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1)

소리가 들렸다. 재하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나. 머리를 양 손으로 쥐었다. 밤늦게까지 뜬눈으로 버틴 탓에 두통이 찾아왔다. 이윽고 재하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천둥번개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리와는 달랐다. 무슨 소리지? 재하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왜 이러세요? 이러다 재하가 듣겠어요.”
아버지가 소리쳤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틈으로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보니 며칠 전 아버지가 온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왔는지 할머니가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에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에 가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노란 무언가였다.
“이놈아 정신 좀 차려라. 언제까지 이런 거 놔두고 살 거야!”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알아서 하기는 뭘 알아서 해? 아직도 바람난 년도 못 잊고 있으면서!”
바람난 년? 재하가 머리를 굴려보았다. 내가 모르는 여자가 있었나? 하긴 어차피 아버지 사정인데 내가 알 바 아니지. 재하가 혀를 찼다. 뭐가 됐던 간에 빨리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기세는 보이지도 않았다.
문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했는지 눈에 뵈는 것이 없어보였다. 가위를 쥔 손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가위가 거칠게 움직이고 노란 조각들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이 재하의 눈에 박혔다. 노란 조각들……. 재하는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옷 조각을 바라보았다. 재하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옷이었다.
재하가 문을 열고 조각들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은 소리를 지르다 재하를 바라보았다.
“재, 재하야.”
재하는 파르르 손을 떨며 조각들을 주웠다. 재하는 천천히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 따위는 없었다. 이윽고 조각들은 맞춰졌고 노란 원피스가 나왔다. 사진 속 어머니가 입고 있던 노란 원피스였다.
“이게 뭐에요?”
재하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째서? 이게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분명 아버지가 다 버렸을 텐데…….
“그게 아니라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방으로......”
아버지가 망연자실하며 재하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재하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딴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이게 뭐냐고 물어보고 있잖아요!”
재하가 소리쳤다. 주먹에 쥐어진 노란 조각들이 볼품없어 보였다. 왜? 왜 이걸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어째서 아버지 당신은 그런 눈빛을 하고 나를 보는 걸까? 어째서 이 옷을 가지고 있는 걸까? 당신은 정말 내 생각대로 어머니를 버린 걸까? 역시나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날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뭐긴 뭐야. 바람난 년 옷이지.”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혀를 찼다. 쯧쯧. 혓소리가 재하에게 차갑게 다가왔다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바람? 그게 무슨 소리에요?”
“뭘 무슨 소리냐? 네 엄마 얘기지. 어린 남자랑 바람나서 도망갔잖아.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그 순간 재하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바람? 어머니가?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재하의 눈이 무섭게 변해갔다. 동그랗던 두 눈은 어느새 가시처럼 날카로워졌다.
“바람이라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바람이라니. 바람은 아버지가 핀 거겠죠. 그러니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거라고요.”
“허참. 가지가지 한다. 너 아직도 애한테 그 얘기 안했니?”
그 순간 재하의 눈이 아버지를 향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거짓말은 무슨. 네 엄마 말이야. 아니다 그건 엄마도 아니지. 한참이나 어린놈이랑 바람났어. 아마 열두살 차이였나? 그것도 어떻게 지 자식도 버리고 핏덩이랑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냐? 동네 창피하게 말이지.”
“아버지 그게 사실이에요? 어머니가 정말 그랬어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재하가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재하가 소리쳤다. 그러자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이 재하의 눈에 들어왔다. 그날처럼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그 순간 재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재하가 어렸을 적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살았다. 그리고는 늘 누군가와 연락을 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었다. 상대가 누구였는지까지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있어도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방안으로 들어가 누군가와 전화를 받곤 했었다. 전화를 할 때 어머니는 다른 사람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리 칭얼거려도 재하를 바라보지 않았다.
재하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정말 바람을 폈던 걸까? 사실은 어머니가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걸까?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이 옷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걸까? 대체 왜 나에게 숨긴 걸까? 나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해온 걸까? 나는 누구를 원망해왔다는 걸까?
재하가 천천히 뒷걸음쳤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옷을 갈아입고는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재하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재하는 멈추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재하는 달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재하가 같은 말만 반복했다. 빗길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우산도 없이 달려가는 그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재하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잠시라도 멈춘다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밀려오는 생각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철푸덕
그렇게 달리다 다리가 걸려 물웅덩이에 넘어졌다. 빗물에 보기 좋게 빠져버렸다. 재하가 이를 악물며 땅을 손으로 내리쳤다. 주먹에 튕긴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빗물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비가 오고 있구나. 소라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동 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소라가 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문 앞으로 다가가 인터폰을 보았다.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송장 마냥 축 처져 있는 모습이 괴이하게 보였다. 누구지? 적어도 유나는 아니었다. 유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유나를 제외하면 집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택배를 시킨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 온 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누구세요?”
소라가 인터폰에 대고 얘기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인터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모습이 소라의 눈에 익었다. 어디 선가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문에 걸쇠를 걸어 놓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앞에 재하가 서 있었다. 비를 잔뜩 맞았는지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세상에. 소라가 빠르게 걸쇠를 빼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재하는 엉망이었다. 물에 젖은 뿐더러 팔과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괜찮아? 어디 다쳤어?”
재하가 말없이 소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쓰러지듯이 소라의 어깨를 향해 머리를 기대었다.
“누나. 나 어떡해야할까? 난 그동안 대체......”
그러더니 소라의 어깨가 젖어갔다. 소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천천히 재하를 끌어안았다. 젖은 어깨를 움켜쥐자 부르르 떨렸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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