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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저려오는 손끝으로 리코더를 움켜쥐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나를 스쳐 지나간 너의 온기가 아직 내 어깨에 남아있어서, 너가 흘리고 간 날숨이 아직 내 귓가에 고여있어서,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든다. 

 

내가 뱉어내는 모든 말마디 속에 너가 존재한다. 내가 팔과 다리를 움직여 만들어내는 모든 행위 속에 너가 살아 숨쉬고, 내리뜨는 눈꺼풀 끝에 너가 찬란하게 자리한다. 뺨을 할퀴고 머리칼을 들추며 지나가는 바람 사이에 너의 붉은 체취가 너울거린다.

 

매 순간 내 간절한 시선과 애닳은 숨결과 숭고한 심장의 메아리가 닿는 곳에 너가 스며있다. 손을 뻗으면 예의 그 신기루처럼 아스라질까 두려워 나는 너에게 닿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응시하며 나는 기꺼이 절망했다. 사라지는 잔향을 좇아 움직이며 나는 너의 짓궂은 입꼬리를 상상하고, 반항적으로 구겨지는 눈꼬리를 그리고, 오늘도 인사를 건네지 못한 나를 저주한다. 

 

자책과 자괴가 만들어낸 어둠을 닮아 그 이면마저 추악한 피조물은 짝사랑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근거로 했고, 한번을 돌아봐주지 않는 너에 대한 미약한 원망과 치기를 전제로 했다.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교실로 틀었다.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전신을 살라 먹는 뜨거운 열기를 폐포 가득히 삼키며 나는 고요히 울었다. 

 

교실의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자라난 끈적한 미련과 아쉬움이 나를 붙잡았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와 시끄러운 말소리 사이에 나만 잠식되어 있다. 차가운 심해 속에, 무거운 침묵 속에, 하얗게 부서지는 창공 속에. 수면 위로 떠오르려 허우적거리고, 말간 공기와 맞닿고 싶어 애써 발버둥치지만 결국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결코 너라는 그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안다. 

 

사물함을 열고 음악책과 리코더를 집어넣었다. 더불어 너의 옷깃을 잡아채고 싶은 욕망을, 눈을 맞추고 싶은 욕심을,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바람을 조용히 밀어 넣는다. 

 

차마 건네지 못하는 인사다, 감히 전할 수 없는 고백이다, 끝내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이다. 

 

서러운 변명들 밖에 나열할 줄 모르는 못난 나는 오늘도 너의 곁을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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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사진
소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리 2016. 10/21

마음 한켠이 쓸쓸해지네요 .............

나비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나비 2016. 10/20

마음이 시려지네요ㅜㅜㅜㅜ

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왠지 쓸쓸하고 서글퍼지는 미련...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