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편지

성장일기

 

 

 

 

   중학교 1학년 때 쯤, 키가 멈췄다. 지금의 키는 169-170cm 정도. 그러니까, 학창 시절 나는 늘 맨 끝번호였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린 탓에,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보통의 남학생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초등학교 때는 1년에 10cm씩 쭉쭉 자라서, '이러다 내가 고목처럼 거대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성장은 생각보다 빨리 멈춰버렸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X반의 키 큰 애'였던 나의 성장 속도가 극단적으로 멎어든 것과는 상관 없이, 어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급격하게 빨라졌다. 곧 나와 다른 친구들의 신장 차이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작았던 남자아이가 훌쩍 자라 내 정수리를 보며 이야기하게 되는 상황도 생겼다.

 

  더 이상 내가 'X반의 키 큰 애'라는 수식어로 불리지 않게 되면서, 그 '성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척도를 통해 나는 사람마다 제각기 자라나는 속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물을 마시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볕을 쬐어도, 실은 모두 저마다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구나.

 

  이건 인체의 신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 삶의 진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비단 키나 몸무게 같은 것뿐만 아니라, 저마다 품고 있는 어떤 것이 폭발적으로 터뜨려지는 시기가 있다. 모두가 귀여운 종달새 같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 폭주기관차처럼 격렬한 사춘기의 시간을 보낸 친구도 있고, 학창 시절 내내 침잠해있다가 거의 서른이 다 되어서야 폭풍우 한 가운데로 들어가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애늙은이도 있는 걸 보면.

 

  그래서 누가 더 자랐고 덜 자랐나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니라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요만하다고 해서 계속 요만한 채로 인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
봄날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봄날 2017. 03/10

삶의 진리를 쉽게 표현해 주셔서 더욱 공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