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라는 감정

무뎌짐

 

 

어린 날의 나는 빳빳한 종이같았다.

한장의 종이처럼 날이 서서 손이 닿기만 해도 베이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신경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살아있어서,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워 처리하곤 했다.

 

하지만 종이는 사람의 손을 거칠 수록 구겨질 뿐이다.

 

그래, 인생도 살아 갈 수록 구겨진다.

불가항력적인 힘이 내 인생을 구기고 구겨서

날이 서있던 종이의 끝도 닳고 닳아

결국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그리고 찢어진다.

처음 내가 꿈꿨던 미래처럼 찢어진다.

 

나는 그렇게 무뎌진다. 거친 세상에 무뎌지고, 반복되는 현실에 무뎌진다.

 

즐거움도 기쁨도 우울함도 모두 다른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처럼 느껴졌다.

작은 일에 감정을 쏟아붓기가 싫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뎌진다는 건 마치, 어른이라는 말의 동반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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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리 2017. 04/28

공감합니다. 나이가 들면 무뎌지게 되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