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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2

#공동체 vs. 인간본성 vs. 자본주의: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결점이 많은 피조물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턱없이 나약하고 위험에 취약하여 제우스의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불을 가져다 준다. 육체적으로 약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운명적으로 하루 하루 죽어간다. 필멸성은 인간 존재에서 부정할 수 없다. 인간 본성은 또 어떠한가?  몸 속에 깊이 뿌리박힌 이기심, 차별주의, 공격성, 피해의식, 죄의식 등은 자본주의 발달로 더욱 심화되어 개인주의, 고립성이 극화된 '혼밥' 문화로 표출되고 있다. 공동체 정신은 이제 불편하고 필요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변질된 것 같고 공동체의 선을 향한 가치관 정립은 짜증스럽고 귀찮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우리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 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멧돼지나 곰을 사냥하기 위해 결국 여러 씨족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부족으로서 생존을 이어갔던 점만 봐도 공동체의 실용적인 필요를 부인할 수 없다. 낯선 이에게도 인사하고 호의를 베풀며 내게 전해주는 호의에 감사하며 서로 도와 살아간다.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과 공격성을 자제하며 인내, 관용, 타협, 조화, 책임감 등 덕목을 배우고 익히며 키워나가고 실천해야 한다. 이 둘 간의 긴장을 계속 유지하면서, 즉 인간의 본성도 잘 관리하면서 공동체를 영위해 나가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종교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톨릭만 하더라도 일단 그 곳에 들어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자들과 인사한다. 매스컴만 보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살인자일지도 모르고 강간범일지도 모른다는 불특정다수를 향한 불신 때문에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하면 안 되고 호의를 베풀어도 절대 응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로비에서부터 우리는 가벼운 목례 또는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처음 보는 신자들과도 하게 된다. 마음이 놓이는 느낌, 호랑이에게서 쫒기다 안전한 안식처에 들어온 느낌. 공포와 불안에서 헐떡이다가 '휴~' 한숨을 쉬며 땀을 닦고 모닥불에 앉아 나를 위로하는 느낌. 미사 중에서도 서로 촛불을 나누거나 "평화를 빕니다(Peace be with you)"는 말로 주위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공동체의 첫 시작인 '낯선 사람 만나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식사: 미사는 원래 '식사'에서 비롯된다. 카톨릭 미사는 '성찬식'이다. 신부님께서 "[...] 이 성찬에 초대된 이는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카톨릭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뤄진다. 옛날에는 신자들끼리 소규모로 서로 식사에 초대하면서 예수님 말씀을 나누고 묵상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성찬식으로 의식화 되었고 '성체'라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전 신자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된다. 저자는 '식사'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찾는다. 사실 한국문화에서도 "언제 시간 되면 밥 한 번 먹자", "또는 "우리 언제 밥 먹어요?" 라는 표현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깟 밥이 뭐 그리 대수냐며 비아냥거리고 이 식사문화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받은 이 저자 또한 같이 밥을 먹는 것이 낯선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 강조한다. 더불에 '식사'에서 중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이라기 보다 그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나 상호교류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저녁을 너다섯시간 동안 먹는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그만큼 많이 먹기도 하지만(거대한 저녁식사의 끝은 소화가 잘 되는 독한 술이며 그 다음 날은 에스프레소 한 잔이 아침식사의 전부이다) 전날 저녁에 벌어졌던 축구경기부터 시작해서 역사와 문화, 정치 등 온갖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같이 밥을 먹다보면 다른 인종, 다른 지역, 다른 종교, 다른 가치관, 그리고 이 모든 '다른 다른 다른' 것들이 자연스럽게 교환되고 이해가 된다. 인정까지는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아, 이 사람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나와는 다르구나'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그러면서 나의 다름도 나이스하게 풀어놓는 장이 바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식사를 하면서 싸우고자 작정한 이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배가 차오르는 만족감 속에서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관용을 베풀게 되고 결국은 같은 동포로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피조물에게 동정심울 품게 되지 않을까? 문을 닫고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있으면서 소위 '같은 팀끼리만' 식사를 하고 다른 특질을 가진 팀과 식사초대를 하지 않으면 갈등의 크레바스는 더욱 깊어지게 될 것이다. 출신, 믿음, 교육, 직업, 성격, 가치관, 정치의식 이 모든 것이 다를지라도 같이 식사하고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카톨릭 성찬식이 소외와 고립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우리들에게 치유와 위안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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