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외전:유준&진세 이야기(2/2)

 

굳이, 글로

 

청혼 이야기
외전:유준&진세 이야기

​(2/2)

 

 

 

시간은 멈추지도 않고 흘러 어느덧 유준과 진세가 알고 지낸 지 1년이 지난-한국에 돌아온 후 반년이 지난- 여름.
유준은 진세의 연락을 받고 인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진세는 유준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항상 이랬다. 늦는 법이 없었다. 유준은 손을 흔들며 진세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여, 진세, 살 빠진 거 같다?”

 

“피이, 며칠 전에도 봤으면서.”

 

“오, 이 옷 뭐야. 못 보던 건데? 예쁘다. 잘 어울려.”

 


진세는 유준의 칭찬에 순간 얼굴을 붉혔다. 심장이 뛰었다. 눈치도 없게, 유준이 알이챌까봐 걱정될 정도로 뛰었다. 하지만 진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메뉴판을 내밀었다.

 


“...크흠. 오늘은 내가 살 거야. 골라.”

 

“비싼 거 시킨다?”

 

“그, 그래, 그럼. 시키던지.”

 

“풋.”

 

“왜!! 뭐가 웃겨?!!”

 

“아냐, 아냐. 크큭... 난 이걸로. 너는?”

 


생각해 보면, 진세는 그날따라 거의 하지 않던 화장도 하고, 평소 때 캐주얼하게 입던 의상도 바꾸고, 헤어스타일도, 악세서리도, 무엇 하나 평소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날따라 유준은 진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진세를 똑바로 보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서, 자기도 모르게 좋아한다고 무드없이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이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쁜 진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진세도 안 하던 화장도 하고, 한껏 차려입고 유준을 만나러 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세는 여름인데도 설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묘함 속에서 조금 어색했던 식사 후, 그들은 카페로 향했다.

 


“여기도 내가 살게.”

 

“오늘 이진세 돈 좀 쓰는데? 무슨 날이야?”

 

“...응. 중요한 날이야.”

 


진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공기마저 설레고 간지러웠다.
유준은 그런 진세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얼굴이 뜨거워지자 괜히 헛기침을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료와 케잌이 나왔다. 하지만 진세는 음료를 휘휘 젓기만 하고 도통 마시지를 않았다. 그건 케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두근거려서, 속이 울렁거려서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유준은 그런 진세가 의아했다. 이러지 않았는데.

 


“무슨 일 있어? 잘 먹질 않네.”

 

“오빠.”

 


그 때,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진세의 단호한 눈빛이 유준을 똑바로 향했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시선에 눈을 마주하면서도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진세는 늘 이랬다.
뭔가 결심이 서면 바로 말해버리는 타입이었고, 말하기 전에는 항상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상대를 빤히 바라봤었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결심과 시선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나이가 서른이 되어 가는 와중에 이런 감정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진세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오빠.”

 

“...어, 말해.”

 


진세의 볼에 홍조가 눈에 띄게 번지고 있었다.

 


“좋아해요!!!”

 


유준은 하마터면 마시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 저 한 마디는 자신이 줄곧 진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데 오히려 진세에게 그 말을 듣다니. 이건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실은, 꿈 따위가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진세는 귀까지 붉어졌으면서도 유준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쿵쾅거리며 요란스레 뛰는 심장에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유준도 마찬가지였다. 진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목까지 붉어진 채 진세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 후, 유준의 입이 열렸다.

 


“좋아해.”

 


진세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꿈같아서, 확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이라도 좋을 정도로 간지럽게 다가오는 유준의 그 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기대에 부응하듯,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이제는 마음을 표현하는 걸 숨기고 참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꿈 따위가 아니라는 게 좋았다.

 


“좋아해, 진세야.”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진세야. 좋아해.”

 


어느새 둘은 테이블 위에서 손을 맞잡고 있었다.
유준도 진세도, 벅차도록 설레는 마음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둘은 이미 많이 닮아 있었다. 미소도, 마음도, 서로를 바라보면 느껴지는 간지러운 그 기분마저도.


조금은 더운 기운이 남아 있는 늦여름이었다.
유준에게는 스물 아홉의 늦여름.
진세에게는 스물 넷의 늦여름.
같으면서도 다른 시간 속에 그들은 함께 존재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정말- 세지 씨랑 정하 오빠 결혼식 진짜 예뻤어.”

 

“그렇지?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해지더라니까.”

 


어느새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도 3개월 전의 일이 되었다.


유준과 진세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 날 찍은 사진들과, 얼마 전 정하에게서 받은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진세가 커피를 마시는 유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부러워.”

 


갑작스런 진세의 말에 유준은 사진에게서 진서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유준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황급히 다시 사진을 쳐다보믄 진세. 유준은 그런 진세의 옆얼굴이 귀여운 듯, 피식, 웃어 버린다.

 

 

 

 

그새 더워진 날씨에 긴 머리카락을 올려묶은 진세의 목선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린 잔머리가 가만히 유준의 눈에 담겼다.

 


“뭐가 부러워, 결혼식?”

 

“으응, 그것도 그렇고, 그냥 다 부러워.”

 

 

 

 

“세지 씨도, 정하 오빠도, 정식으로 사귄 건 5년이라고 했지만 그 전에 알고 지낸 시간까지 합치면 7년이나 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은 게 신기하고 부러워.”

 


꿈꾸는 소녀처럼 발그레한 표정으로 말하는 진세. 유준은 진세를 빤히 바라본다.

 

유준은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 이후, 진세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진세의 말처럼 그 둘의 결혼식에 감명을 받은 건지는 몰라도, 최근에는 진세를 쳐다보면 자꾸만 그 날의 기억에서 세지와 정하가 아닌, 자신과 진세가 주인공인 결혼식을 떠올리곤 했다.

 

 

 

 

유준이 팔을 뻗어 귀까지 붉어진 채 괜히 사진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진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진세의 괜한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우리도 그러면 되지.”

 

“...응.”

 


진세의 볼에 번진 홍조가 짙어지면, 유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그려진다.

 

 

 


“우리도 이제, 결혼하자.”

 

“응... 응?!!”

 


갑작스러운 유준의 결혼하자는 말에 멍하니 대답하던 진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유준을 바라봤다. 품 안에서 고개를 드니 유준의 얼굴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짖궂은 미소를 띈 유준에 짧게 숨을 들이키고 고개를 내리는 진세. 유준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끅끅거리며 웃는다.

 

 

 

 

유준은 진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짧게 입맞춤을 한 후 다시, 진세를 조금 더 꼭 끌어안고 고백했다.

 


“결혼, 하자, 우리도.”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유준에게는 진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준의 시선이 닿아 있는 진세의 목이 조금 붉어졌고, 자신에게 기댄 진세의 몸에서 두근거림이 느껴졌으니까. 아, 후자는 진세가 아니라 자신의 설레임일지도 모른다, 고 유준은 잠깐 생각했다.

 


“오빠. 난 오빠가 좋아.”

 


진세가 뜬금없이 고백을 해 왔다.

 

 

 

 

유준은 말없이 옅게 웃었다.

 


“나도 네가 좋아.”

 

 

 


카페 창가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여름 햇살과 시원한 카페 안의 공기 사이에서 두 사람의 미소가 잔잔하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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