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과거에 붙잡힌 사람들(3)

‘재하 같이 속 깊은 아들이 있으니 아버님께서도 분명 힘이 나셨을 거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계속 머리를 굴려보고 몇 번이고 그 말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칠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무섭게 불며 그 사이를 사람들이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펼쳐진 우산은 뒤집히고 아예 포기하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티비에서는 역대급 태풍이니 홍수니 하면서 속보를 보내고 있었다. 재하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지난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이런 날이었다. 거세게 비가 오는 날. 재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이렇게 비 오는 날 어머니가 짐을 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을 떠날 뿐이었고 아버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 엄마 어디 가? 응? 어디 가는 거야?”

홀로 남은 아버지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눈을 뜨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은 뿐더러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분명 그때와 같은 집인데도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작은 사진 한 장도 집안에 걸려있지 않았다.

재하가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어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슬쩍 움직이다 손끝에 걸리는 것을 잡아 꺼냈다. 서랍 깊숙이 숨겨져 있는 사진. 재하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어머니 사진이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노란 원피스를 유난히 좋아했다. 놀러 가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꼭 저 옷을 입었다. 노란 원피스는 어머니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다. 재하도 아버지도 좋아했었다. 문득 재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옷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해맑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었다. 저게 언제 적 모습이었을까? 재하는 감히 상상초자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못 만난 것도 이십년이 넘은 일이다. 그나마 사진으로 봐서 얼굴은 기억났으나 목소리는 희미했다.

재하가 어렸을 때 아무리 떼를 쓰고 애원해도 아버지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때문에 재하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째서 어머니가 집을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추측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외도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졌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자신을 함부로 버릴 리는 없었다.

사진을 다시 서랍 속에 집어넣고 침대에 올라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머리를 감쌌다. 쏴아. 빗소리가 들렸다. 재하가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았다. 음악을 틀고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에 귀가 아파왔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재하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잠에 빠지기를 기다렸다.

 

“미안하다. 재하야......”

꿈을 꾸었다. 오래 전 기억 같았는데 그 모습이 낯설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재하를 안아주었다. 텅 비어버린 집안은 유난히 쓸쓸해보였다. 재하가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빠, 엄마 어디 가? 응? 어디 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연거푸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내 어린 재하는 눈물을 터뜨렸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분명 어린 재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집에서 어머니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서러운 울음소리가 재하에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몸에 박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재하가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거칠게 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뭐가 미안한데? 당신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거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주먹을 올린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그 옛날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멍하니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딱 이 모습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재하야."

아버지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와 재하를 적셔나갔다. 그 순간 이상하게 손에 힘이 풀렸다. 욕이라도 한사발 부어버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온 몸에 맥이 탁 풀렸다. 서서히 주먹을 풀자 아버지가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애달픈 흐느낌에 다리가 풀려버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깊은 슬픔만이 가득했다.

 

눈을 뜨자 재하가 머리를 쥐었다.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소라의 말 때문인가? 낮부터 잔 탓인지 짙은 두통이 찾아왔다. 어지럽기도 하고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더불어 몰려오는 공복에 배를 붙잡았다.

침대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아버지가 보였다. 홀로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자고 있었니? 밥은 먹은 거냐?”

“지금 먹으려고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재하가 우유를 꺼내 컵에 따랐다. 그리고는 빵 하나를 꺼내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아버지가 재하를 스윽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빵을 다 먹자 짙은 술 냄새가 재하의 코끝을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바닥에는 술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문득 재하는 아버지를 보며 소라를 떠올렸다. 며칠 전 술을 마시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아슬아슬하면서도 술을 계속 마시는 그 모습이 소라와 똑같았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라도 있냐?”

“아버지는......”

“응? 뭐냐?”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리워요?”

재하는 왜 그런 말은 했을까? 재하와 아버지 사이에는 암묵적인 금기가 있었다. 어머니. 바로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재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해 딱 한번 물어봤다. 그 이후로는 서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아버지에게 이런 것을 물어보게 되는 걸까?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재하를 쳐다보고는 다시 티비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티비를 보는 눈빛에는 힘이 없었다. 어디를 보는 것인지 아니 그전에 티비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허망한 표정. 그 표정은 소라와 같았다. 전에 느꼈던 그 기시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어째서?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아버지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왜?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애틋한 눈빛 사이로 짙은 그리움이 사무쳤다.

재하가 방으로 도망갔다. 방문을 잠그고 다시 침대로 뛰어 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어째서 아버지는 그런 눈빛을 했을까? 순간 방금 꿨던 꿈이 떠올랐다. 어린 자신을 안고 있던 아버지.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재하가 몸을 웅크렸다. 어째서 당신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그날 밤새도록 재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복도, 두통도 그 원인은 아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며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를 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재하는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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