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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1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저자는 무신론자를 향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토픽인 '종교'에 대해서 저자 특유의 재치와 통찰력으로 많은 이야기(상당히 민감할 수도 있는)를 던진다. 나는 종교가 있다. 그런데 딜레마에 빠져 있다. 내가 종교를 선택했다기 보다는 주변 환경이 그 종교로 하여금 나를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종교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해야되나 싶었다. 조금 머리가 굵어져서는 그저 그 곳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되었다. '교리'란 것을 제대로 배워보지는 않았다. 쉽게 말해 '왔다 갔다 했다'. 성인이 되어 소위 '세속'에 맛들이고 교리에 나오는 이야기가 황당하기 그지 없이 느껴져서 비웃듯 피해 다녔다. 하지만 내 가족들이 거의 같은 종교이다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다시 그 공동체를 기웃거리게 되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생각하니 다른 곳보다는 그래도 내가 계속 주위를 서성거렸던 그 종교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아서 지금은 돌아온 탕아처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하지만 '교리'상으로는 나 역시 저자가 일컫는 무신론자와 비교하여 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신론자보다는 오히려 종교에 발은 담궜으나 종교가 정의하고 강제하는 여러 개념과 제도에 대해 완전하게 동의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종교의 좋은 점을 세속의 입장에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교리 때문에 깊숙이 몰입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다. 나는 카톨릭이지만 무신론적 습성도 있다. 계몽주의 추종자인 것도 같다. 인간의 이성, 진보, 낙관, 자신감, 의지 등의 덕목을 좋아한다. 가난 또한 주님의 뜻이라는 둥 각종 사고가 결국 주님의 큰 계획 속에 있는 것이므로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분개한다. 인간에게도 분명 개선의 의지가 있고 계획이 있고 성취에 대한 동력이 있다.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면 우리는 무슨 이유로 무슨 낙으로 사는가? 이 역시 내가 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와 무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성경은 상징의 집합체인 것을 글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안 되기에. 그렇다고 모든 신자가 성직자분들처럼 완벽하게 이해하고 알아서 신자가 되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종교적 극단주의 말고는 무신론밖에 없다는 이분법에서 살짝만 벗어나서 종교인들에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허용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는 그저 주일을 지키는 게 좋아서, 누구는 공동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게 좋아서, 누구는 정말 성령을 받아서, 누구는 정말 성경말씀에 감화되어, 누구는 진정 예수님을 닮고 싶어서... 저자도 인정하듯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고 해서 어떤 개념을 통째로 버릴 필요는 없다. 즉 "목욕통의 물을 버린답시고 그 속의 아이까지 내버리는 오류(p.334, 역자후기)를 범하기에는 종교가 현대사회에 빛과 소금이 될 자산이 많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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