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글

햇살 아래서, 끝

 

 

눈을 떴다.

햇살은 눈부실 만큼 찬란해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둘러보니 중학교 때까지 살았던 집 안방이었다. 가구, 방 구조까지 완벽했다. 부엌을 살짝 보니 엄마와 동생이 싱크대 앞에서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섰다. 부엌으로 곧장 향하려는데 거실 소파에 누군가 있었다. 왠지 속상해 보이는 아빠가.

 

소파로 다가가자 아빠가 나를 올려다봤다.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은 이내 기운 없는 미소로 바뀌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음, 표정이 안 좋은데? 아빠도 나이가 많이 들었나?“

 

"......그러게.“

 

 

대답에 뜸을 들이는 아빠가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래, 나도 이제 대학생이고 아빠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조금 씁쓸했다. 시간은 정말 쉬지도 않는구나.

 

 

"아, 엄마랑 안이 부엌에 있죠? 그쪽에 가 볼게요.“

 

"...그래.“

 

 

아빠는 내가 등을 반쯤 돌리자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와 동생은 내가 부엌에 온 줄 모르는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안아!!! 여기서 뭐해? 응?“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시선도 없었다. 이상했다. 계속 말을 걸어 봐도 결국 혼자만의 독백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동생의 이야기도 나에게는 물에 잠긴 듯 웅웅거렸다.

 

거실로 돌아왔다. 아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그 모습에 본질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다시 아빠 앞에 서자 아빠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아까보다 훨씬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딸.“

 

"...아빠. 엄마가, 안이가 내 말이 안 들리나 봐요.“

 

"...딸, 영아.“

 

"대답도 없어요, 그 둘 목소리도 안 들려요. 이상해요.“

 

 

이거 봐, 아빠는 날 볼 수 있잖아. 아빠는 날 보잖아. 아빠 목소리는 들린단 말이야. 엄마랑 동생이 이상한 거야.

 

머릿속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말이 소용돌이친다.

 

그럴 리가 없어.

 

그 때, 아빠의 눈빛이 흔들렸다. 왠지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괜스레 입술을 꽉 물게 되고, 코가 찡해졌다. 눈물이 차오르는지 눈앞이 흐려졌다.

 

 

"딸, 우리 딸...“

 

"......“

 

"아빠가, 정말 많이... 늙었나 보다.“

 

"......“

 

"...나이가 드니까... 눈물이, 많이 나더라...“

 

 

힘없는 그 눈빛과 말을 끝으로 아빠는 고개를 떨구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말문이 턱 막혔다. 어릴 때보다 아빠가 많이 유해지셨구나 싶긴 했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이렇게 초라하고, 약하고, 금방이라도 꺾일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무언가 뒤에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위협적인 느낌. 그 느낌이 닿기 직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깜빡, 찰나의 어둠이 지나갔다.

 

 

어두웠고, 넓었다. 나는 들판같은 곳 한가운데 서 있었고, 들판 끝에는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강은 빛났고, 사람들이 강 근처에 몰려 있었다.

나도 홀린 듯 강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들 슬퍼 보였다.

 

사람들은 나무로 된 작은 돛단배 위에 누군가의 유골함과 편지, 그 사람의 물건 등을 놓고 불을 붙인 채 떠내려 보냈다. 그걸 보고 강이 빛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진정해.“

 

"엄마...“

 

 

뒤를 보니 아빠, 엄마, 동생이 있었다. 아빠의 손에는 나무 돛단배가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처럼 유골함과 작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숨도 못 쉴 듯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돛단배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유골함.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했다. 설마. 에이, 설마. 나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안 되잖아.

 

이건, 아니잖아.

 

가족들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셋 다 나를 보지 못한 듯 지나쳤다. 흘깃, 하는 시선조차 없었다.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고 작은 돛단배를 부여잡는 와중에도 나를 그냥 지나쳤다.

 

 

"엄마, 아빠...!!! 안아!!!“

 

 

불러도 대답도 눈길도 주지 않고 셋은 강가로 향했다. 한참 돛단배를 보며 울고 뭐라고 안타까운 말을 뱉다가, 불을 붙이고 떠내려 보내더라. 내가 없는 셋은 그렇게 슬퍼하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뒷걸음질을 치자 장판같은 바닥이 밟혔다. 이번에는 온통 하얀 벽 가운데 검은 띠가 둘러진 영정사진이 놓인 제단이 보였다. 거리가 조금 멀어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누굴까. 설마, 나일까? 아니겠지?

나는 이렇게, 살아 있는데.

 

그런데 눈에 띈 방이 있었다. 벽 사이에 감춰진 듯 존재하는 문 하나. 안은 조금 긴 복도형이었고, 그 끝 벽에는 작은 제단이 있었다. 그 방에 있으니 간혹,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유달리 슬퍼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못다한 말을 전하며 울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울고 악을 써도 그 사람들에게도 들리지 않는가 보다. 무슨 일인지 더 생각해 보는 것도 포기하고 싶었다.

 

몇 명이 들어왔다 나갔을까, 구석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는데, 거의 인생의 전부인 친구가 들어왔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이 사람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친구는 발개진 눈가를 비비며 제단 앞으로 걸어왔고, 나는 무심코 말을 건넸다.

 

 

"...많이 울었어...?“

 

 

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에 친구가 잠깐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시선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마주했다.

심장이 쿵쿵, 몸이 아플 정도로 뛰는 느낌이었다.

 

 

"...너, 너... 너...!!!“

 

 

친구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삽시간에 친구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뚝뚝,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에서 이내 주륵주륵.

 

팔을 들어 무작정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움직일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친구는 울면서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 끌어안았다. 나를 토닥이며 친구도 점점 크게 울었다.

 

찾았다. 내가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그 사실이 서럽고도 기뻤다.

 

 

"너 왜...!!! 말도 없이, 그렇게...!!! 왜 간 거야...“

 

"......나, 나는...“

 

 

친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소리쳤다. 말은 눈물에 묻혀 나오지 않고 맴돌았다.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몰라.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있잖아,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아. 연애도 못 해 보고, 동생 대학 가는 것도 못 보고, 월급으로 부모님 선물 사드린 적도 없어. 장학금도 못 받아 봤고, 학비 때문에 아빠가 고생하셨는데, 생활비를 스스로 번 적도 없어. 나이만 늘어가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나는 어째서, 왜, 나도 모르는 새 이런 꼴이 돼 있는 거야...? 누구라도 좋으니까, 대답 좀 해 줘. 왜 내가... 왜.'

 

 

그렇게 친구의 품에서 속으로라도 후회와 원망을 쏟고 나니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있고 싶어. 못다한 얘기를 하면서, 나를 봐주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다시, 살고 싶어.

 

 

"...어...“

 

 

어느 정도 눈물이 멎고 마음이 진정됐을 때쯤, 친구의 품을 밀어냈다. 눈물을 닦고 앞을 보니 친구도, 하얀 방도, 제단도 없었다. 어두웠다. 또다시 환영처럼 사라진 공간에 의아해할 새도 없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들 검은 복장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강한 느낌이 왔다.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이런 게 직감이라는 걸까. 씁쓸했다. 사람들 틈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다같이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어두운 공간 어딘가에서 불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 듯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 앞에는 검은 철문이 하나 있었고 철문에는 유리로 막힌 창문이 있었다. 창문 너머에는 검은색 관이 있었다.

내... 관일까.

관 밑에는 발간 불판같은 게 놓여 있었다. 살면서 화장하는 건 한 번을 못 봤고, 그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현실감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영아.“

 

 

목소리가 들리는 뒤로 돌자 아빠, 엄마, 동생이 있었다. 사람들 중 가장 앞에. 다들 눈가가 붉었다.

 

아아, 내게도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나한테도 중요한 사람이 있었듯 나도 누군가에게는 참 중요한 사람이었구나.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아왔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잔잔해졌다.

 

후련했다. 다 끝났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시 작은 창문 너머를 봤다. 불은 아까보다 훨씬 빨갛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숫자를 거꾸로 셌다.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불길이 화르륵, 관을 집어삼킬 듯 타올랐다.

 

끝났다. 정말 끝났다.

이제, 영원히 사라질 거야.

 

순간 집어삼켜지는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안녕.

 

 

-

 

 

눈을 떴다. 햇살이 찬란했다. 몸을 조금 움직이니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온 몸이 무언가로 둘러싸여 있었다.

 

부스럭-

 

몸을 둘러싼 무언가를 휙 걷어냈다. 익숙한 방이 보였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화창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에 손을 들어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을 뻗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온몸을 쓰다듬었다. 눈을 떴는데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때, 고인 줄도 몰랐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 으윽..."

 

 

그렇게 소리도 없이 한참을 울었다.

 

너무 생생하고 또렷했는데 그게 다 꿈이라니. 오히려 살아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 정말 끝이다. 초봄의 꿈은 그렇게, 끝났다.

봄바람은 따스했고 봄햇살은 찬란했으며, 이불에 번지는 눈물은 투명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실려온 꽃향기는 현실감도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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