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 - 5

18

 

 

 

"레이비스 씨."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 체 가만히 무덤에 있는 묘비처럼 굳어있었다. 아무래도 레이비스 씨의 눈에는 나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금빛이 번뜩이는 짙은 살기는 아무리 레이비스 씨가 어둡고 냉랭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의 눈을 직접 보고 있는 레이비스 씨는 한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고...

 

"평민은 내 파트너다. 우리는 왕국 만담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는 루키 팀이야."

 

"고작 그런 걸로 그런 살기를 내뿜냐! 이 망할 수사관아!"

 

"팀 이름도 정했다고? 그러니까...뭐였지?"

 

"그걸 왜 나에게 물어봐요!"

 

이 사람도 만만치 않은 바보 캐릭터였다.

뭐라고 해야 하지...이 캐릭터는 '냉정한 바보'라고 해야 하나?

 

잠깐 저 캐릭터가 어떻게 쓰이는지 떠올려보자.

 

"루니아 학생. 이 문제에 대해 답해보게."

 

"저...저는 잘 모르겠어요오..."

 

"그럼...레이비스 학생.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말해보게."

 

"모른다."

 

회상을 해봤지만...이게 무슨 난장판인지 모르겠다. 이리저리 만담 퍼레이드를 속에서 나의 수난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좌절할 무렵, 분위기의 흐름을 깨버린 것은 다름아닌 하늘 위로 날고 있는 와인 빛 로브가 바람에 휘날리는 뱀파이어. 마일론의 말로는 멜시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마일론에게 내려왔다.

 

"마일론!"

 

"오! 내 사랑 멜시스! 나를 이곳에서 탈출시키라는 명을 받았나?"

 

"또! 저 남자하고 재미있게 웃고 떠들고 바람피고! 제가 이래서 이 남자를 싫어하는 거에요!"

 

멜시스 씨는 삿대질을 하면서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아니. 바람 핀다는 말은 뭐에요!

 

"게다가 금발의 미청년이라뇨! 물론! 저 사람은 제 취향이지만! 저 없이 3명이서 만담을 하기 위해서 모인 건가요!"

 

너도 만담 때문에 싸우려는 거냐!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만담으로 흥이 달아오른 미남자 3명이 결국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이렇게 저렇게!!!"

 

잔뜩 흥분한 기색이 보이는 멜시스 씨가 자신의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이상향을 뇌 속에서 그리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저 썩어빠진 뇌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뭔가 연설을 하려는 듯 어느새 나무 위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떠드는 멜시스 씨를 무시하고 한심하듯 보던 레이비스 씨가 입을 열었다.

 

"어딜 갈려고? 감옥에서 우리들의 콤비를 만들어야지. 그리고 마검을 파괴하던 다시 빼앗던 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멜시스 씨와 마일론에게 총구를 겨눈 레이비스 씨는 금빛의 기류가 휩사이면서, 마탄이 아닌 빛 줄기 두 개가 번뜩였다. 빠른 반사신경으로 마일론은 검집에 티르빙을 뽑아서 막아내고, 멜시스는 박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방패의 형상을 띄웠다.

 

"티르빙을 뽑은 순간. 뭐 하나라도 베어넘겨야 돌아가는 건 잘 알고 있겠지?"

 

마일론은 웃으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마검을 과시했다. 음산한 마기가 마검으로부터 나왔다. 검면에는 룬문자가 보였고 서서히 강한 빛을 내 뿜었다. 마검다운 모습과 다르게 빛은 은은하게 띄면서 순식간에 레이비스 씨와 거리를 좁혔고, 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권총으로 마일론의 검과 힘겨루기를 하는 레이비스 씨가 보였다.

 

멜시스는 저 뒤에서 마법으로 마일론을 보조하려고 했지만...

나도 마법은 어느정도 사용할 줄 아니까.

 

[레시아. 레이비스 씨를 도와주죠.]

 

[어짜피 진정한 만담 파트너는 짐이 될 테니까.]

 

[아니. 그걸 아직도...아뇨 됬어요. 나중에 하죠.]

 

멜시스 씨가 날려보내는 마법화살<Magic Arrow>를 나도 똑같은 양으로 날려보내 상쇄시켰다. 멜시스 씨는 오히려 웃음으로 나를 마주보게 되었다. 우선 묻고 싶은 것은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을 딱 하나 집어서 말해야 했다. 옆에서 레이비스 씨의 금빛과 마일론이 들고 있는 마검의 검은 빛이 이리저리 얽히고 있으니. 게다가 시간을 조금만 더 끌어도 도망갈게 뻔했다.

 

"멜시스 씨. 저 마검이 마일론을 빼앗아간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아까 잡화점에 대화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

 

"그야 당연히 티르빙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거죠. 그의 몸을 빼앗기 위해 필사적으로 침식하고 있고, 마일론 또한 티르빙의 침식을 견디고 있죠."

 

"저 마검에 의식이 있다고요?"

 

"물론 우리조직이 만든 검이긴 해도, 상당히 위험하고 재미있게 만들긴 했죠?"

 

마검을 만들라고 했더니, 그보다 더 질 나쁜 녀석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 마일론의 의식은 언제 완전히 침식된다는 거야?"

 

아직도 옆에서 싸우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릴 쯤. 멜시스 씨는 어느 사이에 자신 주변에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1주 정도네요. 물론 그 전에 제가 해결을 해볼 테니까.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법진이 발현되자 주변에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모두를 덮어버렸다. 레시아가 붉은 두 눈을 뻔뜩이며, 마법으로 환기를 시키자. 나와 레시아, 레이비스 씨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는 서서히 떠오르려는 듯 하늘은 점차 푸른 광을 띄며 별들을 지워나가고 있었고, 레이비스 씨는 "제길 놓쳤네..."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긁었다.

 

"괜찮아요?"

 

레이비스 씨의 제복 상태가 말이 아닐 정도로 크고 작은 스크래치에 엉망이 되었다. 볼에는 살짝 긁힌 상처가 있었고, 장갑 또한 이리저리 찢겨나가 흰색 면 장갑을 붉게 물들였다.

 

"니 친구는 하나같이 지랄 맞을 정도로 아프게 때리냐?"

 

육두문자를 포함한 레이비스 씨의 진심이 담긴 분노의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물론 나도 마일론이 저렇게 강할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마검을 든 것에 비해, 중거리로 싸워야 하는 무기를 가지고 레이비스 씨가 근접전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내 주변에 괴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길...배고프네... 야! 평민! 일단 아침부터 먹으러 가자!"

 

"아뇨. 전 집에 갈 건데요?"

 

"시끄럽고 따라오기나 해! 스트레스 쌓이니까 먹을 것으로 풀어야지!"

 

무작정 끌려가고 있는 나는 뒷덜미를 잡힌 체, 질질 끌려나가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고 생각할 쯤...아니 나 피곤해요! 곧 잘 시간이란 말이에요!

 

***

 

레이비스 가문의 집은 전에 내가 습격했던 알벤토 가문의 집보다는 2배나 더 컸다. 저 바보같이 으리으리한 곳에서 (강제로)아침식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하녀들이 가져다 준 빵과 스프를 보면서 꽤나 소박하게 먹고 있었다. 물론 레이비스 씨도 빵에다 잼을 발라서 먹고 있는데, 나보다 3배 가량이나 먹어 치우면서 살이 안 찌는게 더 신기했다. 물론 나를 부른 이유는 식사 말고도 마일론과 어떤 관계이며, 마검에 대한 정체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론 6시에 시작된 아침식사가 끝난 이후에 레이비스 씨로부터 들려온 말에 의하면...

 

"루니아가 널 찾더라고...뭐라고 했더라? 남동생 성분이 부족해져서 금단현상이 오고 있다고 했던가?"

 

"그거 참 안 됐네요. 전 집에 당장 돌아가면 되나요?"

 

지금 루니아 씨를 만나면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이 더 피곤해 질 것이 뻔하니까. 지금은 피하고 싶었다. 전력을 다해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의문이 들은 나는 입을 열었다.

 

"레이비스 씨. 루니아 씨와는 꽤나 친근해 보이던데 가족이에요?"

 

"가족이야."

 

어떻게 저리 안 닮았지?

 

"하기야 안 닮긴 했지. 그래서 그런지 저 녀석은 거북해서 내가 오히려 피하고 있어."

 

"어떻게 제 생각을...아니 그게 아니라! 루니아 씨는 성이 없는 기사인데요?"

 

"그건 릴리 기사단 숙소에 있는 명찰을 봐야 알 수 있는데, 평민.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살벌한 살기가 나의 몸을 관통했다.

잘 못 말하면 바로 감옥에 가둬서 , 영원히 고문당하는 내 모습이 주마등에 스쳐나가자, 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이니스! 아이니스가 거기에 들어갔다 왔으니까요!"

 

"아. 루니아와 차를 마시던 그 꼬마로군. 꼬마는 잘 지내든? 난 어린애를 좋아해서."

 

"...잘 있어요. 근데 어린애를 좋아하다니요?"

 

"아니 말 그대로야. 이상한 뜻은 없어."

 

그래도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짓거나 그런 거라면 다행이죠.

 

"그런 애들 같은 경우 괴롭히면서 동심파괴 할 때, 분에 이기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모습이 꽤나 짜릿하거든."

 

전언철회.

그냥 마계에 가서 레시아를 꺾고 마왕이 되세요.

왜 저런 놈이 수사관이지?

 

"그 고양이는 항상 대리고 다니는데. 전에 알벤토 가 사건에서도 그 고양이가 마법을 쓴 거지?"

 

"제 사역마 레시아라고 해요."

 

"사역마라. 혹시 말 하냐?"

 

"텔레파시로 대화해요."

 

레이비스 씨는 밑에서 우유를 핥고 있는 레시아를 보면서, 뭔가 기대심이 가득 찬 눈으로 육포 하나를 던져줬다. 레시아는 육포를 받아 들고 두 번 씹더니...

 

[이 육포에는 장인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라면서 육포를 뱉어버렸다.

 

"니 사역마는 육포도 안 먹냐?"

 

"아니...아이니스 집에 있는 육포 때문에 입맛이 높아져서..."

 

정말 나중에 아이니스 집에 찾아가서, 부모님도 볼 겸 비법 좀 전수해 달라고 해야 하겠다.

물론 아이니스의 부모님을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니스의 평소의 건방진 행실(주로 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과 여러 옷을 입으면서, 마을 주민들을 현혹(추측상)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기 위해 꼭 찾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사역마는 보통의 사역마가 아니네?"

 

무려 마왕인걸...

하지만 마왕을 소환 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어쩌다 보니 상위계층을 소환했거든요."

 

"만약, 주종관계가 뒤틀리면 어떻게 할거야?"

 

레이비스 씨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는 웃으면서...

 

"저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로 생활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애초에 주종관계로 구속하고 부리는 입장보다는 평등하게 친구처럼 도와주고 아껴주는 관계가 나에게는 오히려 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레이비스 씨에게도 '님'이나 '공'을 붙이지 않는 이유다.

 

애초에 이 왕국은 계층사회이지만, 느슨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레이비스 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한심한 놈."이라 중얼거린 체 자신의 입에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빵을 구겨 넣었다.

 

"아니! 그보다 한심한 놈이라뇨. 게다가 그 중얼거리는 말이라면, 제발 안 들리게 해달란 말이에요!" 라는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조용하게 있었다. 이윽고 레이비스 씨에게 돌아간다는 인사를 전하고, 레시아가 다시 귀환마법을 사용하면서, 나를 욕조 위에...아니 진짜! 나만 좌표가 왜 이래!

 

-첨벙!

 

"오늘은 피곤하니 짐에게 빨리 봉사하거라."

 

레시아는 욕조 옆에 있는 바닥에 안착을 하며 레이비스 씨와 같이 있을 때, 굳게 봉인 해뒀던 입을 열었다. 나는 욕조 위에서 전신이 다 젖은 체, 목욕실의 천장을 보면서 땅이 꺼지라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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