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는 시나브로

#09

 

쾅쾅쾅-

 

여자는 휘청거렸다. 등 뒤에서 현관문이 부서질 듯 울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없어서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여자는 변변히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아는 사람이라 해도, 말도 없이 남의 집 문을 저렇게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사람이라면 겁이 나서 들여보내주지 못할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 주세요.’

 

 

흐릿하지만 분명했다. 여자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웅웅 돌기 시작했고,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어졌다.

 

 

쿵쿵- 쾅쾅쾅쾅-

 

‘집에 계시죠...? 선생님!!’

 

 

여자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뒷걸음질쳤다. 애써 청소한 방이 엉망이 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망갈 곳이 없다면 창 밖으로라도 뛰어내리고 싶었다.

 

 

여자는 깨달았다. 한제의 미소에 젖은 채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여자는 이미 충분히 슬프고 비참하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 이 느낌이 너무도 싫었다. 자상함 뒤에 감춰 두고 조금씩 꺼내 온 '그'의 집착이 버거웠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버린 검은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죽고 싶다.

 

 

‘선생님, 집에 계시죠?!! 문 좀... 저 좀 봐 주세요...!!!’

 

쾅쾅쾅쾅-

 

 

지긋지긋하다.

 

세상에는 분명 여자보다 더한 아픔을 가진 사람도 많을 거다. 훨씬 어두운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도 많을 거다. 여자가 ‘내가 제일 힘들다.’고 해봤자 다들 코웃음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여자는 괴로웠다.

 

원하지 않는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 때문에 유일한 ‘친구’도, 좋은 ‘일자리’도, 여자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환경을, 잃었다. 원래 여자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뺏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잔상과 트라우마만 곁에 남아 끊임없이 여자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게 여자는 너무 싫었다. 죽어서 이 불안감이 사라진다면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자신은 없었지만, 버티기에도 여자는 나약했으니까. 오히려 죽으면 적어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듯 괴롭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그래요, 그러면...’

 

 

그 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공기를 찢을 듯 큰 소리가 방을 울렸다. 마치, 그래, 여자가 ‘잡혀가던’ 날 밤, 검은 남자들이 문고리를 부수기 위해 내려치는 소리 같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 안쪽 문고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게 아니라 진짜였다. 진짜 문고리를 부수려 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미쳤어. 정말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 죽고 싶어. 죽으면 끝날까.

 

콰앙- 쨍그랑-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문고리가 심하게 흔들린다.

잠깐 경보음이 울렸지만 이내 경보음 시스템마저 망가진 듯, 소리가 끊겼다.

 

 

-죽어버리자.

머릿속에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

 

 

한제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아빠...?“

 

 

눈앞이 흐릿하고 금방이라도 엎어질 듯 휘청거렸다. 자신의 몸인데도 자신의 몸 같지 않았다. 위험했다. 한제는 집을 돌며 아버지를 찾았지만, 아버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끼이-

 

어머니의 방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서재에도, 창고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 사람의 출입이 드물어 항상 가지런했던 현관만이 어질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나간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주 급하게.

 

 

"...후, 쿨럭, 쿨럭...!!!“

 

 

기침이 심해졌다. 겨우 방으로 돌아온 한제는 그대로 아무렇게나 침대에 드러누웠다. 눕는 것마저 고역이었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차갑게 정리되는 듯했다.

 

한제는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그 행위가 기침 소리까지 감춰 주지는 않았다.

이미 꽤 지난 일이지만 10일 정도나 연이어 안 하던 외출을 하고 하루종일 밖에 있기까지 한 데다가 그 중 3일은 먼지가 가득한 여자의 집을 오갔으니, 몸이 급격히 악화된 데 대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한숨을 쉬다가도 심장이 조이고 아플 정도로 기침이 나왔다.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심장을 막아도 고통은 지치지도 않고 몸 안쪽을 찔러댔다.

 

 

"쿨럭, 쿨럭, 커헉...!!!“

 

 

기침을 반복하던 한제의 입에서 검붉은 것이 튀어나왔다. 손바닥에 남은 붉은 흔적은 한제의 시야에도 들어왔고, 한제는 미소인지 실소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몸 안이 이렇게 아픈데, 겉으로 아프다는 증거조차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제는 침대 옆 장식장에 놓인 휴지를 뽑아들어 손과 입을 닦았다. 아직 잔기침은 남아 있었다. 심장도 여전히 조였다.

 

 

핏방울이 조금, 이불과 티셔츠에도 튀었나 보다. 연한 아이보리색 이불과 흰색 티셔츠에 아주 작지만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섣불리 닦으려고 시도했다가 번지기만 할 걸 알기에 한제는 작은 한숨과 함께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침대 옆에 놓인 쓰레기통 안에는 휴지뭉치 몇 개뿐이었지만, 모두 선혈이 묻은 채였다.

 

 

얼마 전, 형, 한영이 퇴원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완전 정신이 나간 채로 불철주야 한영의 곁을 지켰다. 한영이 깬 후, 아버지는 한영의 두 손을 붙잡고 많이 울었다.

...그랬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들은 정보였다. 한제는 아버지가 한영의 곁을 지키는 동안 대부분 선생님의 곁을 지켰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했다. 속이 쓰렸다.

 

가족보다 여자가 우선인 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핑계지만, 걱정되는 마음만으로 아버지와 형 사이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이미 아버지의 다른 표정이 너무나도 두려운 기억으로 남았고, 형의 참담한 표정도 자꾸만 맴돌았다.

 

 

한영이 퇴원한 후에도 아버지는 패닉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한제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어머니가 쓰셨던-일정 주기마다 청소를 하고 항상 깨끗하게 보존해오고 있었다- 방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었다.

 

방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몰랐지만, 가끔 비틀거리며 부엌을 오가는 어렴풋한 그 모습은, 모든 걸 달관한 사람처럼 아주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주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서재 안 '창고'의 문은 다시 잠겼다. 그 안에 더 이상 '누군가'는 없었지만 지나가다 흘깃 그 문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잔상에 몸보다 마음이 아파왔다.

 

 

"후우-“

 

 

잠시 기침이 멎은 순간, 한제는 공기를 삼켰다. 목이 조금 트이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몸을 뉘이면 잠시나마 평화로워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이때까지 계속 아픈 채였고, 병든 채였고, 언젠간 이게 심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몸이 악화된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한제는 눈을 깜빡거렸다. 느릿하게. 숨소리마저 느릿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한제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한제는 메마른 입술을 달싹여 그리운 이름을 뱉었다.

 

 

"......형.“

 

 

그리운 이름이 늘었다. 창 밖에는 가로등 불빛이 일렁였다.

 

 

"......“

 

 

한제는 잠깐 말을 멈췄다. 어느새 기침은 멈춰 있었다.

순간, 한제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누군가의 미소를 봤다. 보였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한제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피곤하다. 눈이 조금씩 감기고, 온 몸이 나른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은 깊이 잠들고 싶었다.

 

깊이, 깊이, 아주 깊이.

아주, 오래-.

 

한제의 메마른 입술이 움직였다.

 

 

"선생님...“

 

 

한제가 그녀를 부르자 기억 속의 그녀가 웃었다. 눈동자만 멈춘 채로 웃고 있었다. 한제도 웃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웃을 힘조차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다녀왔다며, 들어서는 모습이라도, 소리라도 듣고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는 한제의 눈 사이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한제는 미소지은 채 잠들었다.

 

 

-

 

 

비틀-

 

“...조심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시브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처럼 몽롱했다. 나로는 비틀거리는 시브에게 조심하라는 말만 하며 앞서가고 있었다.

시브에게는 나로의 뒷모습이 생소해서 더 현실감이 없었다.

 

이윽고 2층의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한 시브와 나로. 서로 말은 없었지만 알고 있었다. 여기였다. 시브의 기억 조각일지도 모르는 죽음이 여기 있었다.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느낌은 그랬다.

 

 

"여기야.“

 

 

나로의 말에 시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시브를 바라보는 나로의 그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온전한 하나의 감정이 아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들이.

 

'사신'이기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로는 방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방문이 스르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창가의 커튼이 흩날리고, 바깥의 가로등 불빛 끄트머리가 희미하게나마 이 2층 방까지 닿고 있었다. 나로는 방 가운데 놓인 침대 앞에 섰고 시브는 힘없이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의아했다. 아까부터 느낀 죽음을, 남자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울렁거림과 심장 고동은 다 애초에 없었던 일인 듯, 잠잠하기만 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경고'처럼.

 

 

시브는 고개를 젓고 미소지은 채 시선을 돌려 쌕쌕- 하고 가는 숨을 내쉬는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시브의 손에 들린 장미꽃이 붉게 빛났다. 이제 이 가여운 남자의 영혼은 장미꽃에 먹히겠지. 그리고 시브의 화단에는 장미꽃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지만 다음 순간, 시브의 머릿속에는 믿을 수 없는 '기억'들이 몰아쳤다. 밀려오는 기억에 시브가 휘청거리자 나로가 시브를 붙잡았다.

 

 

"...시브?“

 

"나로... 님.“

 

 

시브를 바라보던 나로의 시선이 일순 경직됐다. 시브 또한 경직된 듯 몸을 굳혔다.

시브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

 

 

빠르게 고인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눈물과 심장소리를 인지한 시브의 눈동자가 커졌다. 시브는 나로를 올려다봤다. 떨리는 시선 사이로 눈물이 덩어리져 떨어졌다.

 

시브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한제.“

 

 

떨리는 목소리가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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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얽히고 설키고... 다들 아프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