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사냥꾼

쥐들의 도시

 

또 하나가 죽었다. 죽음은 차례차례 찾아오지 않았다. 어떤 이는 서서히 죽었고, 다른 이는 급히 숨이 넘어갔다. 죽음은 변칙적이어서 그들은 괴로웠다.
 쥐. 쥐 떼가 몰려와 곳곳에 파고들었다. 구석에, 틈바귀에, 저장소에, 우물에. 쥐들은 차츰 대담해져 치즈를 실은 수레나 과일 좌판에도 출몰했다. 사람의 눈에 띄이면서도 태연했다. 쥐들은, 차선책으로 풀어놓은 고양이를 물어죽였다. 새끼들은 쥐에게 몸피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다. 쥐들은 늘어났고 죽음도 넘쳐났으나 시장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사병들로 하여금 성문을 삼엄히 감시하도록 지시하고 저택의 문을 꽁꽁 잠근 뒤 엄격히 선별된 소수의 사람들에 한해 접근을 허락했다. 
 저잣거리를 떠돌며 종말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종말론자들은 곧 죽어 연설은 끊어졌지만, 다음 날이면 새로운 미친 자가 나와 같은 내용을 외쳤기에 끝나지 않을 노래 같았다. 시장은 그들마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는 듯 잠잠했다.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안위 뿐이었다. 
 도시는 고립되었다. 
오랜만에 저택을 찾아온 이는 왕의 특사도 구걸하러 온 거렁뱅이도 아니었다. 그가 걸어가자 덩치 큰 잿빛 쥐들이 꼬리를 흔들며 재빨리 흩어졌다. 가축과 사람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시체들은 파먹힌 과일처럼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는 그대로 걸어가 저택의 문을 두드렸고, 보초병은 이맛살을 찌푸렸고, 그는 병사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병사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렸다. 
 시장은 무엇이든지 불신했다. 불신이 그의 큰 자산이었다. 그는 무수한 사람을 배신하고 속여 재산과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타인 또한 믿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믿는 대상은 신이었다. 때문에 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상한 청년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청년은 그가 본 인간들 중 단언컨대 새로운 유형이었다. 
"뭐야, 어떤 새끼가 저거 들여보냈어?"
시장은 대충 가운만 걸친 채 잔뜩 충혈된 눈을 하고 그렇게 호통을 쳤는데 정작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년은 여유로운 태도였다. 시장에게는 그 태도마저도 거슬렸다. 
"야, 저거 빨리 안 끌어내고 뭐해? 내 집에 웬 천한 광대 새끼를 들여보내다니 니들 제정신이야?"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시장을 막은 것은 순간적으로 눈앞을 휙, 스쳐간 커튼 같은 검붉은 형상이었다. 시장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유리잔이 손에서 맥없이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숴졌다. 고용인들이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받치고 입가에 액체를 흘러넣었다. 
"그동안 피로와 압박감이 심하셔서..."
한명이 조심스레 그렇게 말했고 시장은 흐려진 눈으로도 투명한 잔 너머에 비친 청년의 형상을 보았다. 언뜻 본 그것은 산불처럼 밝게 타오르며 일렁이는 샛노란 불길이었다. 잔이 입가에서 떨어지자, 청년은 이전과 다름없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시장님께서 보신 것은 헛것이 아닙니다."
검녹색 눈의 청년이 말했다. 그는 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붉은 장막을 보셨지요. 그는 쥐들의 제왕입니다. 쥐떼를 몰고 다니며 질병을 퍼뜨리는 악의 징조입니다."
"이런, 씨..."
시장은 이마를 쓸며 난색을 표했다.
"그게 지금 내 집에 들어온거야? 자네도 무슨 대책이 있으니까 날 보겠다고 한거 아냐.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들어줄테니 일단 날 살려주게. 난 여기 시장이야. 자네가 요구하는 건 전부 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저는 애초부터 그럴 목적으로 찾아왔으니까요."
청년은 거무스름한 얼굴을 숙여 그렇게 말하고는, 접견실에 저택의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였다. 그가 펼친 것은 마법도, 의술도 아니었다. 음악이었다. 
 시장의 태도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 그는 시장의 권위에 걸맞는 의복을 갖추고는 즉시 성대한 연회를 베풀도록 지시했다. 
"내가 자네를 잘 몰라 실례를 했네. 도시를 질병으로 부터 구완해야 할 의무감과 부담감은 나날이 나를 짓밟고 갉아먹었다네. 그러나 이제 자네가 왔으니 나도 시민들도 한 시름 덜었네. 수많은 목숨이 자네 한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모쪼록 최선을 다해주시게."
시장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 사람들이 무안해질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으나 눈으로는 줄곧 청년을 훑어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청년은 시장의 마음을 적잖이 풀어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쥐들을 밖으로 몰아냈으니 그들의 제왕은 힘을 잃고 쥐 떼를 좇아 물 속으로 뛰어들었을 겁니다. 시장님의 저택은 당장에는 역병으로부터 무사할 것이나 바깥의 도시는 그렇지 못하지요. 제게 나흘의 기한을 주시면 도시 곳곳에 웅크린 병의 씨앗을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시장은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는 청년이 쥐들을 모두 퇴치해주는 대가로 막대한 양의 돈을 요구했을 때도 기분좋게 승낙했다. 
 쥐들의 왕국에 구원자가 납시었다. 골목에서 광장까지, 그가 도시를 누비며 펼친 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기적이었다. 하잘것없는 피리 소리였을 뿐인데, 쥐들은 그 소리에 홀린 듯이 하릴없이 이끌려가다가 강가에 몸을 던졌다고, 그 광경을 목격한 이는 그렇게 말했다. 시민들은 단번에 찾아온 평화에 기뻤고 일견 얼떨떨했다. 그러나 쥐를 퇴치하는 대가로 시장이 그 이방인에게 천 냥이나 되는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시청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깨끗해진 광장에는 말쑥한 차림새의 시의원들과 시장이 엄숙히 서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소!"
한 남자가 그렇게 고함을 질렀다. 

"전염병 때문에 가축도 식량도 전부 동이 나버렸단 말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판에 시장 당신은 우리의 목숨을 놓고 수상쩍은 떠돌이 외국인 하나에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버렸단 말이오? 우리가 언제까지 더 참아야 합니까?" 
 사람들은 비쩍 꼴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놓아 시장의 탄핵을 외쳤으나 시장은 이를 타개할 간단한 대책을 세워놓았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검은 피부와 외지의 억양을 좋아하지 않았다. 떠맡겨진 약속의 짐을 내던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일단 가장 쉬운 대책이 제안되자 그들은 만장일치의 동의를 보였는데 사뭇 오랜만의 일이었다. 시장은 조소 어린 거만한 자세로 청년에게 즉시 떠날 것을 명령했는데 쥐들이 사라진 거리는 깨끗이 닦여 윤기가 흘렀고 건물은 위용이 넘쳤다. 꾀죄죄한 아이들이 쥐처럼 빠르게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수레를 끌던 노인은 바퀴가 죽어 널부러진 돼지의 시체에 걸렸는데도 제자리에서 멈춰선 채 나아가지 않는 수레를 밀고 밀기만 했다. 
"좋은 경험으로 여기도록 해. 이 또한 신이 정하신 운명이니,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똑똑하게 행동하기를 바라겠네. 그 꼬라지로 와서 천 냥을 요구하다니, 그야말로 분수에 맞지 않는 요구 아니던가. 주제 파악을 하도록. 이만."
 시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휘휘 내저었고 경비병은 문을 굳게 닫아 걸었다. 청년은 시장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모습을 드러낸 시장은 커튼을 내려 청년의 시야를 막았다. 마치 배신을 기다려왔다는 듯, 숲의 가장 깊은 구역을 닮은 눈 속에 환한 불빛이 켜졌다. 모멸 당한 청년은 등을 돌리며 모자를 깊숙히 눌러 그 빛을 삼켰다. 도시의 씨는 모조리 말라 버릴 것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 어리고 약하고 무방비한 존재들은 쥐들이 그러했듯 정체불명의 음악에 이끌려 물가로 하나하나 춤추듯이 행진하다가 물 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었다. 
 사람들은 허둥지둥대다가, 전말을 알아차리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하늘을 저주하고, 자신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고, 이제는 사라진 이방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는 시장에게 향했다. 갓난아기를 제외한 아이란 아이는 모두 사라졌다. 골목의 거지에서부터 시장의 자식들까지 하룻밤만에 연기처럼 홀연히 증발했다. 시장은 자신도 같은 피해자일 뿐이고 시민들 모두가 이미 동의한 사안이 아니냐며 시민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분노로 눈먼 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시장은 쥐의 비가 쏟아지는 꿈에 시달렸다. 쥐들이 쉴새없이 떨어져내리며 지붕과 바닥과 기둥에 부딪혔다. 쥐들은 금화를 갉아먹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건물을 갉아먹고, 치즈와 사과를 갉아먹고, 사람을 갉아먹었다. 열 살 난 아들은 그 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아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슬프게 뜬 채 시장을 바라보았다. 쥐들이 들불처럼 번져 아이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단 한번도 의도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저주가 아니었어. 그 놈이 찾아왔던 게 저주였던거야. 쥐들의 출몰은 그 놈의 출현을 위한 전조에 불과했어!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다. 창 너머 떠오른 달은 너무도 깨끗하게 보였다. 잿빛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날의 조용한 도시 속 사람들은 슬픔에 지쳐 미적거렸다. 시장은 이불을 제치고 숨겨왔던 상자를 꺼내 열었다. 칼날은 새것처럼 순정하게 빛났다. 그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죽거나, 청년이 죽거나 , 그 한 가지만 생각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일 없는 계획이었다. 오늘 밤에 끝낼 생각이었다.
 '너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나는 침묵을 원했지만 넌 그보다 더한 것을 빼앗아갔다. 쥐들은 사라졌지만 도시는 생기를 잃었다.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네가 인간이든, 요정이든, 오늘 밤에 결판을 내야겠다. 그 이상한 음악으로 날 쥐새끼들처럼 만들어보라구.'
 시장은 청년이 찾아온 날 보았던 붉은 장막 같은 형체를 기억했다. 목 뒤로 소름이 돋았다. 청년이 쥐의 왕이니 역병이니 했던 그것을 떠올리자, 무섭기는커녕 기묘한 쾌감을 동반한 저항 욕구가 솟았다. 가까이에 두면서도 결코 소중함을 몰랐던 보석이 휘발해버렸다. 그것이 사라진 이상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 그 전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시장은 칼을 품 속에 감추고 검은 밤 사이를 내달렸다. 아무도 모르는 구멍을 빠져나왔을 때, 때모를 소나기가 내렸고 천둥이 으르렁댔다. 피부를 때리는 빗발의 소음 틈으로 찍찍대는 쥐 소리가 들렸다. 쥐들의 제왕은 창궐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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