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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서

 

사라락 사라락

내리는 소리가 좋아서

보고 또 보았다.

 

뽀드득 뽀드득

다져지는 소리가 좋아서

걷고 또 걸었다.

 

시꺼먼 밤, 붉은 하늘에서

새하얗게 내리는 송이송이를

맞고 또 맞았다.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앞으로만.

취한 듯 홀린 듯,

그러다 고집스러워진 걸음이 싫어서

우뚝.

 

돌아서서,

걸어온 발자국을 바라본다.

 

취해서, 홀려서, 그저 걷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들.

꽁꽁 다져져서 지울 수가 없는 흔적들.

허옇게 덮인 채 아득해진 기억, 기억, 기억들. 

살아온 시간의 의미와, 지나쳐간 모든 것들의 존재감.

​ 

흩날리는 눈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깨에 내려앉는 눈 소리에 귀 기울인다.

다시 돌아서서,

​끝없이 펼쳐진 미지의 공간을 바라본다.

끝인가, 시작인가, 부질없는 연명인가.

​그 순간 터져 나온 허연 숨이 사라질 때쯤,

또 다른 숨이 심장으로 날아든다.

자연스레, 낯설 만큼 자연스레 숨을 쉬고, 쉰다.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야 하는 시간의 의미와, 다가오는 모든 것들의 존재감을

단단히 붙들고서 또박또박,

​또다시 길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 왔던 것이,

그래야 하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임을 알았기에.

 

눈 위에서, 눈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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