. 나도 이런 세계가 멸망하든 하지 않든 상관은 없지만, 이 세계가 존재함에 있어서 마법사나 마법공학자들은 언제나 금기를 어기고 살아가니까.”

 

“금기를 어긴다니?”

 

“그건 자기도 포함되어있는 거야. 지금 시공간술사의 힘을 다시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인간의 틀을 깨부수기 직전이지. 다시 봉인하면 괜찮을지 모르지만, 한번 시작한 일은 이제 멈출 수가 없어서 말이야.”

 

한번 시작한 일은 이제 멈출 수가 없다라...

이 힘을 봉인하는 것도 이제 일시적이란 소리가 되나?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생각이란 것은 또 다시 굴러가기 시작하고, 평범함을 넘어서 좀 더 우주적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마법사들과 마법공학자들의 목표는 모든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고, 더 나아가 자아를 각성하여 전지전능한 것이 꿈이다.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사고치는 거야 말로 마법사가 하는 일인데, 그 마법사들이 시공간마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도 당연했다.

 

잠깐만? 그러면 엘티노스가 본래 마법사나 마법공학자들의 수를 점차 줄여가고 초능력자를 만든 의미는? 어쩌면 엘티노스마저...

 

“뭔가 큰 걸 깨달았다는 의미네? 하하! 애초에 각본가는 유랑극단의 각본만 쓰는 게 아니거든?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각본을 쓸 수 있다는 그 자체야 말로, 각본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되니까.”

 

“그럼 네가 나를 찾는 것도 모두 각본에 쓰여있는 거냐?”

 

상상이상으로 레이베리아의 힘은 너무나도 커져버렸다. 엘티노스가 봉인되어있던 사이에 성장한 각본가의 힘은 알게 모르게 엘티노스마저 조종하고 있었다니? 아니. 엘티노스가 봉인되기 이전에도 분명 레이베리아는 남들 모르게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레이비스 가문을 갈아 엎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기만큼은 레이베리아가 각본을 쓸 수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더라고? 어떻게 각본을 쓰려고 해도 카일이라는 존재에 대해선 각본을 적을 수가 없다고 해.”

 

“그거 극비는 아니군. 전에 어렴풋이 추측은 가능했으니까.”

 

아주 예전에 맹수 조련사가 자신이 데미지 입을 것을 몰랐다고 퇴각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때 이후로도 각본가의 힘은 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와 더불어 레인도 각본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겠지. 그 애는 이미 정신상태부터 난리가 났으니까.

 

어릿광대는 어느 사이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애초에 각본대로 움직였다면, 지금 이렇게 대치하지도 않았겠지. 그건 그렇고...너.”

 

물구나무서면서 하얀 가면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왜 그래?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하고 말이야?”

 

“내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은 어떻게 안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대가 어긋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과거에 어릿광대를 본 기억은 전혀 없었고, 과거에 레프리시아를 구출하는 과정을 모두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과거라면 자기가 ‘선생’이었던 그 시절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릿광대는 알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호를 그린 가면의 입이 더욱 더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거라면 간단해. 나는 오랜 과거부터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처음으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거지! 아아, 그때를 잊을 수 없었어.”

 

“괴상한 촌극을 할 거라면 그만두고 제대로 말해.”

 

“촌극이라니? 이건 하나의 오페라와 같은 거라고?”

 

“뮤지컬이겠지!”

 

어릿광대에게 오페라가 어울릴까 보냐?

아...생각해보니 어울리는 오페라도 존재할 것 같다.

 

“그래도 그때 어린 마왕을 지키는 자기의 모습을 처음보고, 그 고결한 모습에 내가 악착같이 강해지고 살아남아서, 당당한 모습으로 맞서겠다고 다짐했단 말이야. 하지만 빨리 만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그 결과! 드디어 모든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자기를 찾았다는 거지. 그 풋풋한 용병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어릿광대가 나의 과거사부터 참견하기 시작했구나.

 

“잠깐만 그럼 내가 과거에 갔을 때 넌 누구였어?”

 

“누구였냐고? 당연히 별 볼일 없이 자기가 훔쳤던 옷 가게 주인이었지!”

 

완전범죄라 생각했는데 다 들켰었잖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 모습! 나는 매우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아서 지금까지 내가 있을 수 있었어. 은빛송곳니의 단검술을 따라 한다고 했을 때도, 멀리서 나는 그걸 지켜보며 같이 따라서 했고, 엘티노스 잡화점을 걸었던 가위바위보에서도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 부디 자기가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 되어, 나를 좀 더 봐주고 추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부러 져주기도 했어.”

 

일부러 져주다니?

 

“설마. 그 결승전 때...그 아저씨가?”

 

“맞아. 그 사람의 모습을 한 ‘나’였지.”

 

말도 안 돼. 하나부터 열까지 이 녀석이 다 개입되었잖아?

 

“그 이전에 월식의 봉인된 구슬을 몰래 그 노인에게 준 것도. 전부 나야.”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를 연속으로 들으니 믿기지가 않아서 한숨만 나온다. 한숨이 가출해서 지금쯤 말머리 성운에 도착하고 있을 때인데, 그러면 그 과거에 있었던 일이 전부 우연이 아니라고? 모두가 의도적으로 일어난 일들뿐이야?”

 

정말 머릿속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태 어릿광대가 가면을 선물하고 그 외에 다른 사건에서 죽을 뻔하고, 어이없이 놓친 모든 것들의 원흉은 과거에 레시아의 선생님으로 있었던 그 일 때문이라니?

 

그거 하나 때문에 이브센티아가 몰살당하고,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지금까지 살아가야 했다니? 매번 꿈마다 비가 오는 이브센티아에서 묘비만 바라보게 만든 것이 전부?

 

“정말 터무니 없어.”

 

말을 반복하기 싫지만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문제니까.

 

“터무니 없어도 받아들여야 해~ 첫눈에 반하게 한 책임은 지어야지?”

 

“뭐가 첫눈에 반한 책임이냐? 여태까지 내 과거의 행적을 엉망으로 만든 게?”

 

“아니지. 그게 과거의 올바른 행적이었다는 거야.”

 

살아있는 자체가 괴로웠던 순간마저도 전부 어릿광대의 개입이라니.

 

“그렇군. 아무래도 내가 널 죽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면, 지금 싸움을 멈추는 게 당연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실피드. 나의 검이 되어라.”

 

윈디의 진명을 부르고 날카로운 돌풍이 단검을 감쌌다. 봄이라서 따듯해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불고 있는 바람은 한겨울처럼 싸늘하기만 했으니.

 

“일단 더 물어볼 것은 있으니 죽지는 마라. 죽으면 별 수 없겠지만...”

 

“아하핫! 바로 그거야! 그 살의에 가득 차오른 눈. 하도 억울해서 악밖에 남지 않은 그 눈 말이야! 그걸 계속 기다렸는데 이제서야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마음을 알긴 뭘 알아줘! 정신 놨어!”

 

이 상황을 대체 왜 즐기는 거냐?

 

“이런 살벌한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춤은 언제나 최고야! 드디어 나를 제대로 봐주기 시작한 것도 너무 흥분돼! 이 일은 내 생에 최고의 날이 될 거야!”

 

“대사만 들어보면 사망플래그야. 그거 알아?”

 

“그래도 죽지 않을 건데? 오랫동안 같이 싸워나가며 친하게 지내야 하잖아?”

 

싸우면서 친하게 지내는 건 어린 시절 한정 아니었던가? 아직까지도 싸워나가며 사이가 돈독해진다고 착각을 하다니...미운 정이 더 오래간다는 걸 이용할 속셈인가?

 

그것마저 이용한다면 정말 징그러운 녀석이다.

대체 그런 사소하고 쓸모 없는 것까지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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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하루는 일하는 게 8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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