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단상(斷想)

탐정과 클리셰

모처럼 각종 매체의 ‘탐정’ 또는 ‘민간조사’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읽어봤다. 20년 가까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시중에 떠도는 탐정도입에 관한 글들을 보며 떠오른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클리셰(Cliché).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표현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탐정제도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기관 간에 헤게모니 싸움 때문이라든지, 일반국민의 개인정보 침해가능성, 그리고 빈부격차에 따른 정보 편중, 우리 입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들도 이젠 ‘지루하다’ 치안서비스의 보완 기능을 함으로서 사회안전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국가안보의 한 축으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찬란한 선언도 휘날리지만. 이 또한‘상투적이다.’

여러 자료에서 발견되는 탐정의 업무범위는 어마무시하다. 산업스파이 조사, 회계부정과 기업 내부 부정행위 감시 및 추적, 기업정보 수집과 글로벌 기업 간 거래 환경에서의 해외 리스크 조사, 기업 간 인수합병 지원과 해외도피자금 및 도피사범 추적 등등. 화려하고 눈부시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선 권투선수가 유도·태권도 시합을 동시에 다 뛰는 모양으로 밖에 안 보인다.

이젠 다소 진부해 보이고 상투적인 이 같은 주장과 선언 그리고 도입도 되기 전에 저 높은 하늘을 나는 꿈은 잠시 가슴에 묻어두고, 사회 저변(低邊)과 일반대중에 시선을 두었으면 한다. 추상적이고 상식적인 탐정도입의 주장들과 찬란한 역할의 나열은 오히려 탐정제도 도입 홍보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필자 같은 일반인들은 경제협력기구에 탐정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든지 하는 것에 별 무관심이다. 탐정제도가 도입되면 ‘내가 얼마나 편할 것인가’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제 탐정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입장에선 탐정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다른 전문조사 직역(職域)과 어떤 차별점이 있고, 어떤 편익이 구체적으로 우리네 삶에 다가오는지 같은 기본적 고민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위에 열거한 업무역할들은 그야말로 미국, 영국, 일본 등 탐정 선진국들의 내로라하는 기업들 이야기다. 물론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런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럴 능력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미국·일본 같은 탐정이 정착된 나라에서도 사회 저변의 탐정업체들은 민·형사상 증거 수집 등 변호사 위탁업무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의 심부름센터에서 하는 불륜 조사서비스와 같은 업무도 대중적이라는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어마어마한 서비스들 중엔 외국의 경우에도 해당분야 전문가를 고용해 쓰는 업무이지, 그 전부가 탐정의 업무는 아닐 것이다. 물론 홍보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이라 해도, 이미 전문분야로서 자리잡은 분야까지 탐정영역에 포함하는 것은, 탐정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 업무는 굳이 탐정제도 도입을 안 해도 각 분야의 조사전문가들이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간 발의된 입법안에 제시된 업무영역은 비교적 현실적이다. 그간의 법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미아·실종자 가출인 소재조사. 의뢰인의 권리보호와 피해사실과 관련한 사실조사, 변호사 의뢰사건의 자료수집 등이 탐정의 업무영역으로 제시되어 왔다. 법안을 살펴보면 결국탐정의 업무영역은 결국 사실조사 및 증거수집이다. 사실조사와 증거수집은 공기관의 정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접근은 허용되어야 용이하다. 그러나 공기관이 가지는 개인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는 일반인들의 제한없는 열람은 허용치 않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정보 접근을 허용한다면 탐정업자에게 어떤 조건과 부담을 지움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의 구체적인 논의가 이젠 필요하다. 이미 진부해진 찬반론의 견고한 대립 이유들과 다른 나라는 이렇더라. 하는 한 걸음도 전진 못하는 논의로는 일반국민의 관심을 얻기 어렵다.

탐정제도가 도입되면 우리나라에도 셜록 홈즈가 탄생할 것이라고 언론매체에서 말한다. 셜록홈즈는 어떤 장애에도 핑계를 되지 않았다. 사실조사라는 임무에 충실했고 정확한 답을 냈을 뿐이다. 이론에 갇히지 않고 탐정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명탐정인 것이다. 탐정제도가 있든 없든 증거와 사실에 충실했을 뿐이다. 대중을 향해 탐정의 고유한 역할에 관한 세밀하고 진지한 제안을 기대해본다. 생뚱맞게 프랑스어 단어 ‘클리셰’가 떠오르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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