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는 시나브로

에필로그

 

발을 디디고 있어도 디딘 것 같지 않은 온통 하얀 공간에서 한제가 웃는다.

 

 

‘한제, 한제야.’

 

‘...아.’

 

 

덧없이도 새하얗게.

 

 

‘엄마!!!’

 

 

새하얀 한제가 나를 향해 웃는다. 아니,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그리곤 달려와 안긴다. 어느새 옆에 있는 여자에게.

 

 

‘보고 싶었어요.’

 

‘...그래. 엄마도 그래, 한제야. 그래도 넌, 아프지는 말지 그랬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떨구는 옆모습이 보인다.

...한제의 어머니다. 언젠가 한제 방 사진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다. 이것도 내 ‘허상’일까.

 

한동안 서로를 꼭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한제가 즐거운 듯 얘기한다.

 

 

‘엄마, 선생님이에요. 엄마같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래 알고 있어. 자주 얘기했었잖니. ...정말 감사합니다.’

 

 

한제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다. 마음이 새하얗다.

 

 

‘그리고 죄송해요... 남편 때문에 괴로웠죠?’

 

‘......아.’

 

‘그 사람, 저한테도 그랬었어요. 제가 병으로 죽는 순간도, 죽은 후에도, 절 쉽게 보내주질 않았죠.’

 

‘......’

 

‘이렇게... 만나게 된 이상 죄송하다는 말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죄송해요.’

 

 

이 사람은 아직 남편이 그립고 애틋한 걸까. 아니면 원망에 찬 걸까. 담담한 어투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여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까.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한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한제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감사하고 죄송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곤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한제를 향해 웃는데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눈물이 발등에 닿았고, 어딘가 낯선 곳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바빠 보였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 듯, 스쳐지나갔다.

 

 

‘...아아.’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홀린 듯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축 늘어진 어깨로 앉아있는 한제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 앞 침대에는 누군가 누워 있었다. 여자가, 내가 누워 있었다. 몸에는 많은 장비가 연결돼 있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숨만 쉬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살아 있지만 실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의문이 생겼다.

 

완전히 죽지 않았는데도 영혼이 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완전히 죽지 않았기에 영혼이면서도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 기억을 찾은 지금은? 사라져가는 나는? 완전히 죽어 버리는 걸까, 아니면... 아니면...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환상이 끝났다.

시브는 눈을 떴다. 몸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미소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나로 님.”

 

“......”

 

“이 다음이 궁금해요. 나로 님은... 알고 있나요?”

 

“......”

 

“...저는, 살아나는 걸까요? 아니면 이대로... 완전히...”

 

 

시브의 시선은 더 이상 처연하지 않았다. 나로는 언제나와 같이 짙푸른 무심함으로 대답했다.

 

 

“...글쎄. 내가 알 턱이 있나.”

 

“...그래요.”

 

 

눈가가 눈물로 얼룩진 시브가 웃었다.

다음 순간, '사신'이 된 이래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시브의 마지막 미소까지도 흩날리듯 사라졌다.

정말 보고 싶었던 한제의 곁에서, 시브는 그렇게 사라졌다.

 

붉디붉은 그녀의 장미꽃만을 자리에 남긴 채.

 

 

시브가 사라진 곳을 한동안 쳐다보던 나로는 미소짓고 걸음을 옮겼다. 창가에 기대서자 바람이 불어왔다. 나로는 순식간에 바람을 따라 깃털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숨도 없는 한제만 남은 공간은 고요했다. 사신의 눈물과 감정의 한숨이 지나간 자리는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끼이-

 

"...한제. 자니?“

 

 

방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가 들어선다. 열린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남자는 침대로 다가와 한제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잠이 든 줄 알았는지 두런두런 짧은 말을 내뱉다, 이내 뭔가 이상하단 걸 알아차린 건지 안색이 변한다. 하지만 큰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이내 고요하게 무너졌고, 소리 없이 떨리는 등만이 남았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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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어요.... ㅠ_ㅠ 영이님 다음 소설도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