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철봉을 해야 해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도 일자형으로 변형되었고 허리도 요추가 약간 디스크라고, 의사가 말했다. 오래 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무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런 거라고 했다. 어깨 활짝 피고, 허리 곧추 세우고, 다리 꼬지 말고 바르게 앉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나는 의사에게 몸의 오른편이 특히나 아프다고 했다. 목부터 허리, 심할 땐 발목까지. 의사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어깨를 펴고 두 팔을 내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의사는 내 오른 팔을 들어 살펴보더니, 이게 다 편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 오른 팔이 굽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는데 그러려니 했다. 팔을 활짝 펴야 되는 일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아니, 불편했던 적이 한번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에 배구로 시험을 볼 때였다. 토스를 할 때 팔이 펴지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공이 날아갔다. 연습해도 잘 되지 않아 성적도 B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옷 살 때 내 팔이 유독 짧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간혹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체구가 작아 팔도 그런가보다 했다.

 

의사는 도수치료와 운동을 권했다. 엑스레이를 봐도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팔이 안 펴지는 건 어릴 적 자기도 모르게 다친 이후에 팔을 안쪽으로 굽히다보니 힘줄이 짧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에 긴장을 더하고 몸의 균형이 깨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수 치료 내내 나는 고통스러웠고 평소에 아파야 했던 걸 짧은 시간에 몰아서 아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치료가 통증의 집합인가, 여길 정도로 시원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치료사는 도수 치료 후 나에게 적합한 운동으로 아령을 좌우 교대로 한쪽씩 들면서 곧게 걸으라 했다. 왼손으로 아령을 들 때는 아픈 줄 몰랐는데, 오른 손으로 아령을 들고 걸을 때는 팔꿈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내 팔 안에 탄력성 없는 고무줄 하나가 힘겹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치료사는 내 오른 팔이 치료 이후에도 완벽하게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신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면 굽어진 팔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오른 팔에 대한 스트레칭도 적절히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팔이 펴지지 않는다니.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오른 팔이, 치료사의 말을 들은 뒤로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슬프기도 했다. 어제와 같은 팔인데,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당신은 언젠가는 죽습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들었는데, 문득 내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슬픈 것처럼. 이제 오른 팔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영생을 꿈 꿨던 진시황처럼 오른 팔, 너를 펴보리라.

 

어떻게 하면 팔을 펼 수 있을까. 우선 치료사가 알려준 아령을 들고 걷는 연습을 했다. 남동생 아령 3kg를 집 안에서 좌우 교대로 들고 걸어 다녔다. 한 10분쯤 했을까, 아랫집 아줌마가 엄마 핸드폰으로 쿵쾅거린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집 근처 놀이터의 철봉이었다. 철봉에 매달린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을 테니깐. 그렇게 나는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낮에 방문한 놀이터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뛰어다녔다. 내가 놀이터로 진입하자 아이들 보호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날 흘끔 쳐다봤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한번 쳐다봤을 뿐 별 반응은 없었다. 나는 곧장 철봉 쪽으로 갔다. 내 키에 적정한 철봉 바에 매달렸다. 매달리자마자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3초, 5초 정도 짧게나마 철봉에 매달리기를 10회 했다. 매달릴 때마다 오른 팔꿈치의 힘줄 하나가 늘어나면서 팔 전체에 날카로운 통증을 남겼다. 10회를 하고 쉬고 있는데, 양쪽 손바닥도 아려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다가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손바닥이 아려서 도로 내려왔다. 팔에 근력이 없다보니 벌써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죽지 마!”

 

갑자기 등 뒤로 누가 소리치는 게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 한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한테 얘기한 건가? 그리고 아이들하고 아줌마들은 언제 사라진 거지?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학생, 죽지 마!”

 

나한테 하는 말이 맞았다. 내가 죽으려는 것처럼 보였나? 아저씨가 술을 마셨나? 뭔진 모르겠지만, 저 아저씨 이상해! 나는  아저씨가 쫓아올까봐 미친 듯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기 직전 뒤를 돌아봤지만 아저씨는 전혀 쫓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극적인 등장에 놀라,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아니, 어떤 아저씨가, 나는 죽으려는 게 아닌데, 죽지 말라고,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

 

거친 숨을 그대로 내뱉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뭔 말이냐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내 팔이 나도 모르게 구부러져서는 안 펴지는 게, 내가 죽으려는 생각이 없는데 죽으려는 절망적인 사람으로 보였다는 게 서글퍼졌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누군가 나를 꿇어앉히기라도 하듯 엄청난 무게에 눌려, 대문 앞에 그대로 앉았다.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