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 - 4

17

 

 

 

약속된 시간은 새벽 4시.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오지 않았다. 물론 그 코볼트 40명만 빼면, 손님은 없는 셈. 가면 갈 수록 이 잡화점이 안 망하는 이유를 천천히 고민하게 된다. 언젠가는 이 잡화점에 대한 비밀을 풀어야 하는 생각에, 의지가 내려가다 못해 땅으로 뚫고 갈 기세로, 한 숨을 내쉬는 나의 모습은 오늘도 반대편에 있는 거울로 확인했다.

 

오전 0시가 되어 날짜가 바뀐 지금에도 여전히 가위바위보는 나의 패배로 끝났다. 이번엔 내가 보를 냈고, 레시아가 가위를 냈는데 주마등이 스쳐나가면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젖혀서 살았지만, 입고 있던 내 티셔츠는 운명을 맞이했다. 아마 티셔츠의 주마등일지도 모른다.

 

정말 가공할 속도의 참격과 그것을 겨우겨우 피할 수 있는 나의 반사신경으로 그 과정이 걸리는 시간은 1초 조차 안됬다. 애초에 주먹과 보자기로 레시아가 이겼을 때는 벽에 박히거나, 천장에 박혀서 다시 떨어지거나 인데, 가위로 이길 때는 정말 가차없는 참격이 날아오니...

 

그 때 마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지?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 언젠가 나는 1/3 확률로 즉사하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정말 죽이려고 작정했어요! 이 티셔츠의 꼴을 보라고요! 가위바위보에서 왜 가위만 살상력 있는 마법을 구현하는 거에요!"

 

내 하얀 피부와 근육이 노출된 체 레시아에게 따지고 있는 내 모습이란 처량하게 그지 없었지만, 나도 할 일을 다 해야 했다. 그게 딴죽 거는 일이지만...그러나 레시아는 내 딴죽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호오...아무리 봐도. 그 작은 몸집에 단련된 근육을 보니까, 짐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

 

"말 돌리지마! 잠깐...'아무리 봐도'는 또 무슨 뜻이에요?"

 

"주인. 무슨 일을 했길래 이런 몸이 된 것인가?"

 

"말 돌리지 말고!'아무리 봐도'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요!"

 

"그것도 모르는 건가? 우선 '아무리'라는 말은 두 가지의 사전적인 뜻이 있는데..."

 

누가 그걸 물어봤냐!

 

"내가 묻는건 사전적인 의미가 아냐! 언제! 어디서! 내 몸을 봤느냐 이거지!"

 

"그야. 주인이 짐의 옥체를 씻기는 봉사를 할 때마다, 주인이 입은 하얀 티셔츠에 물이 튈 때, 아...여전히 그 때만 생각해도 짐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후.후.후."

 

"그런 무감정적인 말투로 설렌다는 말을 하고 억지로 웃어봤자, 레시아의 캐릭터가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자주 씻겼는데, 앞으로 물속으로 던져버린 다음 나갈까... 물론 레시아의 본 모습은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추측상 여성형 마족이지만, 감정의 변화가 베가프를 만났을 때의 격한 감정변화 빼고는 대부분 감정에 대한 변화가 없다. 물론 화났을 때나 육포 받아먹었을 때는 조금씩 변화가 느껴지지만...

 

"주인."

 

독백 중에 내 정신을 흩트린 것은 레시아의 부름이었다. 잠깐 생각이 깊어질 찰나에 손님이 한 분 들어오신 것. 그야 당연히 습관적으로 나오는 "어서오세요."라는 말을 뒤늦게 하고 나서, 그 손님이 이리저리 물품을 둘러보며, 카운터 앞으로 찾아왔다.

 

"좋은 밤이에요. 잡화점의 주인 씨."

 

약간 높은 음성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진 여성분...아니 이 심야에 왔다는 것은 사람이 아닐 터.

 

"혈액팩이 필요한데 여기서 팔고 있죠?"

 

"잠시만요."

 

와인 빛이 나는 후드를 뒤집어 쓰며, 자신의 정체를 가린 저 사람은 아마 뱀파이어라고 불리는 몬스터 중 하나일 터. 혈액팩은 본래 전투 중에 심각한 출혈이 일어날 경우 의무관이 혈액팩을 이용해서 출혈에 의한 쇼크사를 막는 물품이지만, 뱀파이어는 주로 흡혈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사람에게는 살리는 의술 중 하나. 뱀파이어에게는 식빵과 같은 존재다.

 

"혈액팩 하나 당 2골드인데...얼마나 필요하나요?"

 

카운터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3 개를 표시했다. 그리고 혈액팩 3개를 내놓고 이제 값을 지불 받는 차례인데...4골드와 카드 한 장을 보았다. 검은 원이 그려진 카드.

갑자기 고개를 들기 거부하는 내 몸에게 채찍질을 가해, 억지로 고개를 들자마자 후드 속으로 내 얼굴을 감싸버렸다. 후드 속에는 피빛의 두 눈과 새하얀 송곳니를 의식하게 만들며, 천천히 입을 여는 손님.

 

"내 사랑 마일론이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도 날 봐줄까요?"

 

체리 향이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소름 끼치는 말을 들으며, 전에 프렌시아 씨에게 봤던 광기가 다시 생각났다. '이 범죄자 단체는 왜 저런 정신 나간 애만 골라서 고용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1초정도 지났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마일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 녀석이 조종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너희 둘 다 비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맞고, 같이 감옥에서 신혼생활을 해야 할 거야.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날 죽이려고 하면, 내 사역마가 바람도 찢어버리는 가위바위보 실력으로 널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리 날뛰지 않는 게 좋아."

 

그러면서도 만족하듯이 입 고리가 올라가며 웃는 뱀파이어는 나와 거리를 살짝 벌리고, 혈액팩 3개를 가지고 나가면서 말했다.

 

"물론 저는 마일론을 정말로 아끼고 사랑한답니다. 마검이 그를 관심을 빼앗기 전까지만 해도요."

 

"마검?"

 

"네. 마검이에요. 그러니까 마검의 시초는..."

 

"마검의 역사를 몰라서 그런 게 아냐!"

 

"그럼 잘 알고 있나요?"

 

"설령 내가 마검에 대해 잘 몰라도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꼴찌 하지는 않았어!"

 

30명중에 28등은 꼴찌가 아니니까!

...비참하다.

 

"그 마검의 이름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마검의 이름?"

 

확실히 마검에 당한 상처에 마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면, 상당히 강력한 마검 중 하나일 것이다. 안 그러면 왕국 비밀보관소에서 일부를 자폭시켜서 소모전으로 가지도 않았겠지. 아무튼 입구를 열고 뱀파이어가 서서히 박쥐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는 '티르빙'이라는 세 글자였다.

 

***

 

티르빙.

옛 전설에 따르면 한 왕이 두 명의 드워프를 잡고, 드워프들에게 검을 만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라고 말로 협박을 해서, 드워프들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만들었다. 왕에게 건내주기 전에 저주를 걸어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마검은 검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후에는 주인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검이다.

자매품으로 폭풍을 부르는 '스톰브링거'와 바퀴벌레보다 더한 생명력을 가진 '다인슬라이프'가 있다.

 

문제는 '책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 마검이 왜 현실에서 깽판을 부리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인데...레시아가 육포를 맛있게 먹으면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 일 좀 해라! 마왕!

 

"레시아? 마검은 전설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에요? 왜 존재하는 거에요?"

 

"그거야 연금술사나 마법사들 그리고 드워프들의 존재로 사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본은 원작자가 만들어야 하잖아요? 전설에서나 나오는 사람들이 실존 인물은 아닐거고요."

 

"아무리 전설 속에서 나오는 인물이 먼저 만들었다고 꾸며내도, 현실은 자신이 직접 만들면 그게 원작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미 마법공학과 연금술 그리고 드워프들의 신이 내린 대장장이 실력만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좋다고 저런 마검을 뚝딱해서 만들고, 왕국 비밀보관소에 봉인시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고심이 하던 찰나에 레시아가 답답하다는 한 숨과 함께 원인을 알려줬다.

 

"검은 달의 여왕이란 단체가 있지 않는가."

 

"아...그렇네요."

 

"이래서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

 

"레시아? 그건 '등잔 밑이 어둡다'가 아닌가요?

 

"여튼..."

 

자신의 말 실수를 그냥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가다니...

 

"그 범죄자 단체는 다종족이 모여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제국과 왕국세력을 무너뜨리려는 단체가 아닌가? 자신들을 통치 해주는 여왕이 오는 날만을 기다리면서. 그런 간악한 무리들이 벌써 2번씩이나 불러왔는데, 그깟 마검 하나 둘쯤은 만들어 낼 기량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레시아의 말을 끝으로 새벽 4시가 되고, 문 앞에 있는 파란 글씨로 쓰여진 'Open'을 붉은 글씨의 'Close'로 바꾼 체 3층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리베리티아 고원에는 애초에 가본적이 있기 때문에 사키엘의 문을 열자 고원 특유의 바람과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 비춰진 한 사람의 그림자.

나는 레시아와 같이 느티나무 근처로 발을 옮기자, 그 형태는 더욱 더 뚜렸하고 선명하게 나타났다. 내 발소리에 뒤를 돌아본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카일. 여전히 지각을 많이 하는군. 기다리기 지쳤어."

 

굵고 낮은 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내.

사자가 생각나는 듯한 긴 흑발과 푸른 빛이 맴도는 눈. 그리고 용병시절 때 입고 있었던, 갈색 가죽바지와 가죽점퍼 위에는 은색의 체인메일이 있었다.

 

"여전히 키는 작네. 꼬마 카일. 그래서 그 괴물의 집의 주인이 됐다면서?"

 

아무래도 그 뱀파이어를 통해서 다 들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보다 누가 꼬마냐? 마일론. 그리고 그 으리으리한 칼은 왜 훔친 거야?"

 

"훔치다니? 누가 들으면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줄 알겠네.우리 물건이니까. 되찾는 것 뿐이야. 물론 이 마검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마일론 흑색의 검집에 잠들어있는 검을 나에게 과시하면서 반론을 했다.

그런데 너 범죄자 단체니까 나쁜 짓만 한 거 맞잖아?

 

"그래서. 뭣 하러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건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보며 마일론은 씨익하고 웃더니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당당하게 말했다.

 

"너. 내 동료가 되라."

 

"아니. 그건 안되겠다."

 

마일론의 대답에 나는 단답으로 거절의사를 표하자, 마일론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체 심각한 표정을 하며 나에게 다시 되물었다.

 

"카일. 내 가족이자 벗이여!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 내가 밀집모자를 쓰지 않고, 해적이 아니기에 그런 것인가?"

 

"너의 스타일과 직업이 문제가 있어서 거절한 게 아냐!"

 

"칫! 내가 봤던 만화책에서는 이러면 동료가 되던데!"

 

"여긴 만화책이 아니니까. 이 멍청아."

 

"좋아! 내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능력이 생기면 그때는 동료가 되는 건가!"

 

"그런 열매는 현실에도 없어!"

 

고작 엄숙한 분위기로 느티나무 아래에서, 오가는 말이 이런 바보같은 말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보다...

 

"그 뱀파이어하고 신혼여행이라도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 지낼 것이지! 왜 범죄자 단체로 복귀해서 이 난리를 만든 거냐!"

 

"하지만! 멜시스 양은 나의 바보 같은 말에도, 너처럼 적당하고 찰지는 태클을 걸어주지 않는단 말이야."

 

"그게 뭔 상관이야!"

 

태클 캐릭터라서 날 동료로 영입하려고 하냐!

귀여운 아이라고 기사단에 영입시키려는 루니아 씨하고 뭐가 달라!

그럼 아까 그 뱀파이어는 딴죽 거는 능력이 부족해서, 나에게 질투하고 있는 것이 되어버리잖아!

 

[주인. 괜찮다. 짐은 이미 바보짓 하는 캐릭터다.]

 

[그걸 걱정한 게 아니잖아요! 뜬금없이 무슨 말하는 거에요!]

 

[우리의 만담콤비는 완벽하니, 저 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

 

[전투씬은 만담이 아니잖아!]

 

말로는 마일론에게 텔레파시로는 레시아에게 온갖 사방에서 들려오는 바보 같은 말을 이중으로 처리하느라 내 속은 터질 것 같고, 내 머리는 정신이 없었다.

 

"뭐 확실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군. 안 그래? 평민?"

 

"무슨 평민이라고 지껄이는...평민?"

 

폭주하던 내 정신이 싸늘한 말 한마디에 모조리 얼어붙어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금빛의 살기로 무장한 레이비스 씨가 권총을 나와 마일론에게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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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은 빠르게 죄다 올려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에 하나 씩 쓰는 사람이라...

물론 지금 있는거 막장으로 올리면 도배가 되니...하루에 2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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