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다시 만난 그녀와 나(3)

행복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이미 몇 번을 겪었지만 이 행복감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재하가 고개를 돌려 부엌에 있는 소라를 바라보았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었다.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침을 꼴깍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허기가 올라왔다.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요.”

유나는 옆에서 재잘거렸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것인지 한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티비를 보면서도 계속 재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재하는 적당히 대꾸만 했다. 유나의 말을 듣다가 금방 다시 온 신경이 소라에게 향했다. 딸그락거리는 소리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도마 위 야채를 썰어가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이럴 때면 재하는 늘 같은 상상을 하였다. 언제나 똑같은 장면을 머릿속에서 되새겨보았다.

‘어서와. 배고프지?’

자신을 반겨주는 소라의 모습. 비록 머릿속이지만 그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퇴근 후 소라가 있었다면 어떨까?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 소라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리를 하는 소라를 껴안는다면 분명 부드럽겠지? 침을 꿀꺽 삼켰다. 달콤한 상상을 할수록 허기가 심해졌다.

“애들아 밥 먹자.”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식탁 위에 음식이 놓여 있었다. 유나와 재하는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어때? 맛은 괜찮아? 마트에서 싸게 파 길래 해본 건데.”

재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맞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늘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살았는데 가뭄의 한줄기 빗방울 같았다. 재하가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찰진 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며 입안을 감싸주었다. 이어서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어보았다. 붉게 물든 제육볶음의 매콤함이 혀끝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네.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재하가 드물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얘기했다.

 

세 사람은 수업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었다. 재하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면 편의점 도시락이나 컵라면 따위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애초에 집밥이라는 걸 먹지 않았다. 아버지와 둘이서 하는 식사는 늘 불편했다. 아니 불쾌했다. 그 탓에 재하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밥 먹고 갈래?”

처음 얘기를 꺼낸 것은 소라였다. 도시락을 먹는다는 말이 신경이 쓰였던 걸까? 재하는 처음에 거절했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두려웠다.

“아뇨. 괜찮아요. 저 때문에 고생할 필요 없어요.”

“고생은 무슨. 우리 유나 봐주는 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솔직히 같이 밥을 먹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소라의 남편. 그 사람이 온다는 것에 재하는 치가 떨릴 수준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넉살 좋은 소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 뒤로 매주 같이 밥을 먹었다.

 

“그래서 걔가 말이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유나는 계속 재잘거렸다. 무어가 그리 신났는지 소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눈다…… 재하는 조금 떨어져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웃으며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이 모든 것이 재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나와 소라의 모습이 자신과 반대로 보였다. 이런 것이 화목한 가정이라는 걸까?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식사는 늘 간단했다. 정말로 밥을 먹는 행위가 전부였다. 대화 따윈 사치였다. 누가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시선은 밥과 반찬을 향하고 입은 음식을 향해 벌릴 뿐이었다. 젓가락이 부딪히는 일도 없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그 자리를 떠날 뿐이다. 물론 그런 자리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선생님 어디 불편해요?”

정신을 차리니 재하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냐. 아무 일 아니야.”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슴 속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재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듯 현관으로 빠져 나오는데 유나와 소라가 그 뒤를 따라왔다. 재하가 문을 열고 나가 현관을 바라보았다.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서로를 닮았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조심히 들어가세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버튼을 누르고 내려가는 동안 재하는 두 사람에 대해 떠올렸다. 현관에서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부러웠다.

재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퇴근 후에 자신을 맞이하는 소라와 유나.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는 유나를 상상하고 퇴근 후 피로를 풀어주는 소라를 떠올렸다. 그 순간 기묘했다.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몇 번을 상상해도 똑같았다. 그 모습은 완벽했다. 행복 그 자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는 자신이 없었다. 재하가 아닌 다른 남자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중년 남성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가는 평범한 40대 중후반의 남성들이었다. 저 중에 소라의 남편이 있을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궁금하면 한번쯤 물어볼걸. 소라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떤 운 좋은 개자식일까?

‘하지만.’

재하는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누구인지, 무어를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흔한 사진 한 장 보지 못 했다. 하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법이다. 상상이라도 하하 호호 웃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시. 물어볼 용기도, 그 모습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숨을 내뱉고는 눈을 떴다. 소라와 만난 것도 어느새 몇 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만남은 아무리 생각해도 짧기만 했다. 그 때문에 아직도 소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가득했다. 그동안 무어를 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이제 막 다시 만났을 뿐이다. 사실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 욕심 낼 필요는 없다. 천천히 알아 가면 되는 일이다.

 

집에 도착하고 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웬 여름에 냉기일까? 집안은 소라의 집과 달랐다. 가볍고 상쾌한 그곳과는 달리 무겁고 눅눅하였다. 어깨를 누르는 답답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가 티비 소리가 들렸다.

“밥은 먹었냐?”

거실로 가자 아버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한손으로는 냄비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젓가락을 잡았다. 후루룩하며 넘어가는 면발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눈은 티비를 향하고 있었다. 그 눈이 무어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축 늘어져버린 그 모습이 소라네 가족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렇게나 밥을 먹는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네 먹었어요.”

하지만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재하는 등을 돌리고 그 모습을 지나쳤다.

몸을 씻고 방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소라를 떠올렸다. 미소를 짓는 소라, 밥을 짓는 소라, 청소를 하는 소라, 유나와 얘기하는 소라, 소라, 소라, 소라…… 이렇게 생각하면 마치 소라와 함께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재하가 손을 들어 볼을 꼬집어보았다. 가벼운 통증에 미소를 지었다.

“소라누나 사랑해요.”

그렇게 소라를 떠올리며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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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나비 2017. 02/01

설레네요... 다음이야기가 기다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