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 빠진 뇌 : 시간 기록

현재 좌표 : 스물다섯, 여자, 학생

시간이 지나, 아 내가 스물다섯 젊은 시절에 이런 글도 썼었지, 하며 되돌아볼 수 있기를. 이 글들은 내 타임 캡슐이다.

 

Song for A by Charlie Key (Piano) 듣고 있다.

 

가끔씩 밀려오는 감성 파도가 있다.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때마다 듣고 싶은 음악이 다르다. 현재 내 감성에 어떤 음악이 맞을까? 하고 대충 머릿속에서 듣고 싶은 소리와 음악의 공격성을 가늠한다. 그리고 '좋아요' 눌러놓은 목록에서 그 조건과 감성의 결에 들어맞는 음악을 찾는다.

 

들은 음악은 모두 기억한다. 자주 들은 음악은 세세한 배경음을 다 기억한다. 따라 부를 때 문제가 생긴다. 동시에 울리는 배경음까지 목소리로 흉내내려 하니까.

 

음악의 중간 부분부터 갑자기 기억하는 것은 잘 안된다. 노력해도 안된다. 앞부분이 기억나면 거기에 이은 뒷부분이 따라서 기억난다. 따라부르다 보면 머릿속에서 뭘 재생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린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음악은 따라부를 수 없다.

 

감성 폭발한다는 표현을 쓰지, 세상 내 혼자인 것같고 내가 살아온 과거가 슬프고 미래도 결국 죽어 없어질 것이라 슬프다. 긴 선의 한 점인 현재에 의미를 느낄 수 없다. 다른 선을 살고 있는 타인을 붙잡고 싶어진다.

 

감정이 적으면 살기 편할 것 같다. 아예 없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또 인간 문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니, 약간은 있는 편이 낫다.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굴 때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후 휙 지나가버린 적도 많았다. 의욕에 넘쳐 앞으로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제외한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도 많다. 친구가 외로워서 징징거리는 걸 귀찮아서 느리게 답하고 열심히 인강을 듣다보면 친구 일을 잊고 있다.

 

눈앞에 처한 상황을 보고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났다. 인강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배워가고 있고, 그에 따라 나와 내 현실도 바뀐다'는 것. 현실 요소(상황이든, 내 자신이든)와 관계할 때 느껴지는 파워....?랄까. 그 생기.

 

내 모든 잠재 능력을 발견하고 완전히 키우는데 집착한다. 애니 볼 때 주인공이 성장형 먼치킨인 게 좋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잠재력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천년을 산다면 느긋한 마음으로 차근히 자기 계발을 하련만.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면 내가 그것에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는지부터 생각한다. ‘그걸 시도했을 때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재능이 있으면 그 자체 때문에 흥미가 생긴다. 이 분야는 나의 어떤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길래 내가 강점을 보이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재능이 없으면 흥미를 잃는다. 그건 이번 생에선 내 역할이 아닌가봐, 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상황들은, 재능도 흥미도 없는데 상황 상 필요한 경우이다. 일단 하지말고 맴돈다. 예를 들면, 코딩 같은 것?

 

재능이 없어보이지만 흥미가 식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럼 재능을 만들어서라도 한다. 못하면 잘하게 하라.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 건 견딜 수 없다.

 

그 외 대부분의 것들에는 재능과 흥미가 일치한다.

 

한동안 그라임/위치하우스 위주로 듣다가 최근에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아냐, 그 전통 클래식이 아니라 요즘에 새로 나오는 곡들이다. 현대 이전 클래식 음악은 거의 싫어한다. 다음에 나올 음이 뻔해서 예측한대로 진행되는 게 으으싫다.

 

듣다보면 클래식 비스무리한 느낌을 주는 음악들은

뭐랄까.. 각 소리가 나오는 타이밍이 일정하지 않다. 비트에 맞춰 반복되는 게 아니라 감정 흐름에 따라 휩쓸리고, 연주자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타이밍에 뚝.. 하고 소리를 떨어뜨리는 느낌, 아니면 스치기도 하고...이걸 무작위스럽다고 불러야겠다.

 

그럼 왜 흑인 음악과 반복을 좋아하던 내 뇌는 무작위스러운 음악을 갑자기 선호하게 되었을까? 최근에 뇌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더 달콤하게 들리는 음악이 달라진 것이다.

 

몸에서 당분이 필요할 때 단게 땡기고, 또 다른 영양소가 부족할 땐 해당 맛과 음식이 땡기듯이, 뇌가 어떤 소리 패턴에 끌린다는 건.... 뭔가 이유가 없을 수없다.

 

작년에 심하게 감성적이었을 땐(2016 겨울-2017봄), 흐느적거리는 음악을 기피했다. 특히 보컬들어가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류의 음악이 별로 좋게 들리지 않았다. 거의 잘게 반복되고 실험적인 전자 음악 위주로 들었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렇게 멋진 사운드와 그 패턴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방.. 누워서.. 빛은 겨울이라 하얀 색이고..음악이 들리는 것 말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고..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은..

 

지금, 반대다. 최근 몇 주는 어느 때보다도 감정 없이 앞을 향해 나가고 있다. 감성에 잠기는 시간은 아깝다. 인생을 그런 식으로 너무 많이 낭비해서, 더 이상은 싫다. 생산적이지 않다. 감정이 무뎌진 것 같아서 참 좋았는데,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기회니까....

 

무작위스럽고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목소리를 찾고 있다 최근. 작년이랑 뒤바뀌었다.

The Dø - Dust it off 라는 보컬곡을..

나도 따라불러보고 싶다. 예쁘다..

 

슬프다..

보통은 이럴 때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가, 근데 사람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으니 생활을 지탱할 일과 목표가 필요한 거겠지, 라고 답했다.

아 맞는 말이다아아...

 

금방 죽긴 죽는데, 그 죽기까지의 기간보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줘야하고, 욕구와 욕망이 솟아나는 주기가 훠어얼씬 짧다. 오 컴퓨터에서 뭔가 밝은 느낌의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뭔가 해볼 의욕이 살아나는 듯하다.

나는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에 올려놓고 싶다는 욕구에 휘둘려 굴러가는 기계같은..그런데 달리 붙잡을 것이 없으니 이 욕구를 따라간다.

 

나는 이 글을 2017년 12월 겨울, 수요일, 런던에서 쓰고 있다. 기숙사 방에 혼자다. 한국은 눈이 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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