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ink & Write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3

#절망: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코너에 몰린 듯한 위기감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고 온 세상에 불운은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때가 있다.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건만 어느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 버렸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은 언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끝도 없는 절망에 빠질 때가 있다. 또는 엄청난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아이가 된 것 같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는 이 쉼없는 여정을 과연 내가 끝까지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는 그저 잠들고 싶고 깨어나지 않고 싶다. 그저 울고 싶고 용서를 받고 다시 확신을 품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당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 나오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이다. [중략] 어린 시절 그 때 그의 미래는 여전히 가능성이 충만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았고, 부모님은 먹을 것을 잔뜩 차려주었고 식사 뒤에는 끈끈해진 그의 여린 손가락을 닦아 주었고 그의 앞에는 모든 기회의 문이 열려 있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히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눈을 감자, 그는 눈물이 속눈썹을 적시는 것을 느꼈다(p.181)."

 

#어머니(마테르 mater): 저자는 말한다. "철저하게 합리적인 시각에서 보면 카톨릭의 성모숭배는 무척 유아적이고 어리석은 사례에 속하는 것 같다. 어떻게 수천 년 전에 살았던(정말로 살았는지도 모르는) 여성의 존재를 믿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어떻게 그녀의 티 하나 없는 마음을 향해서 투사된 믿음에서 위안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는 것인가?(p.182)" 개신교에서도 카톨릭의 성모숭배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에서 중요한 것은 마리아를 믿고 안 믿고, 성모상을 세우고 안 세우고가 아니다. 왜 지금까지도 현대인은 성모 마리아를 우러러보며 촛불을 켜고 각자의 슬픔을 하소연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절망의 순간에 이르면 우리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수십 년 전 누군가 내 곁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확신을 주었으며 영원한 사랑과 용기를 주었던 그 누군가를 갈망하게 된다. 그는 바로 우리의 어머니였다. "내가 여기 있잖니." 어른이라고 해서 나를 다독여 줄 존재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고 허영이다. "어른치고 어린이처럼 위로받기를 종종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p.188)." 종교는 성인 사회에서도 필요한 이런 갈망을 우아하게 인정하고 표출하도록 했다. "카톨릭의 마리아, 이집트의 이시스, 로마의 비너스, 그리스의 데메테르, 그리고 중국의 관음보살 등은 모두 우리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자애를 찾아서 되돌아가는 추억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p.184)."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너무나 위대하고 이성에 의해 상황을 냉정하게 제어할 수 있으며 계획한대로 이루고 실패 속에서 더욱 발전하고 단단해진다는 계몽주의적인 사상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은 그 내면에 도사리는 두려움, 나약함, 변덕스러움, 나태함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나의 결점과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토로하며 세상의 모든 어머니(마테르)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To be continued)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