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세지 이야기

 

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

세지 이야기

 

 

 

한 카페 앞 거리,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본다. 여자는 전체적으로 성숙한 스타일이었지만, 표정만큼은 처음 사랑에 빠진 그 날처럼 수줍어 보였다.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럽히고, 살짝 눈을 감았다 뜬 여자는 바로 앞 카페로 들어선다.

 

 

딸랑-

 

“어서 오세요.”

 

“네, 으음...”

 

“어, 윤세지, 여기야, 여기!!”

 

 

카운터로 걸어가며 두리번거리는 여자를 향해,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여자가 반가운 얼굴로 손짓한다. 여자, 세지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음료를 시키고 그녀들이 앉은 테이블로 향한다.

 

 

“유현아, 지예야, 오랜만이야. 요즘 자주 못 봤지.”

 

“알긴 아는구나.”

 

“그보다 세지야, 준비는 잘 돼 가?”

 

 

여자의 인사에 퉁명스레 대답라는 보이쉬한 단발머리의 유현.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는 듯, 동그란 눈을 빛내는 귀여운 인상의 지예.

세지는 유현의 반응에도 마냥 기분이 좋은 듯 웃고만 있다가, 지예의 질문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손바닥만한 하얀 종이를 꺼내 테이블에 놓는다.

 

 

“오? 청첩장 나온 거야?”

 

“응, 어제 뽑았어. 예쁘지? 예쁘지?”

 

“우와, 예뻐, 세지야.”

 

 

지예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세지가 내민 청첩장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청첩장은 수수한 듯 하면서 고급스러워 보였다.

앞면에는 금색과 은색이 뒤섞인 듯한 오묘한 빛깔로

 

신랑 한정하

신부 윤세지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글귀가, 뒷면에는 결혼식 시간, 장소 등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음? 여긴 어디야? 위치가 주택가 같은데. 너네 신혼집?”

 

 

유현은 청첩장을 살펴보다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한 듯, 청첩장 뒷면 ‘장소’ 란을 가리키며 세지를 쳐다봤다. ‘장소’ 란에는 예식장 이름이 아닌 왠 사택 주소가 적혀 있었다.

 

 

“오빠 본가. 주택인데 마당이 좀 큰가 봐. 거기서 간단하게 식 하려고.”

 

 

세지의 설명에 유현과 같이 옆에서 얘기를 듣던 지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여자는 한동안 청첩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세지는 친구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들떠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고, 친구들도 세지의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가만히 청첩장을 들여다보던 유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세지 네가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어, 유현이 분위기 잡는다.”

 

“그래. 기회 흔치 않으니까 잘 들어. 어쨌든, 나는 좋은 사람은 다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에 참 좋은 사람인 네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앞으로 더 행복하길 바래.”

 

 

세지는 조금 놀란 듯 했다. 그도 그럴 게, 원체 시크한 성격의 유현에게서 다정한 말을 듣리간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복하길 바랬다’니. 그런 말을 유현에게 들으니 더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유현아. 나 진짜 행복해. 정말 고마워.”

 

“응... 그래. 크흠.”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유현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세지는 왠지 마음이 아릿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자신의 행복을 인정받는 순간 그 행복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다가와서 눈가가 찡했다.

 

 

“...세지, 울어? 울지 마...”

 

“뭐야. 감동받았냐?”

 

“...고마워, 유현아, 지예야. 둘 다, 너무 고마워.”

 

 

기분 좋은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릿했다.

세지는 생각했다.

 

정말, 자신은 눈물겹게 행복한 존재라고.

 

-

 

“그럼 나 먼저 가볼게. 너희도 조심히 들어가.”

 

“응, 다음에 봐. 유현아.”

 

 

카페를 나선 후, 세지와 지예는 택시를 타야 하는 유현을 먼저 보내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지예는 문득, 세지의 연애담이 궁금해졌다. 지예는 세지를 안 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직업 특성상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많아 그런 얘기를 자주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세지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그 사람과, 둘의 이야기가.

 

 

“세지야.”

 

“응?”

 

“너 정하오빠랑 얼마나 만났어? 5년이었나?”

 

“응. 선후배로 2년, 연인으로는 5년, 도합 7년.”

 

“와, 오래 사귀었네.”

 

“응. 그래도 너무 좋아. 보면 볼수록 좋아.”

 

 

지예는 세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항상 이랬다. 정하오빠를 얘기하는 세지의 표정과 목소리는 항상 같았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사랑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설레임 가득한 얼굴. 꿈꾸는 소녀같은 표정.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누가 먼저 좋아했어?

 

“음, 오빠가 조금 먼저 좋아한 거 같기도 하고... 동시에 좋아하게 된 거 같아. 깨달은 건 좀 뒤였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좋아했어. 몰랐던 거지.”

 

 

 

 

“오빠도 그랬어.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대화를 해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많이 헷갈렸다고. 그런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아마, 서로 첫눈에 반한 게 아닐까 싶어.”

 

“동화같네. 정말 멋지다. 첫만남, 기억나?”

 

“그럼. 어제 일처럼 생생해. 우리는 캠퍼스 내 카페에서 처음 만났었어.”

 

 

세지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그냥 상상해도 얼마든지, 몇 번이고 되새길 수 있었지만,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게 좋아서 눈을 감고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어학연수를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고, 오빠는 막 제대하고 학교에 다시 적응하려는 쑥맥 복학생이었어. 사실 첫만남이 그렇게 동화같진 않았어. 우리는 각자 현실을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오빠는 아메리카노 하나 시키고 창가 자리를 차지하더니 한동안 카페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사람이 적은 틈을 타 카페 청소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오빠가 날 부르는 거야. 왜 그러나 했더니, 내가 실수로 떨어진 오빠 모자를 밟고 있더라고."

 

 

세지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난 너무 놀라서 사과를 했고 오빠는 괜찮다며 사람 좋게 웃었는데, 모자 없이 훤히 드러난 그 짧은 머리카락이 너무 귀여운 거야.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좋아한 거 같아. 그냥 눈치를 못 챘었던 거야.”

 

 

 

 

“그리고 뭐, 그 뒤는 뻔해. 난 마침 강의 시간이 돼서 우선 번호를 주고 나왔지. 그 후로 연락하고, 밥 사겠다고 만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그리고 3년째 되는 해에 오빠가 빗속에서 고백했을 때, 벅차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구. 바로 승낙하고 많이 울었어. 정말 너무 기뻤거든. 정말... 기뻤어.”

 

 

 

 

[이번 역은 ㅇㅇ역, ㅇㅇ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그냥 그럴게 된 거야. 그럼 나 먼저 갈게, 지예야.”

 

“아, 응. 다시 한 번 축하해, 세지야. 결혼식 날 봐.”

 

 

세지는 거듭되는 지예의 축하에 웃어보인 후 지하철에서 내렸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세지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

 

1달 후.

 

한 주택 마당에서 진행된 조촐한 결혼식.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세지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정하가 작은 단상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정하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목까지 붉어져 있었다.

 

 

“아- 두 사람 눈빛이 너무 뜨겁네요. 그럼 뭐, 다 건너뛰고 뽀뽀로 끝냅시다.”

 

“뭐?!!”

 

“ 키스는 너무 야해 보이잖아. 그럼 신랑 신부, 뽀뽀 가겠습니다.”

 

 

짖궂은 사회자의 말에 세지와 정하는 새빨개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내 세지가 먼저 정하의 앞으로 다가가 까치발을 들고, 그런 세지의 모습에 터질 듯한 얼굴을 한 정하가 조심스레 세지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춘다.

 

그 순간 하객으로 온 친구들이 준비한 폭죽이 터지고 노을 아래 반짝이와 꽃가루가 휘날린다. 그 절경 속에서 정하가 세지를 안아들고, 세지는 정하를 붙잡고 까르르, 아이처럼 웃는다. 누가 틀었는지 잔잔한 음악이 깔렸지만 세지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7년간의 긴 시간을 함께 해준 그대에게,

앞으로의 평생을 함께 해줄 그대에게,

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윤세지 드림.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
나비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나비 2016. 08/16

잘보고가요 설레는 내용이 가득하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