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7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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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기에 남성공포증이 쉽게 걸렸다면, 순진하기에 남성공포증이 쉽게 치료가 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성은 너무 순진한 탓에 그 동안 쌓여있던 남성공포증이 치료된 모습이었다. 몽골리안 웜이 대체 뭐라고 한 사람의 트라우마를 단숨에 날려버렸는지 모르겠지만, 학원제가 끝나고 5월이 중반을 거의 다 지나갈 무렵. 한 가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저기. 이제 슬슬 검은 높새바람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아?”

 

“네? 전 여기가 더 좋은데요?”

 

다음과 같은 상황에 대체 뭐라고 타일러줘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그냥 마나를 차단하는 팔찌까지 해제하고 돌아다니게 했는데, 저 신입에게는 검은 높새바람이 추가적으로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지. 저번에는 내가 자는 동안 나를 암살하기 위해서 다가왔나 싶었어도, 다른 사람을 껴안고 안자면 잘 수 없다며 느닷없이 낮잠을 방해하거나, ‘식칼을 들고 찾아와서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나?’라고 생각을 했더니, 뜬금없이 닭을 어떻게 해체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그 외에도 분명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나를 암살할 기회는 충분히 많았는데, 암살은커녕 여기서 살기 위해 집안일을 배운다고 나서고 있었다.

 

아마 이유는 끔찍한 스프를 두 번 다시 먹지 않기 위함이겠지. 페트리는 앞머리가 길어서 눈이 살짝 가려진 상태에서도, 제대로 정면을 보고 걸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뛰어난 공간지각능력을 가지고 있...

 

-콰당!

 

“끼야아아앗!”

 

지는 않았고, 그냥 독백을 이리저리 해볼까 하다가 하나만 잘 안 맞은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아래에 있는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칠 줄이야. 어마어마한 비명소리로 인해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에 들어와서 소리치는 기분이었다.

 

“괜찮은 거야?”

 

“아파요...슬퍼요...호 해주세요...”

 

대체 그 민간요법을 왜 아직까지 고수하는지 모르겠군.

 

“시나. 가서 치료 좀 해줘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내 어깨 위에 있는 하얀 올빼미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 뒤에 빛을 내뿜으며 치료를 해줬...

 

“호~”

 

“그거 말고! 치료를 하라고!”

 

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가 보니, 내 독백이 또 어긋나서 혼란을 빚게 만든 점은 정말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시나에게 민간요법을 받고 있는 페트리에 대한 처분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서, 내 배 위에 있던 검은 고양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트라우마를 고치기 위해서 주인이 다정하게 대한 것을 통해, 정보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었으니 짐은 어느 정도 수확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인이 너무 다정하게 대한 탓에 지금 저기 있는 여성이 검은 높새바람은 때려 치고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하지 않는가? 이 이상 늘어나면 곤란하다는 것은 분명 주인일 터인데?”

 

오늘은 묘하게 레시아의 눈초리가 따갑다. 검은 고양이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조만간 잠을 잘 때 결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서...그런데 페트리에게 뚫려버리는 결계라면 레시아에게 소용이 없는 거 아닐까? 조만간 내가 자야 할 곳은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돌려보내려고 해도 돌아가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게다가 생각을 해보면 지금 검은 높새바람으로 돌아가면 배신자로 처형당하거나, 역으로 이곳의 정보가 들통날 수도 있으니 일단...”

 

“전에 루시피나와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주인이 했노라. 게다가 이쪽의 정보는 이미 알만큼 다 알아서 별 소용이 없을 터이니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 막상 구해주니 반려동물처럼 잘 따르는 모습에 키우고 싶어진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주인은 그건가? 키워준 답례로 몸을 바치라는 그런 매니악한 요구를 하는 그런 인간인가?”

 

‘레시아의 발언이 페트리에게 들리지 않을까?’하는 조마조마한 마음과 나에 대한 인간성을 나락으로 내려버리는 이상한 말을 들은 머리가, 내 얼굴표정을 당혹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저를 대체 뭐로 보는 거에요!”

 

“주인은 항상 생각해왔듯이 자신이 늑대라는 자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언제나 양속에서 살아왔으니 자신이 양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때때로는 짐보다 가장 잔혹하고 본능을 잘 따르는 사람이야 말로 짐의 주인으로 걸 맞는 자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벌써부터 다른 여자를 잡화점에 끌어 들이다니. 이 정도면 능력이로군? 그 바보 같은 몽골리안 웜이나 들먹여가면서 속이니 기분이 좋은가?”

 

점점 가까워지는 원망이 담긴 고양이 눈을 피하기 위해 레시아의 얼굴과 내 얼굴 사이를 책으로 가렸다. 조금이라도 더 마주본다면 원한으로 정말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아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렸는데...

 

“고양이 어퍼컷!”

 

눈에 별이 잠깐 번뜩이더니 천장에 부딪쳐서 그 상대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비명은 지르지 못했고 땅에 추락한 뒤에서야 고통을 인내하는 신음만 흘러나올 뿐. 레시아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내 위에서 비아냥 거리며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이런. 어떤 고양이가 주인에게 어퍼를 휘둘렀나 보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 않는가?”

 

“알았어요! 저녁에 손님 없을 때 귀 청소를 해드리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를 풀어요!”

 

“좋군. 협상은 완료했으니 마음씨 따듯한 짐은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외출을 하겠다.”

 

마왕 주제에 뭐가 마음씨가 따듯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때까지 괴롭히고 있었으면서. 어이가 탈주해서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소리를 하고 있네. 지금쯤이면 말머리 성운을 넘어서 가고 있을 거다.

 

“괜찮으신가요? 어디서 커다란 소리가 났는데?”

 

여김 없이 짙은 보라 빛의 앞머리로 자신의 눈을 살짝 가린 페트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살펴보고 있었다. 괜찮으냐고 물어보면 턱을 강하게 맞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빠질 것 같고, 천장에 머리를 부딪쳐서 뇌진탕의 여부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낙법도 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전신타박상이 의심된다고 자세하게 설명하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생각할까?

 

결국 나는 쓴 웃음을 띠며 “괜찮아. 늘 있는 일이야.”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게...가위바위보에서 지면 이런 식으로 날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페트리는 돌아갈 곳이 없는 거야?”

 

왠지 모르게 돌아갈 곳이 없어서 이런 곳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페트리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돌아갈 곳이 많긴 했다.

 

“저는 공간술사니까 돌아갈 장소는 많아요. 고향에 있는 고아원이나. 저를 마법사로 만들어준 스승님의 집이라던가. 따듯하게 저를 맞이해주는 부모님이 있는 집도 있지만, 지금은 이 곳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카일 씨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그 잔혹한 몽골리안 웜으로부터 저를 살려준 은인!”

 

만약 정말로 과거에 돌아갈 수 있으면 내가 잡화점을 얻게 되는 최악의 날보다는, 가장 최근으로 돌아가서 페트리에 대한 처분을 좀 더 엄격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법수사관에게 신고를 먼저 해서 넘기는 것이지.

 

모든 일이 생기면 가까운 경비대에게 신고하란 이유가 이거일지도 몰라.

 

정말 어린 애도 다 거짓말이라고 간파할 만큼 어설프게 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간단하게 속아넘어가서 이곳에 일하고 있는 페트리도 대단하다 본다.

 

“카일의 하렘구성원이 또 늘어남. 수라장이 더 심할 것이라 예상됨.”

 

“시끄러워! 팔랑크스!”

 

거대한 기계인형인 팔랑크스는 중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주변에 있는 책상을 집고 힘겹게 일어난 나는 지금 당장 잠자리를 모색하기 위해 잡화점 밖을 잠깐 나갔다. 지금쯤이라면 리베리티아 고원에서 잠들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저번에 거기서 낮잠을 자다가 걸리기도 하고, 검은 높새바람이 공중요새로 이곳 저곳에 돌아다닐 수 있다면, 운이 나쁠 경우 나를 픽업해버리는 상황까지 올 수 있으니까. 야외에서 자는 것은 안 된다면 다른 곳을 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기? 카일 씨?”

 

잡화점 문이 열리고 페트리가 고개를 살짝 내밀면서 나를 불렀다.

 

“저 낮잠을 자고 싶은데요?”

 

“베니를 껴안고 자.”

 

“베니는 그래도 차가워서 따듯하게 안고 잘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럼 시나에게 부탁을 해.”

 

루시피나와 마리아는 이미 외출해서 없고, 카렌과 루나는 달에 있으니 부재중이니까.

 

“시나 님은 “저는 마스터에게만 유효한 베개입니다. 다른 베개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차갑게 거절한단 말이에요!”

 

따듯하게 안고 잘 수 있을 만한 게 필요하다면...

 

“저 2층에 이프리트에게 부탁하던가? 저 위에 있는 잠만보...아니. 잠꾸러기라면 분명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윈디 씨가 자꾸 제 앞머리를 자르려고 한단 말이에요...”

 

왜 앞머리를 자르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오오! 앞머리를 넘기니 미녀가 탄생했다!”라는 사소한 클리셰를 따라가기 위해 이상한 노오오오오력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프리트 주변에는 대부분 윈디가 있는 모양이고.

 

“아저씨! 저 여자는 또 누구에요! 저 말고 또 누구와 바람 핀 거에요!”

 

“어째서 너와 내가 불륜대상이라는 이상한 설정을 창조하냐? 너는 빨리 네 남친에게 돌아가라고.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했지!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찢기 시작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은발의 소녀 아이니스가 잔뜩 화가 난 푸른 눈으로 나에게 소리치더니, 무시무시한 바위들이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정의나 수두룩하게 맞으세요!”

 

“시작하자마자 궁극기는 쓰지 말라고!”

 

하지만 그 수많은 바위들 앞에 수많은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바위가 그 마법진을 통과하려고 하자 사라지고 없었다. 페트리는 한 손으로 그 많은 바위들을 다른 공간으로 날려보냈는데. 지금쯤이면 저 멀리 슈팅스타를 외치며 우주로 나아가고 있을 거다.

 

나도 모르게 개안한 시공의 눈을 닫고 당황하고 있는 아이니스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인사해. 페트리라고 부르는 공간술사야. 이쪽은 염동술사인 아이니스라고 하고.”

 

페트리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다시 잡화점 문 뒤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반가워...”

“안녕하...잠깐! 방금 그거 어떻게 된 거에요! 공간술사가 아저씨 집에 왜 있어요? 설마 무슨 이상한 말로 꼬드겨서 정신차리고 보니 노예계약이 되어있는 해프닝 아니에요?”

 

“살다 살다 처음 듣는 말이로군.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했지! 너 아스타로트는 어디에 있어! 대체 이 녀석은 자기 애인 내버려두고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아이니스의 일상패턴은 일단 심심하면 나에게 찾아와서 바위를 떨어뜨리고, 그 뒤에 대화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니, 주변에 있는 사람이 왠지 검은 높새바람보다 위험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왜 나를 찾아온 거냐? 네가 찾아올 이유는 대부분 육포를 팔기 위함이나, 나를 놀리기 위해서 그런 거 아냐?”

 

“당연히 그것도 있는데. 오늘은 제가 너무 한가해서 놀아주시죠?”

 

“페트리가 상대해줘. 나는 어린애와 놀기 싫다.”

 

내가 아이니스를 어린애 취급을 하자.

아이니스는 나를 바라보며 소리를 다음과 같이 질렀다.

 

“이 추남!”

 

“이 쬐끄만 녀석이!”

 

 

어디 가족들에서는 아들의 목을 조르는 아버지가 있다면, 여기에는 아이니스에게 아이언 클로를 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겠지. 페트리는 아이언 클로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이니스를 보며, 나를 화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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