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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by 김이윤(2012)

제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는 울보 엄마: 독서토론모임에서 선정한 책. 청소년문학상이라 어른인 나는 일단 책이 겨냥한 독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내가 어린이동화인 Robert Munsch의 I Love You Forever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잘 쓰여진 문학은 독자를 특정짓지 않는다.  얼마나 울었는지 딸내미가 자기 방에 있다가 '엄마 안아줘'라는 식으로 두 팔 벌려 거실에 있는 나한테 걸어오더니 빨개진 내 눈을 보며 "엄마 울었어?" 한다. "응, 엄마가 한 친구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네." 그러면서 딸내미를 꼬옥 껴앉는다. "사랑해 우리 복덩이. Forever and after."

 

#김여여와 엄마 김경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앞뒤 커버를 보고 거기에 적힌 글을 읽는다. 뭔가 슬픈 예감이 든다. 그리고 목차를 훑는다. '24. 엄마의 유언은 짧기도 하다.' 아, 엄청 울겠구나.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던 건조하고 독했던 내가 우리 복덩이를 낳고 나서 눈물항아리가 되었다. 여여가 표현한대로 "내 몸이 커다란 눈물 항아리가 된 게 틀림없다. 그 항아리에는 스위치가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아무거나 누르기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p.213)." 그 중에서 '가족, 죽음' 이런 건 스위치 근처만 가도 나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기에 된다. 여여와 그녀의 엄마 김경주 사진작가는 미혼모라는 특정상황설정이 다르지만 나와 우리 복덩이 딸내미라는 공통분모로 인하여 내가 삽시간에 몰입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딸 나이 열여덟에 마흔다섯 엄마가 암으로 죽는다. 엄마는 미혼모. 아빠는 없다. 그런데 아이는 나중에 아빠를 알게 되고 아빠의 새로운 가족을 보게 되고 아빠를 자신의 멘토로 정해 만난다. 그렇지만 당신이 나의 아빠라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다. 엄마 김경주의 자존심은 죽는 그 순간에마저 아빠라는 존재에 손을 내밀지 못하게 했다. 본인은 물론 여여조차도. 아이가 무슨 죄인가. 가까이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그러면 신파가 될까? 그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엄마이기에? 그러고보니 저자가 제일 마지막에 남긴 이 구절이 혹시 여여가 저자 자신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킨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엄마에게 다시 손을 흔들며(p.227)."

 

#현재진행형(ing): 나의 폭풍 눈물은 아마도 여여 나이 열여덟에 같이 살을 부비며 티격태격 사랑할 엄마도 아빠도 없다는 사실이 이 아이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와 슬픔이 될지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직접 겪고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이 가정을 이룰 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아이를 낳을 때 친정엄마가 없으면 그렇게 서럽다는데. 육아로 인한 우울감, 고통은 엄마와 수다를 떨면서 위로를 받으며 치유되는 부분이 있는데 여여는 그게 없구나. 내게 또는 내 아이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축하받고 싶은 사람이 친정엄마인데 그 분이 안 계시면 얼마나 마음이 허할까. 별 걱정을 미리 내가 다 해버렸다. 그러면서 책 내용을 이미 떠나버린 내 생각은 철철 흘러내리는 눈물로 멈추지 못했다. 에휴... 그래, 이걸 내가 다 이미 알아버려서 이렇게 미리 슬퍼하고 걱정할거야. 하지만 여여는 어때? 이 책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어떨까? 이들에게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 사건이 나중에 어떻게 내게로 사무쳐 돌아올지 아직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긍정적으로 나를 성숙시키겠지.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면서 인생은 지나간다? 이 또한 여여는 알 수가 없다. 그녀에게 시간은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하는 현재. 커다란 재난 속에 있을 때는 오히려 담담할 수 있다. 너무 충격적이면 감각이 무뎌지듯이. 멍해지듯이. 이 책 엔딩이 담담한 것, 그래서 '두려움에 인사할 정도로' 담담한 여여가 가능했던 것은 아직도 그녀는 엄마 죽음의 현재진행형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3이라는 환경이 그녀를 벼랑 끝에 세웠기 때문이 아닐까? 격정 한 중간에 있을 때는 우울할 여유가 없다.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그 때 격정이 덮칠 것이다. '실감'이 나겠지. 그리고 여여가 혼자 감내해 가기에는 너무 클 것이다. 아빠의 존재. 화목한 아빠의 다른 가족.  엄마의 부재. 그냥 그렇게 끝나버린 첫사랑. 화목한 외삼촌 가족. 혼자라는 느낌. 외로움과 소외는 오히려 행복한 존재들 사이에서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법. 따라서 여여의 담담함은 내게는 폭풍전야같다. 불안한 고요함.

 

#외발자전거: 이 책을 관통하는 사물, 바로 외발자전거. 여여와 아빠 서동수의 연결고리. 또한 첫사랑 시리우스와의 추억을 간직한 외발자전거. 이 소설에서 여어와 이 둘의 인연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엄마는 외발자전거의 의미도 모른채 세상을 떠나지만, 끝까지 그 아이의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외발자전거. "운동장 흙바닥에 거대한 문자 메시지를 새기고 나자 일시에 긴장이 풀리며 외발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자전거에서 뚝 떨어지듯 내려왔지만, 손으로는 외발자전거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세게 넘어져도 나를, 나의 삶을 놓지 않을거야(p.174)." 아빠를 통해 외발자전거를 떠올렸고 외삼촌을 통해 외발자전거를 만났고 시리우스를 통해 타는 법을 배웠다. 그래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라. 인연은 여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빠는 여여가 태어나면서 없었고 엄마는 열여덟 딸을 홀로 남겨놓고 잡히지 않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첫 사랑도 여여의 의지나 소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외발자전거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으리라. 여여가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것, 바로 외발자전거. 이 극심한 불행을 겪고도 담담하게 "강인한 내 오른쪽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다(p.224, 엔딩)"며 다행스러워 했던 아이는 이제 온 힘을 다해 혼자 외발자전거를 타며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다. 

 

#용서나 화해가 종종 죽읨 뒤에 이루어 지는 것(p.127): 엄마 김경주가 전시회 행사에서 했던 말. 그러나 본인은 정작 자신이 사랑했던, 그러나 평생 한 번도 찾지 않은 여여 아빠와 죽음 이후에도 화해하지 않았다. "네가 아플 때나 너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연락하고 싶기도 했어. 그런데 그런 경우도 다 참고 잘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찾는다면 그건 구차하게 매달리는 거야. 그럴 필요 없지. 난 그동안 잘해 왔거든(p.63)." 또한 여여에게도 그 화해의 문을 열도록 격려하지 않았다. 떠났던 남자를 결코 찾지 않으리라. 그것을 자존심이라고 할까, 품위라고 할까. 독하다고 할까 아니면 본인도 더는 어떻게 하지 못했던 절망이고 자포자기일까. 이 부분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눈물이 터졌다. 그래 김경주와 김여여는 그렇다 치자. 나는 어떤가. 나 역시 마음으로 탐탐치 않은 사람들이 많다(그들 또한 나를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아!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삶-죽음으로 나뉜 이분법의 다리 위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하는 필멸성의 존재 아닌가. 그 때 나도 여여처럼 이런 말을 할까? "내가 잘못한 거 다 용서해 줘.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p.220)."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된다. 이 역시 내 자존심일까? 용서와 화해는 진정 죽음 이후에 가능할까?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화해할 마음이 1도 없다가 죽고 나면 갑자기 너그러워 지는 걸까? 이 또한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모든 이와 동시에 화해할 수는 없다. 나도 힘들어 그건. 그러니 한 명씩 노력해보자. 내가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도록. 함께 해줘서 고맙고 이제 편안하게 쉬라고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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