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사냥꾼

The day-그림자 사냥꾼

나는 창문을 열었다. 오래된 문짝은 단단히 굳어버린 것 같아서, 힘을 주어서 밀어야만 간신히 열렸다. 창문은 활짝 열리지 않았다. 끝까지 열었다면 보였을, 바깥 풍경의 반조차도 되지 않는 면적까지만 밀려나갔다. 나는 그 틈 사이로 푸른 눈을 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에게 허용한 자유의 크기였다. 그는 우리를 이곳에 가두어놓고 결코 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저택이 줄지어 선 거리, 즉 내 시선의 앞으로 마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검은 안개 같은 마부와 까마귀 떼로 이루어진 것 같은 형상의 마차를 끄는 말들이었다. 바퀴가 굴러갔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부는 말할 것도 없고 말들조차 고요했다. 
 나는 직감했다. 마부는 아버지의 하인이고, 저 마차 안에는 아버지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뛰어갔다. 오래된 서재에는 잡동사니를 포함해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각종 무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나는 붉은 검을 뽑았다. 익숙한 냉기가 손바닥을 휘감았다. 나는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자 했던가? 그리고 아버지는 어떠했던가?
 아버지는 누구든 살해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죽임당할 수는 없다. 그는 악령을 부리는 흑마법사다. 그의 힘에 대적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공할 힘으로 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전쟁터에서, 거리에서, 지하 감옥에서, 뒷골목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억겁의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여왔다. 살인은 그의 일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에 그는 자유로이 쏘다닐 수 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침묵의 인간들이자 그가 방치한 가축이다. 그는 우리를 멋대로 엮어 한 공간에 몰아넣고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는 그의 핏줄을 공유하고 있지만, 실상 서로조차 믿지 못한다. 우리를 한 데 묶어주는 것이라고는 어둠 속의 촛불처럼 속수무책으로 떨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이 유일하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무력한 짐승과도 같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언가를 말한다거나, 함께 의논을 한다거나 같은 구체적인 의도는 없었다.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심정으로 갔을 따름이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묵묵히 숙인 자세로 앉아있었다. 동생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생은 영원한 침묵 속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지 않는 또다른 세상 속에 잠겨버린지 오래였다. 영원 같은 잠이었다. 유리 자국 같은 깊은 정적이 우리 사이에 번져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의 세번째 층처럼 새빨간 머리카락을 등 뒤에 늘어트린 여자가 그 광경을 보고는 날카로운 홍소를 터뜨린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내 눈으로 그녀의 형상을 본다. 
 내게 말을 거는 유일한 존재라고는 그녀 뿐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죽은 사람들만이 목소리로 행세한다. 심장이뛰는 자들의 귀에는 닿지 않는 무연한 음성이다. 
"내가 말했지? 내가 말했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그 이전부터 아버지의 출현을 예고한 바 있다. 숲 바깥에서도 막강한 포식자의 악취와 기척을 감지하는 사냥개들처럼, 그녀도 생전의 자신을 살해한 자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해칠 수 없다. 복수할 수 있는 힘은 그들에게 없다. 피가 흐르는 자들만이 보복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의 핏줄을 이은 내게 달라붙어, 시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든 언어를 속삭이는 자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내 육체가 시작되는 기억의 첫 단락부터 내 주변을 맴돌아왔다.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자는 그녀가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실에 안도하기도, 절망하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나와 대화할 유일한 상대이니까. 그녀가 깔깔댄다. "내가 말했지? 내가 말했잖아. 그가 올 거라고. 머지않아 너희 모두를 처단하기 위해 찾아올 거라고!" 
나는 아버지는 일시적인 현상 같은 것이라고, 비록 그의 출현이 재앙이기는 해도 우리는 처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붉은 머리의 기사는 금색 망토를 휘날리며 바람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리품들이 일제히 쩔렁, 짤랑대는 갖가지 소리로 이 웃음에 합류한다.
 "나는 그에게 필요가 없어서 죽임당한거야. 전쟁을 이끄는 일국의 공주의 격에 맞지 않는 최후였지. 우리는 그의 힘을 과소평가했어. 사막의 지배자는 늘 신중해야하지. 나는 날아가지도 꺼지지도 못한 채 늘 그의 핏줄 주변을 배회하며 공허한 말을 읆조리는 망령이 되어버렸어. 내가 말했지? 그가 찾아올 것이라고!"
 그들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기로 결정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유령들은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살해한 자의 자손에게 들러붙어, 결코 끝나지 않을 자폐적인 어둠의 기억을 선사한다. 동생은 아버지에게서부터도, 희생자들의 처참하고 생생한 언어로부터 차단된 얼음처럼 깨끗한 세상 속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와 맞서 싸워야 했다. 나는 붉은 검을 살펴보았다. 고대로부터 쌓여온 물건들은, 얼핏 보기에는 잡동사니처럼 보였지만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한 때 먼지 속에 잠겨 잠들어 있었다. 그들을 깨운 것은 나였다. 붉은 검. 나는 그렇게 이름 붙였다. 막 흘린 피를 단번에 응고해 보석의 광채를 입힌 듯한, 새빨간 검이었다. 그 검은 아마도 용의 꿈을 꾸고 있을 터였다. 루비같은 붉은 보석으로 뒤덮인 깊은 동굴. 그곳이 숨어 있는, 신조차도 그 손가락을 뻗치지 못할 구름의 산. 나는 검을 만지며 검이 보여주는 기억에 귀기울였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세상을 탐닉했다. 그것을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배움일 것이었다. 끝까지 열리지 않는 창문 바깥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광경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익숙한 이 세계를 떨치고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거품 같은 꿈들이 인도하는 곳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죽여야 했다. 붉은 검의 눈이 나를 향했다가, 이내 지쳤다는 듯 눈을 감았다. 검은 자르고 베고 썰 데에만 숨을 쉰다. 물건은 제가 만들어진 용도에 따라 쓰여질 때만 살아난다. 나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뱃속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온 몸의 장기가 가지 말라고, 허튼 짓하지 말고 익숙하고 안락하고 비참한 세계에서 머무르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검의 날을 만져보았다. 내 살이 종잇조각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 세상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내 공포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피를 몇 번이고 검의 이빨에 가득 적셔지도록 바칠 용의가 있었다. 
 붉은 머리의 기사가 소리 높여 그를 환영하는 웃음 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그가 돌아오면, 그녀 역시 죽은 목숨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하는 걸까?  그녀의 두 손목과 목이 마법의 족쇄에 걸려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눈 앞에 선연히 그려졌다. 왜 그녀는 그의 출현을 환영하는 걸까? 
  환영이 아니라 애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일찍이 그의 출현을 몇 번이고 예고해 온 터였다. 
 까마귀의 날개와 같은,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우리의 침실 위에 드리워진다. 매캐한 향기와 수많은 사체들이 내뿜는 악취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말발굽 소리는 멈췄고, 그의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종소리가 진공을 흔든다. 그는 악령을 부리는 흑마법사로, 그가 억겁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던 까닭은 오직 이것을 위해서였으니, 나의 유일한 임무는 그에게 맞서는 일이다. 
  내 연푸른 눈, 하늘의 빛깔을 본딴 것 같은 그 눈이 바닥을 향해 흐르다가 이내 천장을 따라 급격히 치솟아 올라갔다. 어머니는 어깨를 움츠리고 무력한 눈빛을 한 채 고개를 든다. 붉은 머리의 기사가 붉은 입술을 열어 광적인 웃음을 폭발시킨다. 
  "내가 말했지? 그가 온다고, 그가 찾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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