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단상(斷想)

그대의 죄는 사유(思惟) 불능

칼 아돌프 아이히만’ (Karl Adolf Eichmann).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의 친위대 장교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 체포와 강제이주를 주도했으며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나치 전범이다.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살아오다 1961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끈질긴 추격 끝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 섰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으로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며, 지시받은 명령을 충실하게 잘 수행한 관리일였을뿐 이라고 항변한다. 아이히만 그는 실제 준법정신이 강한 모범시민이었고 맡은 바 임무를 잘 해 내는 성실하고 유능한 정부관리였으며, 가정에서는 따뜻하고 애정있는 남편이자 아이들에겐 자상한 건실한 가장이었다.  8개월 간의 지루한 재판 끝에 아이히만은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을 지켜보던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의 죄는 ‘사유의 불능’, ‘생각의 무능’이라고 단정한다. 아이히만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적 사명을 다했다. 그러나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했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조차 할 줄 모르는 그저 기계 같은 사유불능의 직업인이었을 뿐이다.

악랄하기 짝이없는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이히만의 스케일에는 아쉽게도 못 미치지만,  사유불능의 공통점을 가진 범죄자들이 있다. 바로 산업기술 유출사범들이다.

작년 말 경찰청(외사국)은 전기전자·정보통신 등 국가핵심기술, 중요 산업기술유출 행위, 영업비밀 침해 행위 등 산업기술 유출범죄 기획수사를 추진한 결과, 총 90건 223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된 기술유출사범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사범은 기업은 물론 국가의 이익을 해친 중대한 범죄자다.

 

이젠 ‘기술유출사범’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들.

애초엔 그들도 정상적이며 유능한 직업인들이었을 게다. 적어도 돈과 그릇된 욕망을 위해 양심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착실한 가장이었을 것이고 사교모임에서는 인기 있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받는 연봉의 2~5배를 제시하는 해외 기업의 유혹을 받을 정도면 꽤 괜찮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소위 말하는 스펙 좋은 인재들이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현재보다 더 나은 직위에 올라가고 더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찾는 노력까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현실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는 자기 욕망의 충족이라는 지점에서 불행하게도 멈춰 버렸고,  그렇게 악은 시작됐다.

그들의 행위가 자신을 신뢰하던 동료와 회사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까지 사고하기엔 그들은 인간으로써 당연히 갖춰야 하는 교양이 부족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너무 흔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자성어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은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그 말을 성찰해보지 못한 변변치 않은 고스펙 무뇌아들이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큼 달콤한 유혹이 있더라도 국가든 회사든 가족이든 친구이든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또는 신뢰를 저버림으로써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용기있게 부정한 이익의 유혹을 떨치고 ‘옳음’을 선택하고 실천하지 못한 점   그리고 개인의 욕망이라는 협소함을 넘어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를 스스로 묻지 않은 점은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했던 아이히만의 철저한 ‘생각하기의 무능성’, 즉 ‘사유의 불능’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술유출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행위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범죄박멸을 외치는 것보다 함께 공존하며 잘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존하며 관리하는 책임. 그 끝에 바로 보안인들이 있다. 보안은 사회안녕을 보호하는 공공재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보안인들은 당신들의 일이 갖는 사회공동체적 의미를 스스로 끊임없이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사유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보안인들이여 그대는 사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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