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1 - 4

04

 

 

내 품 안에서 고개만 쏙 내민 체 추운 바람을 피하고 있는 마왕님은 꽃이 개화를 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왔도다."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비니스의 꽃이 외형이 맞는지 아닌지 마왕님께 받은 종이를 열어봤다.

 

신나는 꽃 탐방

-대마법사 엘티노스

비니스의 꽃

외형 : 녹색 줄기와 청색 잎사귀 2쌍, 길다란 분홍색 꽃잎이 4쌍이 존재한다.

개화를 하면 꽃잎이 푸른색으로 변한다.

설명 : 비니스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 꽃은 사실상 '무언가'를 담고 다른 곳에 옮길 수 있는 꽃이다.

힘을 옮긴다면, 힘을 옮길 수 있고,

능력을 옮긴다면 능력을 옮길 수 있다.

 병을 담고 옮기고자 하면, 병을 담고 꽃을 태우면 그 병은 말끔히 없어진다.

비니스는 이 꽃을 통해 옛날에 많은 이들에게 능력과 힘을 주고,

병을 치유하며 다녔지만, 이 꽃은 비니스가 있어야만 번식이 가능한 것을 봐선

아마 이게 마지막 비니스의 꽃일지도 모른다.

p.89

 

마왕님께서 책 제목과 페이지까지 다 옮겨 적을 정도로 나와 가위바위보를 기대하고 있구나.

그럼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가?

 

비니스의 꽃은 가방에 넣고, 이제 귀환마법을 사용할 차례다.

출발하기 전에 귀환마법을 배웠지만, 사실상 간단하게...마왕님께서 사용하시면 된다.

 

"그런데 마왕님? 돌아가야 하는데 뭐하시나요?"

 

작은 앞다리로 땅을 정신 없이 파고 있는 마왕님께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관 하나를 놓을 정도로 넓게 파고 있었다. 그보다 그 안에 뭐가 있길래?

 

"이질적인 기운이 여기서 나오고 있다."

 

"그건 천계와 관련된 물품에서도 그러지 않았나요?"

 

"그건 알고 있지만, 잘만 하면 비니스의 물건 중 하나를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을 어둠으로 물들어서 짐의 비밀병기로 간직할 것이다."

 

하기사 마왕님은 뭔가 타락시키는걸 잘 하신다니까...

 

"아니!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응? 무엇을 말인가?"

 

"물건을 타락시킨다는 말이요!"

 

"주인은 나=레프리시아라는 마왕이 왜 무서운지 알고 있지 않은 건가?"

 

보통 일반인들이 마왕을 만나면, 정신이 붕괴하거나 심하면 입에 침을 흘리며 기절한다면서요.

 

"짐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식은 '타락'이니라. 짐이 마왕으로 군림하면서 나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전부 타락시켰다."

 

타락이 아니라 가위바위보겠지.

 

"그래서 마계공작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천계로 올라가서 성수를 마시거나, 대부분의 마족들이 인간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타락했지."

 

"그건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개과천선이란 말을 씁니다!"

 

무섭다. 정체성을 잊을 정도의 타락이라니...

아무튼 20분동안 땅을 판 끝에 목걸이 하나를 물고 나오셨다.

물론 고양이 몸 구석구석이 흙투성이가 되어 나왔지만, 나중에 씻으면 될 일이다.

 

"그래서 그게 이질적인 물품인가요?"

 

"그렇다. 이게 무엇인지는 돌아가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마왕님은 나에게 목걸이를 목에 걸어줬다.

 

"당분간 주인이 착용하고 있거라. 그래야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

 

"제가 왠지 임상실험의 피해자가 될 기분에 한숨만 나오는 듯 합니다. 마왕님."

 

귀환마법은 간단하게 귀환장소에서 오래된 물품 하나를 가지고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고 했지만, 애초에 마법을 쓸 줄 모르는 나는 마왕님께 대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역마는 써먹을 때 써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해라! 마왕!

 

"냐아앙!"

 

마왕님이 울부짖자 장소가 바뀌었고, 여기는 욕실인데?

 

"마왕님. 귀환마법은 공중에 뜬 채 천천히 내려오나요?"

 

"아니. 잠깐 좌표를 착각해서 욕실 공중으로 소환된 것뿐이다."

 

아하!

 

-첨벙!

 

마침 따듯한 물로 입수되어 데미지는 없다.

이야! 역시 힘들게 땀을 흘린 이후에는 바로 목욕을 하는 게 가장좋다!

 

"아니! 누가 공중에서 욕실로 내려오고 싶다고 했어요!"

 

"아까 주인도 납득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태클이 늦은 것뿐 이라고요! 하마터면 다른 곳에 추락해서 다칠 뻔 했잖아요!"

 

"주인을 생각해서 일부러 욕실로 귀환을 한 것 뿐이다. 뭐 그리 화내지는 마라."

 

날 생각해서 했다고는 하나...옷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왕님은 고양이 모습이니 그냥 털이 젖는 것 뿐이고, 나는 다른 옷을 가지러 가야 하는 상황이고, 아무래도 이 때는...

 

"저기 마왕님?"

 

"무엇이냐 주인? 눈이 한층 더 무서워졌다."

 

"기왕 이리 된 거. 제가 직접 그 옥체를 씻겨드리죠."

 

마왕님이 나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서서히 나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다. 주인도 고생을 했는데 짐을 씻기는 그런 중노동을 시킬 수 없다."

 

"아니죠. 아니죠. 저의 귀환을 도와주신 마왕님께 친절히 오늘은 씻겨드리는 것으로 화답을 해야겠죠? 후후후...그러니까 당장 이리와!"

 

그 후에 30분간 고양이를 씻기려는 집념의 추격전 끝에 내가 먼저 지쳐서 쓰러졌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를 기르는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거 같다.

 

***

 

마을시장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 물품을 팔고 상인들은 이리저리 소리치며, 관객들을 불러오기 위한 어필을 많이 한다. 모든지 활기차 보이고 아무런 걱정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엄청나게 짜증이 나긴 했어도, 여전히 살아있어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다만, 나를 보던 친한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사과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평화로워 보였다.

 

"카...카일이니?"

 

"네...로웰 아주머니."

 

"꺄아아! 망령이야!"

 

결국 나의 출현으로 시장은 난리 나고, 경비대가 나를 포위하기까지 5분도 안 걸렸다.

훈련을 잘 받은 경비대가 있어서 이 마을의 치안은 안전한 모양이긴 한데...

언제부터 엘티노스 잡화점 주인은 살아있는 망령 취급을 받았는지 그것도 알고 싶었다.

 

"저기...여러분? 나는..."

 

"망령이여 물러가라!"

 

내 친구였던 베가프는 어느새 사제가 되어 이 곳으로 파견되었나 보다, 그나저나 어디 집안에서 퍼올린 물이 성수가 되어 내 머리를 적셨다.

 

"아니...베가프 사제. 그건 성수가 아니라 뜨거운 물이에요."

 

맥이 빠지는 내 태클에 베가프 사제는 잠깐 멈칫하더니.

 

"카일? 정말로 살아있는 거야?"

 

"그럼 살아있지 죽었냐! 잡화점이 무슨 마물의 소굴인줄 알아! 왜 멀쩡한 가게를 괴물의 집으로 탈바꿈하고 난리야!"

 

그리고 그 괴물의 집에서 살고 있는 날 망령취급을 했으니...

 

"너의 시체를 찾아 부활주문을 외우려는 나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래? 은근히 날 죽이려는 건 네가 아닐까?"

 

그렇게 소동은 줄어들고, 베가프 집으로 우선 몸을 옮겼다.

뜨거운 물을 수건으로 털고 있는 도중에 베가프는 허브티를 건넸고, 나는 허브향을 음미...할 줄 모르니 그냥 눈치껏 마시고 있었다.

 

"내가 왕궁에서 사제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네가 잡화점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상당히 놀랐어. 그래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받고, 파이론에 있는 작은 성당으로 파견 나와서, 너의 시체를 본격적으로 찾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잡화점 하나 운영한다고, 친구가 단기간 내에 파견까지 나올 정도라니...

 

"이제 2일째야. 첫 날부터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첫 날부터 죽었으면, 그게 잡화점이 아니라 처형장이지.

 

"그나저나 사제의 길은 결혼을 하면 안되잖아? 베가프. 너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어?"

 

"아...작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더라고..."

 

"미안하다. 내가 그냥 왠지 미안하다."

 

침울하던 분위기를 깨는 것은 베가프의 한 마디로 시작됐다.

 

"나도 그 잡화점 가끔가다 놀러 가도 될까?"

 

"놀러 가도 상관은 없지. 물론 마ㅇ...아니 고양이 하나가 있고."

 

"고양이?"

 

순간 마왕님이라 말할 뻔 했다.

입은 항상 조심하자.

 

"나 고양이 많이 좋아해! 지금 당장 가자!"

 

"네?"

 

"개점 시간 전에는 돌아갈게. 그 고양이 한번 보고 싶어."

 

"아...그래...뭐...별일 없겠지..."

 

그리고는 다시 잡화점으로 발을 옮겼다.

잡화점으로 가기 전에도 여러 가지 잡담을 했지만, 알아내고 싶어하는 정보는...

 

"알프레이드 왕자라...확실히 지금 불치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

 

베가프는 담담하게 구운 옥수수를 먹어가며, 알프레이드 왕자의 상태를 말했다.

 

"사제들의 축복도 소용 없는 거냐?"

 

"내 스승도 참여를 했지만, 회복될 기미가 안보였거든."

 

나는 잡화점을 열...

아니 왜 닫혀있는 거야?

 

[주인. 그 옆에 있는 이질적인 인간은 뭐냐.]

 

뭔가 굉장히 불쾌한 음성으로 나에게 텔레파시가 도착했다.

 

[내 친구인데요? 마왕님?]

 

[설마...마왕인 짐을 제거하게 위해서...]

 

[그럼. 내가 뭣 하러 사역마로 불렀을까요? 평범하게 고양이 흉내를 내면 조용히 넘어갈 상황이니까, 그냥 좀 열어요!]

 

[싫다! 짐이 걱정하는 것은 신성력을 막 품은 사제 애송이가 아니라, 저 음흉하게 짐의 옥체를 더듬으려 하는 분위기가 무서운 것이다!]

 

그래 봤자 지금은 고양이잖아...

그리고 남들 헷갈리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시죠.

 

"어라? 무슨 일이야? 열쇠를 잊어버렸어?"

 

"애초에 이 잡화점은 열쇠가 필요 없어. 주인을 인식하거든..."

 

조만간 마법을 많이 배워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잡화점이 주인을 마왕님으로 인식하는 중이지만, 내가 문고리를 계속 잡자 서서히 개방되었다.

 

"허브티는 없지만...과자 하나는 줄 수 있어. 미안해 베가프...아직 나도 수입이 없어서."

 

"괜찮아! 고양이를 보러 온 거니까!"

 

목적이 참 명확하시네요.

그보다 마왕님은...내 키를 훨씬 넘기는 5층 수납공간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지금 텔레파시로 엄청나게 뭐라 말하는 것이 들리지만, 뭐 이건 됬고...

 

"검은색 고양이네? 그나저나 이름이 뭐야?"

 

이름...

이름?

 

[마왕ㄴ...]

 

[싫다! 저런 자에게 굴욕이란 굴욕을 다 당하고 심지어 (생략)]

 

정서적으로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닌가 보다...아마 신성력을 품은 배가프와 마왕은 본능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거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을 유지했던 마왕님이 저렇게까지 하는 것으로 봐서는 내 친구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나저나 이름이라...

음...

 

"레시아. 내 사역마 이름이야."

 

"레시아? 그보다 사역마라니 무슨 소리야?"

 

사역마라고 소개한 이유 중 하나는 엘티노스 잡화점 규칙 때문이다.

어차피 종이 쪼가리를 써먹어야 하기도 하고, 친구가 출세를 했는데 나만 잉여처럼 쓸모없이 살아가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야 하지 않는가?

 

"엘티노스 잡화점의 규칙 중에는 절대로 혼자서 운영하지 말고, 좋은 동물이나 몬스터, 혹은 사역마와 같이 하라고 했으니까."

 

"아하...그보다 좋은 이름이네. 레시아라..."

 

그리고 30분동안 베가프는 5층에 있는 마왕님에게 "레시아! 내려와!"라고 하고, 그 때마다 마왕님은 내 머리 속에서 수 십 만개의 텔레파시를 전송했다. 그만해요. 마왕님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사역마의 본 모습은 본거야?"

 

"아직. 그 전에 나올 때부터 고양이모습 이였으니까."

 

"나도 사제하지 말고, 마법사로 할까?"

 

이제 와서 전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고객님.

 

"나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아니 사역마를 소환한다 해도 다 고양이는 아니니까.

개점시간이 되어 베가프가 돌아가자마자 마왕님은...

 

"고양이 어퍼컷!"

 

"가위바위보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또 다시 공중에서 1초간 내려오지 않았다.

 

"아니...마왕님..."

 

고통을 참고 일어나서 말하는 순간...

 

"레시아다!"

 

"네?"

 

"주인이 지어준 이름. 레시아로 불러라."

 

"...왜요?"

 

"인간들은 친하거나 가까운 사람끼리는 이름이나 애칭, 별명으로 부른다고 들었다."

 

"네...그렇죠."

 

"그러니까 레시아로 부르거라."

 

"아니. 그건 마왕님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 즉석으로 만드는 3분카레처럼 지어낸 겁니다."

"부르라고 하면 불러라!"

 

"레시아."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3번 더!"

 

"레시아. 레시아? 레시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짐을 마왕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름으로 부르는 것으로, 더욱 주인과 가까워짐을 알 수 있노라.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내가 사용할 마나와 힘은 더욱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주인은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네. 레시아."

 

...?

 

"그런데 레시아는 절 이름으로 안 부르네요?"

 

"주인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니까."

 

나도 마왕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했는데...

리타 씨는 오늘 올 테니까... 미리 비니스의 꽃을 준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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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2화씩 올리고 있는데...

비축해둔 것을 언제 다 올릴 수 있으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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