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편지

당신의 이름

 

 

 

    할아버지는 학생들의 명찰을 만들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하셨다. 아직 살이 더 붙을 기미가 보이는 녀석, 내년이면 지금보다 10cm는 자랄 듯한 녀석, 벌써부터 수염이 난다며 연신 턱을 문지르는 녀석 등등…. 헝겊에 자수로 이름을 박음질할 때면 꼭 아이들의 얼굴이 손끝에 새겨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는 것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나는 툭하면 튿어지는 체육복을 들고 '단필사'를 찾는 날이 많았고, 재봉틀 앞에서 땀을 흘리는 할아버지 옆에서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이름들을 보며 그들의 얼굴을 상상했다.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들어서며 미싱이 돌아가는 소리도, 할아버지의 사투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보며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는 버릇은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내게 달라붙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운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명함이나 브로셔를 디자인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나는 꽤나 묘한 즐거움을 가지고 생활해나갔다. 나는 내 일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마저 지니고 있었는데, 명찰이든 명함이든, 어떤 이의 이름을 고이 적어 가장 예쁜 형태로 그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일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학생 때도 갖지 못했던 꿈이라는 걸 서른이 훌쩍 넘은 뒤 품게 된 별종으로 통했다. 그 별종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적어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의 기일에 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성묘길에 '단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필사'의 '단필'이 한자로는 短筆, 즉 솜씨가 서투르고 보잘것없는 글씨라는 뜻이었다는 것. 나는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기술자였는지, 내가 그분을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가게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아버지는, 아마도 당신께서는 아무리 멋진 필체로 이름을 새긴다 하더라도 고작 1㎠ 안에 그 이름이 가진 크기와 무게를 다 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게 자신의 직업적 한계라 여기셨던 듯하다… 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1㎠가 할아버지의 세상이었고, 전부였으니까, 그 손끝에서 피어난 꽃도 맺힌 열매도 그의 모든 것이 담긴 명필名筆이었을 거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많이 쓰고 부르며 기억해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런지, 그로 인해 할아버지의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어쩌면 소설가나 시인 부럽지 않을 정도로 여행 같은 삶을 살다 가신 게 아니었을까…. 유난히 둥그런 산소 앞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적어본 사람, 그러니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꿈을 꼭 이루고 나면 그의 비석에 내 손으로 이름을 새겨드리겠노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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