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01. 다시 만난 그녀와 나(1)

뜨거운 햇살이 거리를 비추는 7월. 더위에 습도가 더해져 절로 짜증이 나는 날씨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부채질을 가쁘게 했다. 그 중 재하는 유일하게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무어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나 월요일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재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을 바라보고 주말에는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재하였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재하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월요일. 화면 속 글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주말 내내 월요일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지난 일요일 밤에는 잠을 못 이룰 정도였으니. 소풍 가는 어린아이도 아닌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덕분에 아침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눈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가볍고 유쾌했다.

버스에 올라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맴맴. 매미가 우는 소리가 창문 틈 사이로 들렸다. 그 소리에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면 딱 이때였다. 처음 소라를 만난 것도 매미가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며 한참 더운 여름날이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처음 만난 소라는 기묘했다. 무언가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상냥한 미소. 그 미소에 단번에 빠져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 상냥한 모습에 이끌렸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집 나간 어머니의 빈자리를 소라를 통해 채우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재하가 가슴에 손을 살짝 올려보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빠르게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그래. 과거 따위야 어찌됐든 상관없다. 지금이라도 소라를 다시 만났다 라는 것에 만족했다.

정류장에 내린 후 손수건을 꺼냈다. 발걸음을 옮기며 이마를 닦아냈다. 가볍게 쓰윽 문지를 뿐이었는데 어느새 손수건이 흠뻑 젖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버튼을 눌렀다. 분명 7층이라고 했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거울을 살펴보았다. 경직되어 있는 얼굴이 우스꽝스러웠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없었다. 오히려 이상하리 뒤틀린 얼굴 탓에 초조해졌다. 재하가 다시 한번 가슴에 손을 올려보았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702호. 핸드폰을 꺼내 몇 번이나 확인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문을 보았다. 역시 이곳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벨을 눌렀다.

딩동.

맑은 벨소리가 울렸지만 문 너머는 조용했다. 재하는 무언가 실수를 했나 싶어 핸드폰을 다시 꺼내 보았다. 분명 맞는데. 혹시 다른 동으로 와버린 건가?

“네. 누구세요?”

문 너머로 들린 목소리에 재하가 흠칫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소라의 목소리는 재하의 머리를 세개 때리고 도망가 버렸다. 순간 재하는 대답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저 지나간 목소리를 천천히 음미했다.

“혹시 재하 맞니?”

“아, 네. 맞아요.”

그제야 재하는 정신을 차렸다. 이러면 안 되지. 번뜻 정신이 들고는 가볍게 양손으로 얼굴을 때렸다. 짝짝. 소리가 복도로 퍼졌다. 재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문을 바라보았다.

딸깍. 문고리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열리는 문 틈 사이로 소라가 조금씩 보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느릿하게 열리는 문을 향해 온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어머. 땀 좀 봐. 많이 더웠지?”

문을 열고 나온 소라는 여전했다. 물론 일주일 전에 집에서 만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리석게도 날을 새고 온 탓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환한 낮에 마주하고 보니 정말 그대로였다.

재하가 천천히 소라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가에 주름이 살포시 내려앉았고 하얗던 피부는 살짝 바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재하의 기억대로였다. 길게 내린 포니테일은 검은 윤기를 띠며 찰랑거렸고 앳돼 보이는 얼굴 사이로 여유와 따스함이 흘러 넘쳤다. 상냥하게 지은 미소는 아직도 재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아뇨. 괜찮아요.”

“더울 텐데 어서 들어와.”

소라가 손짓을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무방비한 뒷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그 뒤를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치솟았다. 일주일 전 그 온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재하는 그저 주먹을 세게 쥘 뿐이었다. 힘겹게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전부였다.

“뭐해? 안 들어오고.”

“아, 그럼 들어갈게요.”

소라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재하는 머쓱하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곳이 소라가 사는 곳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사실 그리 대단한 집은 아니었다. 재하의 상상과는 달리 여느 평범한 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흔한 아파트였고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거실에 놓여 있는 검은 피아노가 전부였다.

재하가 천천히 피아노에 다가갔다. 제법 오래된 피아노였다. 색이 벗겨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재하가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이곳에 소라의 손길이 있는 걸까? 그리고는 눈을 감고 조용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라를 상상했다.

“유나야. 선생님 왔다. 어서 나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재하는 눈을 떴다. 건반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리니 유나가 보였다. 원피스? 유나의 옷차림은 상당히 화려했다. 어디 파티라도 가는 건지 잔뜩 꾸민 모습이 집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졌다. 재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애들은 집안에서도 저렇게 힘을 주고 있나?

“안녕하세요! 계속 기다렸어요.”

“얘는 집에서 뭘 또 이렇게 꾸미고 있니?”

“아, 엄마 좀!”

인사할 틈도 없이 소라와 유나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재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면 유나는 신기할 정도로 소라를 닮았다. 비록 단발머리를 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소라와 판 박이었다. 아담한 체구, 깊게 파인 보조개, 맑은 눈동자까지 무어 하나 빼놓지 않고 소라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저렇게 투닥거리는 모습이 마치 같은 사람이 싸우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 유나에 관해 알 게 됐을 때 재하는 ‘딸’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다른 남자와의 아이라니 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재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유나를 보면 소라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다. 유나를 볼 때면 어린 나이의 소라가 상상되었다.

“오늘 어디 가는 거야?”

“예? 아뇨. 그건 아닌데.”

“어휴 말도 마라. 얘가 어제부터 너 온다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보는 내가 피곤할 정도라니까.”

“엄마!”

소리를 지르며 소라에게 달려드는 유나였다. 귀 끝이 살짝 붉게 물들인 모습이 보기와는 다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재하가 유나를 처음 만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소라와 함께 찾아온 유나는 재하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

“혹시 피아노 가르쳐 줄 수 있나요?”

“피아노?”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고 해야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당돌하다고 해야 했었다. 처음 만나서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던 걸 보면 당돌한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당시 유나는 재하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음대생이라면서? 그러면 나 말고도 더 좋은 사람 많지 않니? 학교에는 교수도 있고 선배도 있잖아.”

“그렇긴 한데. 엄마가 재하씨를 알고 있다고 해서 꼭 재하씨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나한테? 왜?”

재하가 머리를 굴려보았다. 이 아이를 만난 적이 있던가? 적어도 재하 기억에는 없었다.

“그게 예전에 연주회에서 보고 저도 재하씨처럼 연주하고 싶어서……”

과연 그랬군. 재하는 턱을 괴고 생각해보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재하는 그런 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해본 적이 없었다. 원체 남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 탓에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재하가 유나 옆에 있는 소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만한 기회는 그동안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서 이 기회를 날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기회를 보낸다면 언제 또 소라를 만날 수 있을까?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게. 대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정말요? 진짜죠? 잘 부탁드려요!”

유나는 몸을 들썩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재하는 그런 유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너머 소라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일단 피아노 쳐 볼래? 실력을 한번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네. 바로 할게요.”

소라와 실랑이를 다투던 유나가 피아노에 앉았다. 장난스러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두 눈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허리를 곱게 피고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 익숙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모습이었다.

어? 유나가 연주를 시작하자 재하는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모습이 소라와 똑같았다.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소라 그 자체였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굉장하네요. 마치 누나 같아요.”

유나가 연주를 마치고 재하를 바라보았다. 크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순간 전기라도 통한 것 마냥 아찔했다. 괜히 건반을 두드리며 유나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듣기에 어때요?”

“굉장한 걸? 상상 이상이야. 다만.”

재하가 유나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같이 앉아 바로 옆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중간에 유나가 틀렸던 부분을 연주했지만 유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몸이 움찔거렸다.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조금만 더 편하게 연주하면 더 좋을 거야.”

이때 재하는 몰랐다. 이 만남이 모든 일의 시작일지. 그저 재하는 소라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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